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이 향 숙
결혼22주년이 지났지만 명절날 시댁에 가본 기억은 겨우 서너 번이 전부다. 그렇다고 본가가 비행기를 타고 가는 제주도 이거나 외국은 더욱이 아니다. 청주에서 차로 세 시간이면 갈수 있는 거리 파주다. 그럼에도 명절을 전후해서 가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남편과 아이들만 보내기도 한다. 일터 앞에서 동생이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어머니는 차례를 지내고 한상차려 나를 부르지만 한 번도 상에 둘러앉지를 못했다.
어떤 이들은 명절증후군으로 한 달 전부터 두통에 시달리고 몸이 아파온단다. 본가에서 대접만 받으려는 철없는 남편과 제사와 손님 대접에 허리 펼 날 없는 아내의 부부싸움이 거세져 결국 이혼하기도 한단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그들이 부럽기만 하다. 마트를 운영하는 우리는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생과 가족 모두가 일한다. 큰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잔심부름을 하고 계산대를 맡았었다. 올해 고3 입시생이 되었지만 이틀은 돕겠다고 했다. 중2인 작은아이는 처음으로 매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큰아이는 애초부터 어른이었던 것처럼 당연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작은아이는 아직도 아기로만 느껴진다. 무엇을 하든지 불안하고 작은 일도 기특하고 감동스럽다.
다른 이들이 음식 할 걱정으로 명절 증후군을 앓는다면 나는 매출은 오를까. 직원들 없는 매장은 어떻게 꾸릴까 라는 생각만으로 몸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두통에 소화도 덜되고 어깨, 허리, 무릎을 거쳐 종내는 몸살기로 바들거린다. 아침마다 안마를 해주는 남편이 갈수록 힘겨워하는 내 모습에 때가되어 그러려니 하면서도 공 없다 한다. 친정어머니는 명절을 며칠 앞두고 우리 집으로 오신다. 설거지도 해주고 청소도 도와주신다. 이번 대목엔 어머니의 병원 정기검진일과 겹쳤다. 내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모시고 병원을 다녀야 한다. 힘든 기색을 하면 속상해 하실까봐 내색도 못한다. 어떻게 견뎌내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런 표현을 하게 만든다.
혈기왕성 할때에는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었다. 무(無)에서 (有)를 창조해내는 마음으로 청주에 멋진 호텔을 지을 꿈을 꾸었었다. 서울에서 운 좋게 호텔에 입사해 받은 써비스 교육과 신화 같은 상류층의 성공기를 들으면서 나도 그들의 삶을 살아 낼 수 있다고 믿었었다. 한때 고아 수출국이었던 어두운 역사를 갖은 우리나라는 입양시키는 아기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보호자는 공짜 비행기를 탈수 있었다고 한다. 서너명의 직원이 전부인 회사 대표가 그 점을 이용해 미국으로 출장을 갔었다고 한다. 그가 피자 회사의 본사로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여 결국 대기업을 물리치고 본사 사장의 마음을 움직인 성공 이야기는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있다. 그가 명절에 근무하는 내게 악수를 청하며 이런 말을 했다. “지금 내 자리가 언젠가 자네의 자리가 되고 내가 자네의 자리로 갈수 있네. 자넨 성실하니까 분명히 잘해낼 수 있을 거야.” 그때부터 나는 농담처럼 호텔을 짓는 게 꿈이라고 말했었다. 세월은 20년이 넘게 흘렀다. 호텔을 짓는다는 것은 우스갯소리로 끝났지만 내 삶에서 물질의 절박함은 어느 정도 벗어났다. 그럼에도 명절은 매장을 지켜야 한다. 20년 동안 그래왔으며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만하면 됐지. 사람이 놀 때 놀 줄 알아야지. 아이들마저 고생시킨다고 타박한다. 자신의 삶이 아니기에 가능하다. 나도 한 발자욱 물러선 타인의 삶은 보기도 편하고 말도 쉽다. 명절동안 문을 닫는다면 매장 안에 보관된 과일과 채소는 어찌 처리 할 수 있을까. 한 달 전 부터 대목을 본다고 고생한 보람은 커녕 큰 손해를 볼것이다. 개업 때 365일 고객을 맞이하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다짐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부모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는지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이며 부모의 삶을 직접 체험하니 무엇 하나 버릴 수 없는 날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작은 아이는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겠단다. 네 살 터울의 큰아이는 동생이 기특하다며 돈독한 우애를 과시했다.
시댁에서 며느리의 의무를 다하는 일이 내게 주어진 삶이라면 아마도 나는 그 부분이 힘겨워도 묵묵히 해냈을 것이다. 남편에게 투정은 하겠지만 결코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화목한 모습을 보이려 애쓸 나를 상상 하며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상을 차린다. 어머니가 시누이 편에 보내주신 명절 음식과 반찬들이다. 보기만 해도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겨 있다. 표현하지 않아도 우리가 가족이어서 감사 할 따름이다.
첫댓글 요즘은 남자들도 힘들다고요~~~
그럼요~ 함께해야죠~~
호텔지으면 거기로 밥먹으러 가야디~~ 써비스 팍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