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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씨의 역사 자료 모음 스크랩 삼강사비/민구령 오형제
대니민 추천 0 조회 63 10.02.26 13:4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삼강사비(三江祠碑)-민구령(閔九齡)

자 료 / 하얀그리움


<밀양시 역사속의 인물>
자(字)는 구원(龜元), 호는욱재(勖齋), 조선 성종·명종 초기 효행과 우애로 이름 높은 민구령(閔九齡)·구소(九韶)·구연(九淵)·구주(九疇)·구서(九敍) 5형제이다. 조선 연산군·중종 때의 점필재(점畢齋『진외종조부(陳外從祖父)) 김종직(金宗直)의 문인(門仁), 중종 5년(1510년)경에 삼랑루(三郞樓)가 있던 자리에 정자 하나를 짖고, 아우인 경재(敬齋) 민구조(閔九詔), 우우정(友友亭) 민구연(閔九淵), 무명당(無名堂) 민구주(閔九疇), 삼매당(三梅堂) 민구서(閔九敍)와 더불어 5형제가 베개를 나란히 하여 기거하면서 학문을 닦고 실천하여 형제간의 우애가 출천(出天)하여 향도에 그 평판이 자자하였다. 다섯 형제는 지극한 효성으로 아버님께서 심한 토사증상으로 빈사상태일때 5형제가 일제히 손가락을 끊어 수혈로 회생한 일이 있으며, 어머님께서 종기로 오래 고생하게 되자 5형제가 번갈아 농집을 빨아내어 완치하게 되었다.형제간의 우애 또한 돈독하여 아버지께서 각기 재산을 나누어주려고 하자 "옛날 군자는 8대를 같이 살아도 화목하게 지낸 일도 있는데 어찌 형제가 각각 재산을 나누어 떨어져 살며, 내것 네것을 가려라 하십니까?" 하며 끝내 재산을 나누어 가지지 않고 평생을 서로 양보하고 절약근검하며 지냈다. 1490년(성종 20) 삼랑강 기슭 삼랑루(三浪樓) 옛터에 정자를 지어 오우정(五友亭)이라 편액하고 5형제가 동침하고 한밥상에서 같이 먹었다. 1563년(명종 18)에 고을 사람들이 이들의 우애를 기리기 위하여 오우사(五友祠)와 기사비(記事碑)를 건립하고 봄·가을에 제향을 받들었다. 1592년 임란때 문물이 모두 불타 없어졌으나 1675년(숙종 원년) 오우정이 중건되고 임진하(任震夏)가 상량문을 지었고, 1697년(숙종 23) 오우사(五友祠) 중건 기초를 착공하였다. 1702년(숙종 28)에 향토 사림의 공의로 삼강서원(三江書院)에 입향하였고 1704(숙종 30)에 오우사 묘우(廟宇)를 중건하여 상량문(上樑文)은 신몽삼(辛夢參)이, 봉안문(奉安文)은 이명채(李命采)가 지었다.1753년(영조 29)에 여표비문을 대사헌 민우수(閔愚洙)가 짓고 1775년(영조 51)에 비를 세웠다. 1871년(고종 8)에 오우정을 서원 옛터에다 옮겨 세우고, 1874년(고종 11)에 오우선생실기(五友先生實記)를 간행하였다. 지금 밀양시 삼랑진읍 낙동에 오우정이 현존해 있으며, 매년 향토의 유림과 그의 후손들이 제향을 받들어 아름다운 삶의 한 증표로서 기리어 오고 있다.

-- 밀양지(인물) --
아우인 민구소(閔九韶)는 (자(字)는 성원(成遠), 호(號)는 경재(敬齋), 민구연(閔九淵)는 (자(字)는 심원(深遠),호(號)는 우우정(友于亭). 민구주(閔九疇)는 (자(字)는 대원(大遠), 호(號)는 무명당(無名堂). 민구서(閔九敍) (자(字)는 임원(任遠), 호(號)는 삼회당(三梅堂)로 더불어 오형제(五兄弟)가 모두 아망(雅望)이 있었다. 형제(兄弟)간에 사재(私財)를 두지 않고 삼랑강(三浪江) 위에 정자(亭子)를 지어 동침(同枕) 동탁(同卓)으로 숙식(宿食)을 함께 하였으며 척령가(척령歌)를 지어 상화(相和)하면서 우애(友愛) 깊게 동거(同居)하였다. 관찰사(觀察使) 김상찬(金尙贊)이 이를 듣고 순찰차(巡察使) 밀양(密陽)에 나왔을때 야반(夜半)에 갑자기 방문(訪問)하여 그 우애(友愛)의 돈천(敦薦)함을 살펴보고 조정(朝廷)에 장문(狀聞)하니, 오형제(五兄弟)에게 각기 일자(一資)씩 가자(加資)가 내려졌다. 향인(鄕人)이 이 정자(亭子)를 칭하여 오우정(五友亭)이라 하였다. 『오우정실기(五友亭實記)』가 전한다.
오우선생실기책판(五友先生實記冊板)
지정번호 : 경상남도지정 유형문화재 제305호
소 유 자 : 여흥민씨종중
소 재 지 :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 613-1
수 량 : 37매 시 대 : 조선시대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이였던 욱재 민구령이 중종 5년(1510년) 경에 삼랑루가 있던 자리에 정자 하나를 짖고, 아우인 경재 민구조, 우우정 민구연, 무명당 민구주, 삼매당 민구서등과 더불어 5형재가 베개를 나란히 하여 기거하면서 학문을 닦고 실천하며 형제간의 우애가 출천하여 향도에 그 평판이 자자하였기로 이 민씨 오우의 효우와 덕행을 추모하여 사림에서 그들의 시와 문적, 행적등을 판각한 것인데 오우정에 보관되고 있다.

삼강사비(三江祠碑)
지정번호 : 경상남도지정 유형문화재 제306호
소 유 자 : 여흥민씨문중
소 재 지 :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 613-1
수 량 : 1기
시 대 : 조선시대(1563년)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이였던 욱재 민구령이 중종 5년(1510년)경에 삼랑루가 있던 자리에 정자 하나를 짖고, 아우인 경재 민구조, 우우정 민구연, 무명당 민구주, 삼매당 민구서등과 더불어 5형제가 베개를 나란히 하여 기거하면서 학문을 닦고 실천하며 형제간의 우애가 출천하여 향도에 그 평판이 자자하였기로 이 민씨 오우의 효우와 덕행을 추모하여 명종 18년(1563년)에 오우정 경내에 사림들이 오우사와 함께 1563년에 이 삼강사비를 세웠다
그 후 오우사는 "오우향현사(五友鄕賢祠)"로 현판을 바꾸어 달기도 했다가 임진왜란때에 오우향현사와 비석이 모두 회진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을. 영조 51년(1775년)에 비석(비석)을 다시 세웠는데 비문은 정암 민우수가 짓고 수암 권상하가 글씨를 썼다.
1. 사원일람<祠院一覽> 辛鍾友 著
민구령(閔九齡)
#경상도(慶尙道) 밀양(密陽) *삼강서원(三江書院)
명종계해건(明宗癸亥建).
제향. 민구령(호욱재 본여흥). 민구소(호경재). 민구주(호무명당). 민구연(호우우정). 민구서(호삼매당) (구 오형제). 祭享. 閔九齡(號勖齋 本驪興). 閔九韶(號敬齋). 閔九疇(號無名堂). 閔九淵(號友于亭). 閔九敍(號三梅堂) (俱 五兄弟).

2. 민구령(閔九齡) 여흥인
五友先生實記(奎15741), 閔致洪(朝鮮)編. 2卷1冊(73張) 筆寫本(後寫) 30.2×21.2cm. 序:閔致久. 跋:閔致洪. 朝鮮 燕山君∼中宗때의 士人 閔九齡·九韶·九淵·九疇·九敍 등 5형제의 遺詩 약간 과 遺事를 모아놓은 책으로, 10대손 致洪이 1874년(高宗 11)에 수집·간행했다. 그러 나 본 奎章閣本은 1930년에 筆寫된 것이다. 卷首에 閔致久의 序와 卷末에 致洪의 跋(1 874년)이 있다. 閔久齡의 字는 龜遠, 號는 ??齋이고 九韶의 字는 成遠, 號는 敬齋이며 九淵의 字는 深遠, 號는 友于亭이고 九疇의 字는 大遠, 號는 無名堂이며 九敍의 字는 任遠, 號는 三梅堂이고 본관은 驪興이며 進士경의 아들로 金宗直의 문인이며, 密陽출 신이다. 학문에 열중하던 중 茂午·甲子士禍가 일어나자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포기 하고 鄕里에 은거하여 性理學등의 연구와 詩文으로 일생을 마쳤다. 특히 형제간의 友 愛가 깊어 起居를 같이 했으며 詩의 和答 속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學行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慶尙道관찰사 任虎臣이 찾아갔다가 友愛하는 모습을 보고 起居하던곳을 五友亭이라 하는 한편 조정에 천거했다. 그러나 이들 5형제는 조정에서 내린 벼슬을 모두 거절했다. 三江書院에 祭享되었다. 卷首에 閔致久의 序와 목록이 있다. 권1(詩 );次遯齋河沖韻, 次五友亭板上韻, 五友亭八景韻, 附五友亭次韻등 詩 50여수. 권2(文 );步五友亭原韻幷序追感之意, 鄕狀, 五友亭重修上樑文, 校中通文, 五友祠開墓祭文·營 建日錄, 士林狀, 廟宇上樑文, 奉安文, 常享祝文, 儒林狀, 講堂上樑文, 星州疏廳通文, 湖中儒生通文, 移安告田文, 奉安告田文, 改題後奉安告田文, 五友亭重修上樑文, 廟宇重 修上樑文, 閭表碑文, 東方文獻院祠錄, 畢齋先生及門錄, 密州誌, 行狀, 遺事, 遺事後小 識, 後識등. 卷末에 閔致洪의 跋文과 謄寫年記가 적혀 있다.

3. 경상도지(慶尙道誌) 권지(卷之) 육(六)
누대승람(樓臺勝覽) 부(附) 제영(題詠)
밀양(密陽)
오우정(五友亭) 재(在) 삼랑진읍
4. 경상도지(慶尙道誌) 권지(卷之) 구(九)
사원일람(祠院一覽)
밀양(密陽)
삼강서원(三江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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