지난 16(금) 2차 기자회견때 낭독되었던 미누씨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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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자리에 와계신 어르신, 선배, 후배, 친구들, 동료들 모두에게
그리고 바빠서 이 자리에 못오신 분들에게 못난 미누 인사드립니다.
다들 바쁘신데 이렇게 멀리까지 와주시고 힘을 실어주셔서 다시 한번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생각이 안나네요.
그렇다고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만,
처음 한국에 왔을때 내 나이 스물한살, 식당부터 봉제공장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옛 이야기가 생각이 나는데요.
93년 여름날 주말에 군포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러 간적이 있었습니다.
공자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가게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가 우리를 보고
“아이구, 고사리 같은 손좀봐, 여기 근처에서 일해?” 라고 물어본 할아버지의 안쓰런 눈빛이 생각이 나네요.
정말 엊그제 같은데 말이에요.
지금은 그 고사리 같은 내 손은 기계속에서, 뜨거운 햇빛 아래서, 매섭고 차가운 바람속에서,
닳고 닳아 거칠고 굳은 살이 패인 손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말하자면 17년 8개월이란 유통기한 상품으로 진열되어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우리를 결국은 상품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이 가슴 아픕니다.
선진국가를 지향하고 민주주의 나라로 불리는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같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서 오랫동안 같이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성의가 있어야 하는게 아닙니까?
선진이 무엇인지 민주주의는 무엇인지 우리는 다시 생각해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남북 이산 가족 외에 여러분은 사랑하는 부모님의 얼굴을
18년 이란 세월동안 한번도 보지 않고 살아 본 적이 있습니까?
18년동안 미등록자로 살아 본 적이 있습니까?
그 기분,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모르시죠?
항상 맑고 웃음을 주는 미누는 그 누구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삶,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끔찍한 삶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로 소름이 끼친 끔찍한 삶을 살아왔구나...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살 수가 있을까 라른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나의 마음, 심정은 지금 어떤 말로도, 어떤 글로도 표현할 수 가 없습니다.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이런 삶을 살아오면서 개인적으로는 모든 것을 가슴속에 묻은채
피부도 언어도 문화도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한국사회의 자연스런 어울림에
내 모든 것을 바치고 살아왔습니다.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아왔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번 계기로 우리 모두가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변해가는
중요하고 작은 변화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정말 사랑합니다.
2009년 10월 15일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미노드 목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