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4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1945년 8월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에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것으로 전쟁을 끝내려고 했습니다. 워낙 오래 동안 끌어온 지리한 전쟁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은 절대 항복하려 들지 않았고, 전쟁에 지친 미국은 결정적인 수단으로 이 전쟁을 끝내기 원했기 때문에 치명적인 무기인 원자탄으로 전쟁의 끝맺음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원자폭탄이라고 하는 무기는 워낙 살상력이 큰데다가 그 후유증이라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서 미국은 원자탄을 투하하기 전에 히로시마 사람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사흘 안에 이 도시를 떠나지 않으면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임을 통고했습니다. 비행기를 통해서 전단지를 뿌렸고, 방송이나 여러 가지 매체를 동원해서 경고의 메시지를 계속 내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히로시마 사람들은 그 수많은 경고의 메시지를 받으면서도 그 도시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원자탄의 무서움을 알 길이 없는 히로시마 사람들로서는 폭격의 위협 때문에 그 도시를 떠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비겁한 일이라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도시는 여러 방법으로 전해진 경고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엄청난 참상을 겪게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히로시마 시민들이 처했던 상황이 바로 오늘 인류가 처한 무서운 위기의 상황과 너무 닮았기 때문입니다.
아들아, 생긴 것만 닮으면 뭐하냐?
"성호야, 사람들이 말하길 생긴 건 네가 날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하는데 나는 정말 모르겠다. 진짜 중요한 건 안 닮고 생긴 건만 닮으면 뭐하냐? 사람이 뭔가 하려면 독기가 있어야 한다. 너한테는 그게 없어. 지지 않겠다는 그런 뭔가가 너한테서는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어." - 옥성호의《아버지 옥한흠》중에서 -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복음을 요약하자면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이신 우리 주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당신의 하늘 아버지의 뜻을 우리에게 드러내셨다는 것과 주님의 죄 없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죽음에서 구원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율리히 츠빙글리
1절입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요? 옛적에 여러 선지자들을 동원해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다....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들을 동원해서 여러 가지 모양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셨습니까? 그 말씀을 듣는 인간들이 그 말씀을 한번 듣고 알아차리지를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할 뿐 만 아니라 듣고 그 뜻을 알면서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믿고 따라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번 말해도 반응이 없고 두 번 말해도 반응이 없습니다. 이 선지자가 와서 말을 해도 알아듣지를 못하고, 저 선지자가 와서 다른 방법으로 말을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다고 했는데, 때로는 꿈이라는 방법으로 말씀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눈에 보이는 환상으로 말씀하시기도 했고 또 어떤 때에는 아예 바다가 갈라지고 하늘의 태양이 멈추는 기적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그래도 인간은 알아듣지를 못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지를 않았습니다.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제 마음 내키는 대로, 제 마음의 욕심이 이끄는 대로 마구 살아가는 인생들을 안타까이 여기신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하나님 품으로, 생명과 구원의 길로 어서 속히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다양한 방법과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그렇게 오래도록 말씀하셨지만 인간의 반응은 지극히 냉랭하고 오히려 그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입니다. 결국 구약 성경은 부르시고 찾으시는 하나님 앞에 패역과 반역으로 반응을 보인 추악한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절망의 기록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드디어 패역한 인간들에게 최후의 통첩을 하십니다. 2절입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 패역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최후통첩입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옛 시대에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모양과 여러 방법으로 끊임없이 말씀해 오시던 하나님께서 이제 마지막으로 구원과 생명의 메시지를 그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 패역한 백성들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의 메시지는 없습니다. 더 이상의 경고는 없고, 이제 더 이상의 말씀은 없습니다.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장 완전하고, 가장 충분한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이 땅 백성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인간은 단 한 번의 선택의 기회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최후통첩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를 듣고 그 말씀 앞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 에 따라 구원과 심판이 결정이 됩니다. 다른 길이 없고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 다가온 복음 외에는 또 다른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최후통첩 앞에 여러분은 반응하셨습니까? 그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반응을 하셨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구약시대의 완악한 백성들처럼 의심하고 비웃고 또 주저하고 있으십니까?
오늘 우리는 우리가 받아든 이 복음의 심각성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의 절박함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더 할 말씀이 없습니다. 이 말씀 앞에 순종하면 구원이요 생명이지만 불순종하면 영원한 심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의 심각성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절박한 것이며, 복음을 사람들에게 알린다고 하는 것이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최후통첩을 전하는 것이라고 하는 엄숙한 마음과 자세로 임해야 할 것임을 똑똑히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최후통첩을 이 세상에 전달하는 우리의 막중하고도 엄숙한 사명을 책임 있게 감당할 다짐을 하십시오. 이 세상을 향해 수 천 년 동안 말씀해 오셨던 하나님의 집념과 끈질긴 사랑이 담긴 최후의 메시지를 우리가 받아들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가까운 가족과 이웃에게 또한 저 멀리 땅 끝에 있는 영혼들에게 까지 이 최후의 메시지를 책임 있게 전달하는 복음의 일군들로 헌신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랫동안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고,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그 말씀이 마침내 아들로 말미암아 완성되게 하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옛적에” 말씀을 주셨다고 하십니다.
여기 “옛적에”라는 말씀은 ‘지나간 시대’를 말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어느 시대를 말씀하는 것일까요? ‘구약 시대’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대한 사실을 보아야 합니다. 세상은 조용히, 그저 시간 따라 하루하루가 물 흐르듯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 속에서 당신이 계획하신 모든 일을 진행하고 계셨으며,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당신의 종들을 보내어 말씀 전하는 일을 계속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일찍이 어거스틴이 그의 대저 ‘신국론’이란 책에서 역사를 가리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장”이라고 한 말은 하나님의 일을 잘 깨달은 참으로 훌륭한 안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의 우리 조상의 범죄사건 이후, 하나님의 재창조, 곧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을 보내시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겠다는 그 언약을 이루시게 위해 하나님은 끊임없이 일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시기 위하여 계속하여 일하고 계심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우리 중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일하는 것은 세상의 일이 아니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엔(though-in) 토이스 프로페다이스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전하기 위해 특별히 세우신 자들을 가리킵니다. 여러분께서도 누군가에게 전달할 말이 있을 때 중요한 말은 아무에게나 함부로 부탁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일을 아무에게나 맡겨서 말씀하게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특별히 선택하신 자들을 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케 하셨는데 그들을 가리켜 선지자라고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기록으로 완성된 성경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읽고 듣는 이 성경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구약에서와 같이 오늘도 구원 얻은 주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실 때에 하나님은 그의 성령을 통해 역사하고 계심을 알아야합니다.
3. 하나님께서는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수많은 횟수’와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그의 말씀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때 한번 말씀하신 것으로 당신의 뜻을 나타내시는 것으로 만족해하지 않으시고,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많은 경우들을 들어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보면서, 어떤 말씀은 하나님 자신이 직접 말씀하신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사람이 기록했음을 보게 됩니다. 심지어 성경에는 마귀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혹시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말에 대해서 이해를 잘못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밝히기 위해서 어떤 사건들을 그대로 도입하거나 어떤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 목적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기 위해 채택되고 있을 뿐이라는 점입니다.
4.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말씀하셨습니다.
1)“이 모든 날 마지막”이란 것은 구약이 끝나는 시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대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으며, 아들을 보내실 때를 정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갈라디아서 4, 4에 “때가 차매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2)하나님은 그 계획된 때가 이르러서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시고 그로 친히 말씀하게 하셨으므로, 예수께서는 선지자들의 약속의 말씀을 마무리하셨고, 자신이 친히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말씀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5, 39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라.”하셨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 성경은 오실 예수님을 예언하고 신약 성경은 오신 예수님을 말씀하면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대합니다. 신약 성경에는 예수님과 우리(교인)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전치사가 8개 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전치사로 ‘Through [θrú]’ ‘… 을 통하여’ 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Through Christ’ 그리스도를 통해 입니다.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Through’를 사용하는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중보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을 부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칩니다.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올려 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부산과 경남을 연결하는 거가대교처럼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그렇다면 왜 다리가 필요할까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우리는 죄를 지은 인간입니다. 바다가 부산과 경남을 갈라놓았듯이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죄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에서 아르헨티나처럼 너무 멀리 떨어져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아르헨티나를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가듯이 죄를 지은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가려면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십니다.
하나님은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1장 1-2절을 통해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통하여’ 라는 전치사가 2 번 나옵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십니다. 히브리서뿐만 아니라 디모데전서에도 예수님이 중보자라고 나옵니다. 하나님은 디모데전서 2장 5절을 통해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자 사람이십니다. 수학에서 집합 A와 집합 B가 있을 때 A와 B에 공통으로 속하는 집합을 교집합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교집합처럼 하나님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형편을 이해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사람이어야 우리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실 수 있고 하나님이어야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1장 3절 중반 절을 통해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짐승이 대신 피를 흘리고 죽었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친히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짐승의 피는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었지만 예수님의 피는 영구적으로 효과가 있습니다. 짐승의 피는 죄를 짓고 회개하기를 반복했지만 예수님의 피는 한번으로 충분했습니다. 단번에 효과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교회 카니발의 타이밍 벨트를 교환했습니다. 카니발의 타이밍 벨트는 8만 킬로 전후에 교환하지만 타이밍 체인은 반영구적입니다. 타이밍 벨트는 또 다시 8만 킬로가 되면 교환해야 하지만 타이밍 체인이라면 교환하지 않아도 됩니다. 짐승의 피는 타이밍 벨트처럼 일시적이지만 예수님의 피는 타이밍 체인처럼 영구적입니다. 타이밍 체인은 반영구지만 예수님의 피는 영구적입니다. 한 번으로 끝납니다. 어쨌든 짐승의 피로도 사람의 죄를 씻었습니다. 하물며 예수님의 피로는 우리의 죄를 얼마나 깨끗하게 씻을 수 있겠습니까? 히브리서뿐만 아니라 로마서에도 예수님의 피를 통해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나옵니다. 하나님과 화해했다고 나옵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5장 10-11절을 통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미암아’ 가 3 번 나오는데 말미암아는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말해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 하나님과 불화했을 때 예수님이 피를 흘리고 돌아가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해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북군 병사가 전쟁 중에 아버지와 형들을 잃었습니다. 이 병사의 집안은 농사를 지었는데 농장에서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려면 남자가 필요했습니다. 그 병사는 어머니와 여동생들을 돕기 위해 전역하기 위해서 상관의 허락을 받고 링컨 대통령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비서가 면담을 거절했습니다. “자네는 대통령을 만날 수 없네. 지금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모르나? 대통령은 매우 바쁜 분이야. 이제 돌아가게 젊은이. 전장으로 돌아가서 저 남군과 싸우게 그게 자네가 할 도리야!” 그 병사는 낙심한 채로 백악관 근처에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았습니다. 그 때 어린 소년이 다가왔습니다. “군인 아저씨 왜 슬퍼하세요? 뭐가 잘못 되었나요?” 그 병사는 전후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소년은 그 병사의 손을 잡고 백악관 뒷문으로 들어가서 보초병들을 지나고 장군들의 회의실을 지나고 장관들의 사무실을 지나더니 대통령 집무실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 소년은 노크도 하지 않고 문을 덜컥 열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국무장관과 회의를 하다가 소년을 쳐다봤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니 토드?”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아빠! 이 군인 아저씨가 아빠와 얘기 할 일이 있대요.” 그 병사는 아버지와 형들이 전사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여동생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국무장관과 상의를 하더니 승낙을 했고 그 병사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소년이 병사를 데리고 대통령에게 찾아갔듯이 예수님은 우리를 데리고 하나님께로 나가셨습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연결하셨습니다.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가 죄를 지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갈라졌을 때 우리 대신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을 통해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의 중보자십니다. 예수님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고 예수님이 아니라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예수님을 신앙의 중심으로 삼으십시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고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다시 오십니다. 소년이 병사를 대통령에게 데리고 갔듯이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신앙의 중심으로 삼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