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4일- 누가복음 12:49-59
잠언 15:1-6/ 찬송 410장
왜 스스로 판단하지 않느냐
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52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53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54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55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56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57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58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9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49)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성경에서 불은 종말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을 정결케 하고 새롭게 하는 수단입니다.
이렇듯 불과 같은 심판의 선포와 죽음의 세례를 예수님은 기꺼이 담당하십니다. 바로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화해 사역은 불가불(不可不) 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을 분열시키고, 집 안에서 편을 가르고, 세대 간 적대감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가족 중에도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반대하는 입장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이루기까지 자칫 긴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란조차 극복해야 진정한 평화가 올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상의 경험을 통해 날씨와 기상을 예견할 줄 압니다. 구름이 서쪽에서 일면 소나기가 올 것을 예상하고, 남풍이 불면 심한 더위를 예측합니다.
예측이 가능한 까닭은 서쪽에는 바다가 있어 다습하고, 남쪽에는 광야여서 매우 건조하기 때문입니다.
천지의 기상을 아는 사람일지라도 시대의 표징은 분간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알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겉의 태도와 속마음이 다른 ‘외식(外飾)하는 자’(56)라고 비판하십니다.
그들은 시대의 표징을 결코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일에 대해 결심을 주저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시대의 표징에 대해 올바른 판단이 서면, 무엇을 해야 할지 진실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외식하는 자, 곧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가까이 지켜보면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그 길에서 신속히 화해하라고 하십니다.
빨리 화해하지 않으면 고발에서 재판으로, 또 재판에서 감옥으로 인생이 더 꼬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화해는 진실한 회개를 뜻합니다. 마지막 심판에 이르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회개해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당사자들에게 아주 절박하게 들립니다.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59).
샬롬샬롬
☀ 다시 봄
1)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선포는 심판에 대한 선언이고,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말 3:2). 예수님은 자신이 짊어질 세례에 대해 제자들이 함께 할 것을 권고하십니다.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막 10:38).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예수님을 따를 때 그 불에 자신을 내맡길 뿐만 아니라, 고난의 세례를 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새겨 봄
1) 제자들에게 말씀(눅 12:22-53)하신 후 예수님은 다시 바리새인을 비롯한 무리에게 향하십니다. 그동안 예수님의 등장과 선포 그리고 모든 행위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알려 주는 분명한 징표였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온갖 기적들은 메시야이심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외식하는 자들은 상식적인 안목으로 일기예보를 하면서도, 눈 앞에서 벌어지는 분명한 표적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시대의 징조에 대해 눈감아 버린 것입니다.
첫댓글 주님, 세상의 표징이 아니라 주님의 표징을 올바르게 볼 수 있길 바랍니다. 설령 주님의 표징이 보이지 않더라도 변함없는 굳건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 천지의 기상을 아는 사람일지라도 시대의 표징은 분간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알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
이번 초파일에 불교아카데미에서 종교간의 대화에 여러사람을 초대하며 저를 초대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의 영성에 관해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난 그런것 잘 모른다고 했지만 오랫동안 함께 공부했던 옥복연 박사의 초대를 거절할수 없었습니다. 기독교 영성은 사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과 연결하는 사랑, 다른 사람과 연결하는 사랑, 그들의 고통에 참여하는 사랑,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우는 사랑. 함께 짊어지는 사랑, 그런 어려움을 만들어내는 구조에 저항하는 사랑. 그래서 그 영성은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는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주님 우둔한 나를 도우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주님, 오늘도 말씀으로 나를 가르치소서. 듣고 깨달아 죄와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돌아서 진리안에 거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