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저 친구가? 어쩜 나하고 비슷한 증세 같은데…?’
박 영감은 침을 꼴깍 삼켰다. 얼굴까지 쑥 들이밀며 대장隊長의 말에 집중했다. 무슨 영웅담이라도 되는 듯 모두가 진지했다. 평소 건강체에다 가장 막내인 산행山行 대장이 암 수술을 받았다니? 대원들은 하나같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들이었다. 박 영감도 겉모습과 달리 내심은 바짝 쫄아들었다.
“형님들! 지가 그동안 울매나 미련곰탱이 짓을 했는지? 뼈저리게 후회했다니까요? 무슨 용가리 통뼈도 아이면서, 이 나이 되도록 그놈의 검사를 피하기만 했은께요.”
“그래? 그건 진짜로 너무 했네. 그 흔해 빠진 내시경검사를 첨 받아봤다니? 우째 그럴 수가 있노? 열 번도 더 받은 나로선 도무지 믿기질 않는구먼.”
대장의 말에, 이 영감이 칭찬인지? 핀잔인지? 애매한 맞장구를 쳤다. 박 영감은 또다시 찔끔했다. 마치 자신을 보고 하는 말인 것 같아서였다.
‘코로나19’ 때문에 미루고 미뤄 온 목요 등산 모임이었다. 금정산 중턱에서 거의 3년여 만에 만났다. 물론, 그동안 산행 대장의 수술과 예후豫後를 단체카톡방이나 전화로 짬짬이 듣기야 했지만, 대면對面해서 직접 듣기는 처음이었다. 자연히 맨 처음 어떻게 발견했는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박 영감이 내심 전전긍긍 속앓이하는 이유도 바로 그 점에 있었다. 미처 대놓고 까발리지도 못했지만, 대장보다 열 살이나 고령으로, 팔순이 낼모레인 자신도 아직 내시경검사라는 걸 한 번도 받아보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근데, 형님들께 고백하지만, 술이 사약이라 칸께, 그기 젤 고민인 기라요. 저, 이거, 정말 지켜낼 수 있을지…, 아직 자신이 별로 안 선다니까요”
그러면서도 산행 대장은, 표정만은 평소의 대장답게 허허허 너스레 풀기를 멈추지 않았다.
“뭐? 술이라고…?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술? 그건 안 되지. 무조건 조심 또 조심해야지.”
이 영감이 다시 말을 받자, 누군가가 위로 겸 격려의 말로 응수했다.
“아냐, 요즘은 위암 그거 별거 아니란 께. 너무 미리 쫄 필요 없다카이.”
‘이거, 내일 당장 병원에 가 봐야겠구먼. 어, 또. 내시경검사 안 받은 거, 꺼내지 않은 건 잘했다 싶네. 오줄없이 꺼냈더라면 모두 날 얼마나 바보 멍청이로 생각했을 것인가!’
사실, 겉으로야 무심한 척, 했었지만, 내심은 앗! 뜨거워라! 싶었고, 요즘 유행어로 된통 얼어붙었던 게 사실이다. 동시에 아직도 제대로 납득納得이 되는 것도 아니다. 평소 건강염려증 환자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병원이나 약국 출입이 잦았지 않은가! 그런데 무슨 놈의 배짱으로 검사조차 받아보지 않았을까?
‘전혀 필요를 못 느낀 탓? 아니면 무슨 똥배짱? 어쩌면 얍삽한 잔꾀였을까?’
박 영감은 이튿날. 엎어지면 코 닿을 동네의원인 ‘다 나은 의원’에 들렀다. 가정의학 전문의라는 원장에게 위내시경 검사 잘하는 병원추천을 부탁했다. 작년 개업한 이래, 마치 주치의로 임명이라도 한 듯이, 자주 들락거려 안면이 익은, 자식 같은 연령의 40대 젊은 의사가 친절하게 대답했다.
“갑자기 웬 위내시경입니까? 어르신 어디 불편하세요?”
“속이 가끔 더부룩한 것 같아요. 위내시경 검사를 한 번 받아보라네. 어디가 좋을는지?”
“이전에 내시경 검사해 본 데가 좋은데요?”
“난 사실…, 아직 한 번도 그거 받아본 일이 없는데….”
“네? 한 번도 내시경검사를 안 받아보셨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순간, 의사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더니 이내 진지하게 답했다.
“그러시다면 정밀검사 한번 받아보세요. 제가 P 대학병원에 소개장을 써 드리겠습니다.”
‘아, 참! 이럴 수도 있구나!’
위암 초기라는 의사의 진단 결과에, 무슨 놈의 조화인지 피식피식 웃음이 새 나왔다. 끝도 모를 두려움에 빠지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나이 탓에 제대로 상황판단을 못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원인이 뭔가요?”
박 영감이 덤덤하게 반문했다. 그러자 담당 의사가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이 답했다.
“단정할 순 없지만,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일 것 같습니다. 아직 초기이니 간단한 내시경 시술로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는 무슨? 그런 거 하나도 없는데…? 평소 별로 욕심도 없고, 아이들도 모두 출가해 저희 갈 길 갔고, 죽을 때까지 노후대책도 그리 풍족하지는 않아도 별문제가 없는데…?’
하지만, 이 말은 입속에서만 맴돌고 말았다. 새삼 어처구니가 없다 싶었다. 이렇게 항거(?) 한 마디 못한 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처분만 기다리는 처지가 되다니…?
시키는 대로 내시경으로 시술施術을 받았다. 두어 달이 지났다. 의사의 처방대로 치료에 열중했다. 박 영감은 가끔 자신의 볼때기 살을 쓰다듬어 보았다. 까칠한 느낌이 드는 게 기분이 영 꽝이다.
“내시경 시술이 아주 잘 됐고, 예후도 만족할 정도니, 식사 등 몸 관리 잘하십시오.”
담당 의사는 마치 갓 시집온 며느리 훈계하는 시어머니가 따로 없구나! 싶을 정도로 잔소리를 늘어놨다.
위암 판정에 난리라도 난 듯, 법석대던 주변 친구나 아이들의 반응도 어느새 진정돼 갔다. 희한하다 싶을 정도였다. 금방 큰일이라도 난 듯 호들갑을 떨어대더니만, 두 주일쯤 지나자 세상인심이 으레 그런 거라는 듯,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유독 마누라만 의사의 지침을 제대로 지켜내나? 전보다 더 무서운 호랑이 눈으로 감시하고 있을 뿐.
소슬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가을날 아침. 박 영감은 문득 서울에서 살고 있는, 옛 친구이자, 형제처럼 지냈던 직장 후배의 전화를 받았다. 한참 나이 차가 나는 동생뻘이지만, 친형제 이상으로 믿고 아꼈던 사이였다.
몇 마디 안부를 주고받은 박 영감은 여담 삼아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위암 시술을 받았다고. 친구는 잠시 망설이나 싶더니, 이내 촉 빠르게 대답했다.
“아이고, 형님! 그걸 왜 이제야…? 하기야 뭐! 살 만큼 살았네요. 마음 편히 잡수세요.”
순간 박 영감은 친구의 어이없는 대답에 화증이 확 솟구쳤으나, 이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마치, ‘늙은이가 세상인심마저 그리 몰랐어요?’ 하는 호된 질책으로 들린 까닭이었다. 끝
<한국문협 소설분과 콩트 선집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