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꽃과 하얀 새
마당 가운데 나무 한 그루 서 있었다.
말없이 소리 없이 서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나뭇잎들이 살랑거리며 흔들렸다.
가느다란 가지들도 흔들렸다.
굵은 가지들도 흔들렸다.
밑기둥도 흔들렸다.
바람이 멎었다.
밑기둥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굵은 가지들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가느다란 가지들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고요했다.
그런데,
바람도 불지 않는데,
나뭇잎들이 하얀 꽃으로 피어났다.
눈처럼 하얀 꽃들로 나뭇잎들이 피어났다.
목화송이처럼 하얗게 피어났다.
가느다란 가지들도 꽃으로 피어났다.
가늘고 하얗게 피어났다.
굵은 가지들도 꽃으로 피어났다.
굵고 하얗게 피어났다.
바람은 아직 숨이 멎었는데,
고요하게,
창백하면서도 화사하게,
나무 한 그루, 커다한 꽃으로 피어났다.
그냥 그대로 하얀 꽃 한 떨기였다.
먼 데서 바람이 불어왔다.
한 떨기 꽃이 가만가만 흔들렸다.
흔들리면서 눈을 떴다.
수많은 꽃들이 눈을 떴다.
동그랗고 작고 예쁜 눈들이었다.
눈 뜨는 것들마다 작고 하얀 새였다.
그것들이 눈을 깜박거리며 파닥이고 있었다.
문득 누구의 신호를 받았는지,
무수하게 많은 새들이 작은 날개 펼치고
부챗살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다.
작고 하얀 새들이 하늘로 날아올라,
저마다 하얀 점들이 되어,
같은 방향으로,
같은 속도로,
하늘 가득 채우며 빙빙 날았다.
날면서 커다란 한 마리 새가 되었다.
크고 하얀 새가
하늘을 천천히 돌다가
마당으로 내려오며 나를 보았다.
아까부터 저를 보고 있는 나를 보았다.
수정처럼 맑은 눈으로,
우물처럼 깊은 눈으로,
저를 보는 나의 눈을 마주보는 그 눈이
웃는 듯 울고 있었다.
우는 듯 웃고 있었다.
나를 보는 새의 눈을 마주보는 내 눈이
웃는 듯 울었는지
우는 듯 웃었는지
그건 보이지 않아서 알 수 없었다.
마당에 서 있던 커다란 새,
사막의 낙타처럼 착해 보이던 새,
맑고 투명한 눈으로 나를 보며 하늘에 올랐다.
날개 퍼덕이며 날아오르지 않고
겅중겅중 걸어서 허공(虛空)이 되었다.
아무데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허공이 되었다.
출처: 사랑어린사람들 (Villagers in THELOVE) 원문보기 글쓴이: 풍경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