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상 교장선생님의 글짓기 공부
일기 지도의 실제 김종상(金鍾祥)
4. 일기 지도에는 단계가 있다.
그릇 모양에 따라 담기는 음식이 다르듯, 글도 형식이 내용을 결정하게 된다. 일기 쓰기도 아이들의 심신발달 단계나 능력을 고려하여 다양한 형식을 단계적으로 주면 재미와 효과를 더할 수 있다. 가. 최초의 일기는 그림일기가 좋다. 글자를 익히기 전에는 일기를 그림으로만 그리게 할 수도 있다. 그림은 문자가 없었던 원시시대부터 삶의 모습을 알리거나 적어두는 수단으로 쓰여 왔다. 원시인들이 남긴 동굴벽화나 그림문자들이 그것이다. 오늘 날 쓰이는 문자 중에는 그러한 그림에서 발전한 것이 많다. 아이들의 자기 표현 방법도 그러한 과정을 밟으며 발전한다고 볼 수 있다. 유아들의 낙서는 그들 나름대로의 표현 생활의 한 수단이다. 담벽에 그려진 밤송이 머리의 얼굴 그림에도 그들의 삶이 있고 아름다운 우정이 깃들어 있다. 고구마 모양의 구름덩어리 위에 밤송이 같은 해를 그려 놓고도 하늘 나라의 온갖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이 아이들이다. 그런 낙서로 아이들은 자기들의 삶을 표현하고 상상력을 키워 나간다. 자연적인 이러한 아이들의 표현 심리를 제도권으로 끌어드린 것이 그림 일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최초의 일기지도는 그림만으로 그리다가 글자를 익히면 그림에 설명을 덧붙이는 일기로 발전시키는 것이 좋다.
<그림으로만 나타낸 일기> <그림에 설명을 덧붙인 일기>
나. 그림 일기도 형식을 바꿔 보자. 그림 일기는 가장 원초적인 아이들의 표현 심리를 일기라는 형식에 담는 것이므로 처음에는 그림 중심의 일기를 쓰다가 글쓰는 능력이 늘어나는 정도에 맞추어 글로 쓰는 부분을 확대시켜 나가도록 한다. 보통 상품화 된 그림 일기장은 위 쪽에 그림을 그리는 칸이 있고, 그 아래에 바둑판 모양의 글을 쓰는 칸이 있다. 이러한 것은 매일 일정한 모양으로 쓰게 되므로 쓰기는 쉬울지 모르지만 너무 규격화되어 있어 개성화, 개별화 교육을 지향하는 오늘날에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규격화된 형식에서 벗어나 만화 같은 일기를 쓰게 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갖게 해준다. 만화에는 역기능도 있지만 순기능도 크다. 어릴수록 만화에 흥미를 갖는 아이들의 현실 감각을 순기능으로 이용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만화일기이다. 하루 생활을 시간의 지남에 따라 또는 일의 내용이나, 장소의 바뀜에 따라 몇 단계로 나눠 그림을 그리고 설명을 덧붙이도록 하면 만화나 그림 이야기 같은 일기가 된다. 나의 경험으로는 1955년 시골 학교 2학년에게 만화 일기를 지도했더니, 자기의 생활 경험을 순차적으로 기록하는 힘이 늘게 될 뿐만 아니라 문장의 단락 구분에 대한 이해가 쉬워져 글짓기에서 글짜기를 잘 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만화 일기도 오래도록 계속할 필요는 없다. 또 그렇게 해도 안 된다. 어느 기간 동안만 쓰이거나 이따금 쓰일 수도 있다. 또 사진 자료 같은 것을 붙이고 설명을 쓰게 해도 좋다.
<그림에 문장을 늘린 일기> <만화 형식으로 쓴 일기>
다. 편지글 형식의 일기도 쓰여 보자.
백범일지의 첫 부분이다. 이것은 김구선생의 일지(逸志:높은 지조)가 담긴 일지(日誌:일기)로 그가 나고 살아온 자취를 두 아들 인(金仁)과 신(金信)에게 알려주는 편지글이다. 옛 편지지에 깨알같이 쓴 편지다. 학교 아이들 일기도 이렇게 쓰일 수 있다. 그림일기를 쓰던 아이들이 문장일기로 넘어가면 그림으로 나타내던 것까지 글로 설명해야 되기 때문에 쓰기를 어려워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쓸 것이 없다고 한다. 이럴 때는 일기장에 쓸 것이 없어 일기를 못 쓴다는 이야기를 편지로 쓰게 하면 이야기할 내용과 말상대가 분명히 정해지기 때문에 쉽게 쓸 수 있게 된다.
일기 쓸거리가 없어서 쓰지 못했다는 아이에게, 그 이야기를 일기장에 써서 선생님이 볼 수 있게 하라고 해서 받은 글이다. ‘일기 쓸거리가 없으면 쓸거리가 없다는 그것이 곧 일기 쓸거리가 된다’는 것은 옛날 서양의 ‘프라우니스 2세’가 한 말이다.
편지 형식의 일기는 그 대상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은 어머니께, 집에서 한 일은 선생님께 일러주듯이 쓰고, ‘할머니께’ ‘내 짝에게’ 또는 가상의 인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속삭여 주듯이 쓸 수도 있다.
라. 주제, 내용, 감상의 단계로 써 보자. 일기는 문종에 관계가 없다. 생활문, 보고문, 기록문, 기행문, 감상문, 산문시 등 어떤 것으로 써도 좋다. 다만 하루 이야기가 늘 하는 일상적인 일보다는 좀 색다르고 기록해 둘 가치가 있는 일을 골라서 그 한 가지를 중심으로 자세히 쓰도록 하는 것이 좋은데, 아이들은 그 날 일을 별 것 아닌 것까지 빠짐없이 모두다 나열해서 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일기에 제목을 붙여서 쓰게 하는 일이 많다. 제목을 붙이게 하면 한 가지 일을 자세히 쓰게 하는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기는 『○월 ○일 ◇요일 날씨』를 밝히고 쓰는 글이므로 제목을 붙이지 않고도 중요한 한 가지 일을 자세히 쓰는 ‘주제 일기’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짜임을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짜임에 따라 쓰면 아래와 같이 어느 한 가지 일을 중심으로 자세히 쓸 수가 있게 된다. 또 마지막에는 그 일에 관한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쓰게 되므로 자신을 반성하는 기회가 되며 생각하고 비판하는 힘도 늘어나게 된다.
이와 같은 짜임으로 일기를 쓰면 주제가 분명해지고 생각하는 힘도 늘어서 다른 종류의 글도 저절로 잘 쓰게 되므로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논술이니, 주관식 평가니 하는 문제들도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앞의 일기를 참고로 하여 오늘 내가 한 일이나 겪었던 사건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한 가지를 골라 아래에 『㉠날짜→㉡주제→㉢내용→㉣감상』의 차례로 일기를 써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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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종상 아동문학가 원문보기 글쓴이: 숙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