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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송학동 성당
 
 
 
카페 게시글
오늘의강론 스크랩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미카엘라 추천 0 조회 63 15.10.15 08:5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연중 제28주간 목요일>(2015. 10. 15. 목)(루카 11,47-54)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루카 11,47-48)."

 

이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유대인들이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드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들의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이다." 라고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라는 말씀은, "너희는 불행하게 될 것이다." 라는 뜻이고,
이 말씀은,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심판과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회개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고...)

 

원래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드는 것은 예언자들을 공경하고 기리기 위해서입니다.
그 일 자체는 잘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예언자들이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늘'의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인다면,
'옛날'에 죽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면서 공경하고 기리는 것은
진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척'이고,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범죄를 감추기 위한 또 다른 범죄가(위선이라는 죄가) 될 뿐입니다.

 

유대인들은 세례자 요한을 죽였고, 예수님을 죽였고, 사도들도 죽였습니다.
예언자들을 죽인 조상들과 다를 것이 없는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조상들과 자기들은 다르다는 그들의 말은(마태 23,30) 거짓말입니다.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루카 11,47-51)."

 

이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조상들의 죄를 후손들에게 물으시겠다는 말씀으로 보이지만,
그런 뜻이 아니고,
언젠가는 반드시 죄인들의 죄를 물으실 때가 올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여기서 '이 세대' 라는 말은, 어떤 특정 세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 하느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예언자들을 박해하는 사람들"
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라는 말은,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벨을 죽인 죄를 카인에게 바로 물으셨고,
곧바로 벌을 내리셨습니다(창세 4,9-16).
그러나 그 뒤로는
예언자를 박해하거나 죽인 죄를 '즉시' 물으시거나 처벌하신 일이 많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벌이 내리더라도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내린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죄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해석합니다.

 

(카인의 경우에도 사형선고를 내리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에게 회개하고 보속할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즉시 처벌하지 않으시고 회개할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것을
'면죄부'를 주신 것으로 착각하거나,
하느님께서 모르시거나 잊어버리신 것이라고 오해하거나,
아니면 자기의 죄를 죄가 아닌 것으로 오판하거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금 당장 천벌이 내리지 않는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잊어버리신 것도 아니고,
죄를 그냥 덮어버리신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과 처벌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고,
용서와 구원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렇지만 이 믿음이 자만심으로 변질되면 안 됩니다.
"내가 죄를 지어도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시겠지." 라는 생각은 옳은 생각이 아니고,
아주 오만한 생각입니다.

 

용서받는 것은 우리 쪽의 권리가 아닙니다.
우리를 용서하는 것은 하느님 쪽의 의무가 아닙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심판과 처벌을 내리시지 않는 하느님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거룩하시고 참되신 주님, 저희가 흘린 피에 대하여
땅의 주민들을 심판하고 복수하시는 것을 언제까지 미루시렵니까?(묵시 6,10)"
지금 인간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께서 왜 심판하시지 않는지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은데,
우리는 언젠가는 반드시 완전한 정의가 실현될 때가 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1) 하느님께서 회개할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그 죄인은
꼭 '저 사람'만은 아니고, '나'도 해당된다는 것.
다른 사람의 회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2) 하느님께서 기다려 주시던 것을 멈추고,
"이제는 심판을 해야겠다." 라고 결정하실 때가 언제인지 모르는데,
그날과 그 시간이 바로 오늘, 바로 지금일 수도 있다는 것.

 

3) "하느님은 아버지이시고, 나는 자녀인데,
설마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시겠어?" 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는 말은
아예 혼잣말로라도 꺼내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루카 3,8)."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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