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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에게 해주면 행복해지는 말...
- 스티브 스테판즈(Steve Stephens)
건강한 가정은 사회생활에서 오는 긴장을 풀어 주고 지친 몸과 정신을 회복할 수 있는 안식처이다. 우리는 배우자로부터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들을 필요가 있다. ‘배우자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물어보기 위해 친구들을 모이게 했을 때 그들은 배우자에게서 듣고 싶은 말들도 함께 제안해 주었다.
“잘 했어요!”
“당신 정말 멋져요.”
“그거 정말 좋았어요.”
“오늘 아주 멋있어 보여요.”
“당신이 없으면 뭔가 빠진 것 같아요.”
“그동안 나를 위해 당신이 해 준 것들이 다 고마워요.”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내게는 당신이 최고예요.”
“당신이랑 결혼해서 정말 행복해요.”
“당신은 내 가장 좋은 친구예요.”
“다시 살게 된다 해도 난 당신이랑 결혼할 거예요.”
“오늘 당신이랑 같이 있고 싶었어요.”
“오늘 당신 보고 싶었어요.”
“오늘 당신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요.”
“당신 옆에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당신이 웃을 때 그 빛나는 눈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당신 오늘도 근사해 보여요.”
“당신을 믿어요.”
“언제나 당신을 신뢰할 수 있어요.”
“당신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당신이랑 결혼한 것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미안해요.”
“어때요?”
“어떻게 생각해요?”
“듣고 싶어요.”
“당신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에요.”
“당신 없이 산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어요.”
“제가 좀 더 좋은 남편(아내)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제가 어떻게 도우면 되는 거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오늘 당신 위해서 기도하고 있어요.”
“우리가 같이 지내는 매순간이 너무나 소중해요.”
“당신 사랑에 감사해요.”
“날 그대로 받아 줘서 고마워요.”
“내 짝이 되어 준 거 고마워요.”
“당신은 나의 하루하루를 더 환하게 만들어 주는군요.”
신명기=모세의 설교 세편
-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광야 40년 11월 즈음에 다시 백성에서 율법을 말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광야에서 다 죽었으므로 새로운 세대에게 시내산에서 알려준 하나님의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 장소: 요단 모압평지
- 내용: 크게 3가지로 분류됨
① 1장 ~ 4장 제1설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동안 어떻게 인도했는지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내용
② 5장 ~ 27장 제2설교: 율법의 말씀을 다시 기록함
③ 28장 ~ 30장 제3설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내용(지키면 축복, 안지키면 저주)
-예수님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마가 1, 1-12)
-엘리야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10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왕상 17,1 -10)
-모세의 40년
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너 출애굽을 했습니다. 종살이하던 애굽 땅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이제 가데스 바네아라는 지방까지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가나안까지는 불과 사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곧장 가나안 땅으로 이끌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로 하여금 사십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곧바로 축복의 땅으로 이끌지 않으시고 살기 어려운 광야 길로 이끄셨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능치 못할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끄셨습니까? 하나님이 그 택하신 백성들을 미워하셔서 일부러 그들을 골탕 먹이시고 괴롭히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예애 3,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우리가 고생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른데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끄셨을까요?
8,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하나님은 그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다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자녀가 잘못된 것을 고치고 바르게 자라게 하려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광야에서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좀 더 성숙한 모습이 되도록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셔서 마침내는 그들에게 큰 복을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광야가 목적이 아니고 광야의 훈련을 통하여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성숙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성경에는 ‘광야’(미드바르 : 목초지, 넓은 들, 사막, 입)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광야는 넓은 들입니다. 그곳엔 물이 없습니다. 나무가 없습니다. 쉴 곳이 없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도와줄 사람을 찾을 수 없는 곳입니다. 황폐한 곳입니다. 고독하고 외로운 곳입니다. 그런 삭막한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을 40 년 동안 했습니다. 그동안 그들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요? 우리가 짐작할 수 없을 많큼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에게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이제 그들의 지난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은 끝나고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들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갈 날이 눈 앞에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나안은 좋은 곳입니다. 그런데 그것과는 상관이 없이 길고 지루한 광야의 길이 끝난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참으로 흥분되고 희망이 넘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중요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신세를 벗어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의 문제였습니다.
이제껏 광야의 고단한 삶을 살아야만했던 이유와 앞으로의 당부를 하십니다. 만일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은 알지 못하고... 마치 자기들의 힘으로 얻게 된 것처럼 생각하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할 줄도... 하나님을 찬양할 줄도 모르면 어떻게 하나... 만일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다면... 그들의 가나안 땅에서의 생활은 오래지 못할 것이고, 그들도 가나안의 다른 민족들처럼 종국에는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지난 40년 동안을 겪어 온 광야의 생활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스라엘에게 알려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8, 2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자카르)- 표기하다, 기억하다, 언급하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를 세 가지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낮추시기 위해서(+주리기 하시며)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8, 2중 "이는 너를 낮추시며." 8, 16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이 교만한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겸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부터 겸손한 백성들이었다면 40년에 걸친 광야훈련은 불필요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겸손한 백성들이었다면 그렇게 긴 세월을 광야에서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없이 교만한 상태였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12지파의 대표들 중에 10명은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들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일제히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자신들이 애굽 땅에서 탈출해나온 것 자체를 후회하기까지 했습니다(민수 14, 1-3). 나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상 가나안땅을 점령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하며 백성들을 위로했으나 백성들은 오히려 그들을 돌로 치려했습니다(민수 14, 6-10). 이것이 왜 교만일까요? 두려움 아닌가요?
성경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 바로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신명 8, 14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이스라엘은 지금껏 역사해 오신 하나님의 능력을 잊어버리고 마치 자신들의 힘으로 애굽을 탈출했고 홍해바다를 육지같이 건넜으며. 멀고도 험한 광야를 통과한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출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특별하신 은총으로 이루어진 것을 확실하게 믿었다면 가나안 정복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넉넉히 이루어질 것을 믿었을 것입니다. 갖가지의 기적으로 바로를 굴복시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시고, 홍해바다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사히 건너게 하시며.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고 반석에서 샘물을 솟아나게 하셔서 배불리 먹고 마시게 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이미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정복하게 하시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그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모두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아닙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 줄 믿었다면 가나안 정복도 역시 하나님이 하실 일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가나안 정복을 두려워했던 것은 앞으로의 일은 물론 지금까지의 일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아니라 자신들이 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니 결국 그들의 교만이 얼마나 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교만을 낮추시기 위해서 40년 동안의 긴 세월을 훈련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교만을 그토록 싫어하십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바로 교만죄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함)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억지로 겸손케 하십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삶 속에서 지금까지 역사해 오신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잊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마치 이제껏 자기 혼자의 힘으로 살아온 것처럼 교만을 부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어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하나님의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만 생각하고 낙망하고 좌절하지는 않습니까? 이것도 교만입니다. 이런 교만을 회개해야합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능력의 팔 앞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도울 힘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모든 것을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우리도 더 이상 축복의 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광야의 훈련생활만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마음을 낮추시기 위해서 때때로 우리들을 광야 길로 내어 모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인가 좀 배웠다고. 가졌다고. 안다고. 힘이 있다고 교만해 져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을 때 하나님은 그를 광야로 내어 몰아서 그의 교만을 깨드려 버리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8, 2하 "너를 시험하사(나싸 : 시험하다, 모험하다, 증명하다)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아브라함. 욥)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던 것도, 하나님께서 갖가지 기적을 보여주신 것도 그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도록 한 훈련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가나안 땅에 세우고자 하신 나라는 세상 나라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실 하나님의 왕국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왕국에 들어가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없다면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기는커녕 가나안 원주민들의 생활에 동화되어 그들처럼 갖가지의 우상숭배와 못된 풍습에 젖어들고 말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구태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계만민 가운데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구출해 낼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하신 은혜와 사랑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쏟아부어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의 시험에서 번번이 불합격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백성들에게 축복의 땅을 허락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가지고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친 광야훈련장으로 들여보내셔서 40년 동안 순종의 생활을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미워서가 아닙니다. 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축복의 땅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우리들을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거친 광야로 이끄십니다.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하십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목도케 하여 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키워주시고 어떤 순간에도 복종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광야 길을 걷는 것처럼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고 계십니까? 그럴수록 하나님의 명령에 더욱더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8, 1하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이것이 순종의 결과입니다. 순종함의 축복- 가나 혼인 잔치의 포도주. 베드로의 물고기.
▶셋째로,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8, 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아는 사람은 나를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입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인 의식주조차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나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구하면서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산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끄신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아이가 베란다 밖으로 미끄러져 버렸습니다.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떨어지려고 하는 순간에 난간의 철창을 꼭 쥐었습니다. 아이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아이는 고함을 질렀습니다. 아버지는 아이의 고함소리를 듣고 놀라 뛰어 나왔습니다. 아이가 힘이 빠져 떨어지려고 할 때 아버지는 아이의 손을 덥석 잡아 주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이가 자기의 힘으로 난간의 철창을 쥐고 있을 때가 안전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아버지의 손에 잡혀있을 때가 더 안전합니까? 아버지의 손에 잡혀있을 때가 안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내 손으로 무엇을 쥐고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손에 잡혀있을 때가 안전한 것입니다. 내가 떡을 많이 움켜쥐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다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하나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가 그러했습니다. 그 해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창고에 곡식을 가득 쌓아놓았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사업을 잘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나 비록 내게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말씀만 하시면 하나님은 만나로 나를 먹여 주시는 것입니다.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 나오게 하셔서 나의 갈한 목을 축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인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반드시 회복시켜 주심)
▶히브리들의 이집트 노예 생활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신앙이 형성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의 고난체험이 없었다면 낮아지고 순종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하나님 신앙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인생의 광야 가시밭길을 건너는 체험을 통해서 믿음이 형성되고, 신앙이 깊어집니다.
여러분의 광야는 무엇이었습니까? 누구에겐 직장이나 사업일수도 있고 누구에겐 인간 관계일수도 있습니다. 저에겐 지금 이 곳이 광야입니다. 이곳에서 다시 훈련하고 하나님을 다시 만나며 순종하고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더 좋은 곳(가나안)으로 가기위해 홍해를 건넜지만 그곳은 바로 가나안이 아니고 광야였습니다.
힘든 광야와 같은 어렵고 고달픈 삶을 지금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내주시기까지 아낌없이 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왜 하나님이 의미 없이 우리를 광야 길로 인도하셨겠습니까?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다듬어지고 훈련되었습니다. 광야는 믿음의 키를 한 뼘 더 자라게 하는 은혜의 공간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회복하는 특별한 자리입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갈급한 심령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다시 의지하게 하는 시간입니다. 이 광야의 시간이 얼마나 되는냐는 얼마나 빨리 깨닫고 만들어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지금 광야에서 힘들어 하신다면 빨리 하나님의 뜻을 찾고 돌이키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길 바랍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길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로 이끄시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