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성지역 사건 종합
[제공 진실화해위원회]
<국민보도연맹사건>
화성군 오산면 지역은 전쟁 발발 후 미군 최초의 방어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미 24사단과 국군 17연대는 7월 4일부터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국군은 7월 4일 오후 이천-수원선에서 평택선으로 철수했으며, 7월 5일 새벽 3시 스미스부대가 오산 죽미고개에 배치되어 전투를 치렀다. 이런 상황인데도 이승만은 전선시찰을 고집하여 김정열 공군총장이 조종하는 T-6 정찰기로 공중 정찰을 단행했다고 한다.(윤응렬, 125)
오산에서 국민보도연맹사건이 발생하였는데, 당시 103명이 희생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태안읍에서는 1950년 10월 18일 안녕리 김경환이 인민군 점령기 선전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마을 창고에 감금되었다가 용주사 골짜기에서 총살당했다. 당시 창고에는 수십 명이 감금되어 있었는데, 김경환 등 3명이 끌려 나가 함께 희생당한 사실만 확인되었다.
오산면에서는 10월 14일 지곳리 이정남이 집에서 끌려가 방앗간에 감금되었다. 당시 방앗간에는 모두 9명이 있었다. 이들은 10월 21일 지곳리 공동묘지에서 희생되었다.
<미군폭격 피해>
화성에서는 1951년 1월 11일 오산면에서 피난하던 주민 10여 명이 기총사격에 의해 사망했다. 이틀 뒤인 1월 13일에는 화성 정남면 발산리, 안용면 안녕리 주민들이 미군의 폭격에 집단희생되었다.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