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잔화(marigold)
집앞 대문을 열고 나가면 해마다 몇 포기의 금잔화(金盞花)가 제자리를 지키며 나를 반긴다. 봄이 오면 새싹들이 경쟁하듯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 녀석은 느지막히 모습을 드러낸다. 혹 지난 겨울이 너무 추워 뿌리와 씨들이 동사했나 생각하고 며칠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이다. 무심코 지나다니는 날도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여름이 오면 화려한 꽃을 피우고, 초가을부터 꽃씨를 매달고 조용히 서 있으면 눈길이 자주 간다.
짙은 붉은색 꽃잎이 노란 꽃술을 감싸고 있는 이 꽃은 서양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이 꽃을 늘 꽂고 다녔다고 해서 종교적 의미로 신성시하고, 많이 애용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정과 학교 화단, 들녁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꽃이다.
김수영의 시 '폭포'에도 이 꽃이 등장한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폭포」 전문
우리의 어두운 시대에 곧은 소리로 부르짖다 간 시인의 아픔이 꽃의 향기로 풍겨나는 듯하다.
1980년대 중반 대학에서 현대문학을 강의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손을 들어 큰소리로 질문을 해왔다.
"선생님은 이 시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갑작스런 학생의 질문에 150명정도 앉은 강의실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학생들은 나와 질문한 학생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대시를 공부하고 있으니 문학적 표현으로 질문에 답을 하겠습니다.
'나는 야간산행을 즐겨합니다.
야간산행을 하다보면, 밤이 깊을수록 하늘엔 수많은 별들로 가득찹니다.'
ᆢ ᆢ ᆢ
우리가 즐겨 외우는 현대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
금잔화는 최근에 꽃을 말려 차로, 식재료로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