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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19주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아브라함을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도 아브라함이 지녔던 것과 같은 믿음이 타오르게 하시어, 아버지의 시간을 깨어 기다리다가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말씀의 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주님의 백성은 의인들의 구원과 원수들의 파멸을 기대하였다고 전한다(제1독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라며,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이르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는 저희의 적들을 처벌하신 그 방법으로 저희를 당신께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18,6-9
해방의 날 6 밤이 저희 조상들에게는 벌써 예고되었으니
그들이 어떠한 맹세들을 믿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용기를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7 그리하여 당신의 백성은 의인들의 구원과 원수들의 파멸을 기대하였습니다.
8 과연 당신께서는 저희의 적들을 처벌하신 그 방법으로
저희를 당신께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9 선인들의 거룩한 자녀들은 몰래 희생 제물을 바치고
한마음으로 하느님의 법에 동의하였습니다.
그 법은 거룩한 이들이 모든 것을 다 같이,
성공도 위험도 함께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벌써 조상들의 찬미가들을 불렀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설계하시고 건축하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1,1-2.8-19
형제 여러분,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2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8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9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10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1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12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13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14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15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17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18 그 외아들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9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설계하시고 건축하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1,1-2.8-12
형제 여러분,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2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8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9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10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1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12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32-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2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33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
34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43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46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또는>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영성체송
시편 147(146─147),12.14 참조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은 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
<또는>
요한 6,5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영성체 후 묵상
▦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 속에 죽어 간 옛사람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오시리라는 것을 명심하고,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받아 모신 이 성체로 저희를 구원하시고
진리의 빛으로 저희를 굳세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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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주일(다해) 루가 12,35-40; ’22/08/07
♡ 심흥보 베드로 신부님♡
예전에 어느 본당에서 봉성체를 하다가, 아내가 남편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아내를 그야말로 아주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내는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니까 80이 다된 남편이 매일 아내를 씻기고, 때마다 식사를 해 먹이고, 약 먹이면서 자리를 못 비우면서까지 정성껏 돌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유, 젊을 때 부인에게 속 썩인 것 다 갚으시나봐요."했더니, 그게 아니라고 합니다. 정작 젊을 때부터 부인은 돌아다니기 바빴고, 병이 나서야 들어왔답니다. 그 인생이 하도 측은해서 남편이 자식도 안 시키고 정작 자신이 돌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옛날과 달라서 남편이 아내를 돌보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할아버지들이 병들고 지친 아내들을 돌보는 일이 마치 황금연못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워 보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한국에 독일마을이 생기자, 한국인과 결혼한 독일인 남편이 은퇴하면서, "지금까지 한 평생 나를 위해 희생해온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마음으로 남은 생애는 아내의 고향인 한국에 돌아가서 살겠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독일인 마을로 들어왔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내 아내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기로 약속합니다."
"나는 당신을 내 남편으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기로 약속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죠?
여러분이 결혼식 때 주님 앞에서 또 하객들 앞에서 서로를 향해 바친 약속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약속을 잘 지키고 계시죠?
만일, 남편이나 아내가 서로를 향해, 당신이 돈을 벌어올 때만 내가 당신을 배우자로 삼아주겠소.
만일, 당신이 건강하고 제 구실을 할 때만 내 배우자로 삼아주겠소.
만일, 당신이 내 말을 들어줄 때만 내 배우자로 삼아주겠소.
만일, 당신이 나에게 도움이 될 때만 내 배우자로 삼아주겠소.
만일, 당신이 나를 사랑할 때만 내 배우자로 삼아주겠소.
이런 조건을 내세운다면, 우리 중에 부부로 남아 있을 가정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매일 매일을 그냥 살아갈 때는 잘 모릅니다.
우리는 건강하고, 커다란 문제가 없고, 먹고사는데 커다란 지장이 없을 때는 우리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 집안이 행복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서 서로 부딪히게 되고, 심지어는 실망하게까지 되면,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도 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내 삶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심각한 위협이나 고통을 안겨주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의 부부생활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따진다면, 각자 정도 차이일 뿐이지, 그런 조건 속에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떻게 한 인간이 한 인간에게 온전하고 충실하기만 할 수 있겠습니까? 때로는 짐도 되고, 때로는 의지도 되니까, 사는 것이지, 온전한 행복, 완전한 사랑으로만 사는 부부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불완전하고 불안한 조건 속에서도, 우리가 오늘까지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혼인 성사 때 사제가 "교회 안에서 고백한 이 합의를 주께서 친히 견고케 하시고 풍부히 강복하실 것입니다. 천주께서 맺으신 것을 사람이 풀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기도하고 선언해 주듯이, 주님께서 친히 우리 가정을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단 하루도 살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녘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루카 12,38)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40절)
우리가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아 정확히 모를 뿐이지. 주님 없이 주님의 백성들이 살 수 있겠습니까!
아무런 조건 없이 그저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그분의 은총으로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그저 우리가 다행히 주님의 도움과 은총을 알아 믿고 감사드리며, 행복하게 살기를 기대하실 뿐이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주님의 사랑만을 믿고 주님의 은총만을 시험하면서, 방종하고 흥청망청 제멋대로만 살면서 나쁜 짓을 골라 하고,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결혼 생활만큼이나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우리가 성당에 나오는 것에 대해 무슨 조건을 단다면, 그리고 누구의 탓을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 아니라 우리가 탓을 하는 그 사람의 신앙일 수는 있어도 결코 내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누가 어쨌든, 누가 뭐라던, 무슨 일이 생기던, 세상에 무슨 일이 있던, 꾸준하고 진실하게 오늘 주님을 믿고 주님을 모시고, 주님께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
누구 때문에 주님을 믿고 있습니까?
왜 주님을 믿습니까?
누가 나를 믿게 해 줍니까?
누가 나 대신 믿어줍니까?
믿는 것도 나요, 사는 것도 납니다.
내가 주님을 믿기에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여기 이렇게 살아있기에,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이 신혼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부부의 생활에 평화와 행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처럼 신앙생활도 처음 세례 받을 때 그리고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서 주님을 잘 느끼던 그 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싫든 좋든, 보이든 보이지 않든, 내가 청하든 청하지 않든 나를 지켜주시고 나를 보호해 주시며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오늘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고, 자식이 잘되면 기뻐하고, 자식이 잘하면 자식도 부모도 함께 행복하고, 거기다 부모의 짐을 덜어주기라도 한다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그처럼, 주님도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고, 주님께 회개하여 돌아와, 주님의 사랑 안에서 머물면서, 주님의 좋은 말씀들을 실천하며, 주님의 구원 사업을 함께 하려고 한다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요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루카 1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