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스피에르’한테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는 프랑스혁명의 산실인 ‘콩코드 광장’이 있다. 프랑스혁명이 성공하자 이곳에 설치된 기요틴(단두대)에 의해 루이16세와 왕비 앙뚜아네트의 목이 잘려나간 곳이다. 피의 숙청이 시작되어 1793~1794년에는 약 17,000명의 로마시민이 이곳에서 참수를 당해 ‘대혁명광장’으로 불리었지만 후에 실권을 장악한 로베스피에르와 당통 등 1,119명의 사람들도 이 광장에서 처형되었다. 로베스피에르는 파리의 명문 루이루크랑 학원에 다녔는데 당시 왕위에 오른 루이 16세가 이 학원을 방문하자 학생대표로 환영사를 하기도 했는데 18년 후에 그 왕을 단두대에 보낸다. 역사의 변증법이다. 로베스피에르는 서민을 대표하는 변호사로 명성을 얻으면서 1789년 루이 16세는 삼부회를 소집했는데 그는 대표로 뽑혀 파리로 갔고 그 해 혁명이 일어나자 혁명세력 중 좌파인 자코뱅당의 당원이 된다. 이 혁명의 와중에 루이 16세가 국외로 망명하려다 붙들린다. 로베스피에르는 왕정을 끝내고 공화정을 선포하는데 자코뱅당은 반혁명의 가능성을 감지하고 루이16세의 처형을 주장한다. 그 때 그가 주장한 처형의 변은 다음과 같은데 오늘날까지도 성공한 혁명은 무죄라는 이론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왕은 무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를 무죄라고 선언하는 순간 혁명이 유죄가 된다. 이제 와서 혁명을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가? 왕을 죽여야 한다. 혁명이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루이16세는 1793년 1월 ‘대혁명광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로베스피에르는 권력을 장악하자 왕당파는 물론 한 때 동지였던 혁명세력과 극좌파, 온건파 가리지 않고 단두대로 보내며 독재정치를 시작한다. 이 때 시작된 공포정치가 독재정치의 극치를 이룬다. 사실상 독재자로서 프랑스를 지배했고 숙청을 통한 공포정치로 많은 반대파를 단두대에 보냈기 때문에 “루소의 피로 물든 손”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로베스피에르는 경제에 문외한으로 경제실정을 거듭하다가 우유파동으로 단두대의 이슬이 되었다. 반대파가 지리멸렬할 때에 독재는 더욱 심해지고 특히 집권파가 의회의 다수를 차지할 때에 무리하더라도 법을 개정하여 후일의 신분을 보장하는 민주독재를 쓰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문재인정권하에서 소위 무소불위 기관인 ‘공수처’를 설립하고 ‘검수완박법’을 여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당시 야당인 국민의힘은 공수처를 ‘민변 검찰’이자 ‘정권 방패’용 반개혁적 초법기관으로 명백한 위헌이라고 반발했고 검수완박법은 특정인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한 초법적 법률이라며 정권을 교체한 윤석열정부의 법무부장관은 “검수완박법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위반하고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존재한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230년 전에 로베스피에르가 자신의 안위에 대처할 비법을 미리 마련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패착이 아니었나 싶다.
2016년 12월 9일, 대한민국국회는 대한민국의 대통령 박근혜 탄핵을 의결하면서 탄핵 소추장에 명기한 탄핵사유가 루이 16세에게 적용한 ‘국민주권 원칙 위반ʼ과 동일하다. 헌재가 인용한 ‘국민주권 위반과 권한 남용’의 주 내용은 ‘대통령이 지위와 권한을 남용해 한 개인 최순실의 국정개입을 허용한 혐의’라는 것인데 박대통령이 탄핵을 당할 만큼 최순실 개인을 위해 국민주권 원칙을 위반했는지에 대하여는 헌법학자들에 의해서도 제대로 규명을 못하고 있다. 우리는 박대통령 탄핵의 단초가 된 최순실의 태블릿PC가 한 종편방송사 S사장이 조작한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밝혀진바 있다. 증거라고 들이민 태블릿PC는 정작 최순실은 조작할 줄도 모른다는 사실이 후에 들어났다. 여기에 세월호침몰사건과 미르재단을 설립하여 재벌로부터 500억 원을 모금했다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국고손실 등 혐의로 구속되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박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하고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로 재임 중 파면된 대통령으로 기록되면서 3월 31일 수감됐고 정권은 민주당의 문재인대통령에게 넘어갔다. 그런 박대통령은 2021년 11월22일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지병 치료를 받던 중 12월 24일 문대통령의 특별사면·복권으로 4년 9개월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12월 31일 0시에 석방된 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에 마련된 사저로 입주하여 평범한 시민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이 기간에 박 전 대통령을 구속시켰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20대 대선에서 야당인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하여 집권당 후보인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박빙의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참으로 기이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프랑스에서 혁명을 일으킨 좌파 자코뱅당은 보수온건의 지롱드파에 맞섰고 한국의 촛불시위는 민주당·민주노총·전교조·전공노·좌파시민단체 등의 진보 주축세력이 보수 박근혜에 맞섰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프랑스혁명, 영국의 명예혁명, 미국의 자유혁명을 세계 3대혁명으로 꼽는다. 이에 버금간다는 찬사를 받는 한국의 촛불혁명은 기실 적폐청산을 내세운 진보 좌파세력의 보수우파 축출혁명이었으며 보수 여당을 넘어 언론인·교수 등을 향한 반지성인, 반재벌운동임이 이미 밝혀졌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집권 5년 동안 부동산·인사·북핵·코로나19 대처미흡과 네 편 내 편의 2분법적인 편 가르기 등으로 ‘내로남불 정권’이라는 반갑지 않은 오명을 남기고 지난 5월 10일 시행된 대선에서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 출신으로 야당인 국민의힘의 대선후보가 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정권을 이양했다.
역사학자 E. H. Carr은 인문학의 중심 고전이라 불리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대화의 과정이자 결과이다”라고 책에 썼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된다고 많은 역사가·정치가는 주장한다. 따라서 우리는 로베스피에르의 교훈을 통해 오늘날의 우리나라의 현실을 통찰하고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정신이 결코 손상되거나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더욱 분명히 하여 법치와 정의, 공정과 상식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교훈을 후세들에게 역사로 증명해야 한다. 역사는 지배자나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된다. 그래서 힘없는 사람이나 패자의 관점은 반영되지 않는 구조이므로 역사 앞에서 목소리를 낼 힘이 없는 사람들의 관점도 반영하는 것이 바른 역사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승자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패자의 목소리도 바르게 기록할 책임이 현 정부에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2.7.27. 서울자치신문에 게재)시조시인 지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