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추억을 밟으며 길을 걷는다.
그제는 대설이었고 어제는 12월 첫째 일요일이었다. 어제 이곳 일산의 아침기온은 영하 8도부터 시작했다. 12월 첫 눈발이 날리는 그제 늦은 아침에 한가로이 눈을 맞으며 공원을 걸었다. 길가에는 낙엽이 바람에 몰려 쌓여있었다. 그 낙엽을 밟으며 나목들의 가지 끝에 찬바람이 스쳐가는 소리를 듣는다. 싸락눈을 맞으며 나무도 바라보고 하늘도 쳐다본다. 저 먼 추억의 심연 속에 침잠된 수 십 년 전의 사진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노년의 외로움과 연륜의 고독 속에 기억을 되살리고 묻어두었던 어린 시절의 환영(幻影)을 깨어나게 한 것은 날리는 눈 사이를 통과해서 저 멀리서 비춰진 희뿌연 연기였다.
어린 시절 시골의 저녁연기는 하루해를 보내는 신호탄이며 고요히 평화 속으로 진입하는 솔 향기였다. 단꿈을 지새고 나면 아침에 하얀 눈이 초가지붕과 마당에 하얗게 쌓이고 그리고 눈 덮인 마당에는 닭 발자국이 꽃처럼 어지러웠고 해가 떠오르면 고드름이 처마에서 거꾸로 커나가는 정경이 그립기도하다. 이는 반백년하고도 한 십 오년 전 이야기다. 불현 듯 그제 싸락눈 오는 날 낙엽을 밟으며 더불어 추억도 밟아보았다. 바람에 눈은 날리지만 길 위에는 쌓이지 않는다. 조그만 눈송이가 고개든 이마에서 녹는다.
과거의 심연 속에 침잠된 추억의 꽃송이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황량한 나목군락속의 벤치에 앉아 잠시 이렇게 살아있음을 감사히 생각하며 장갑을 벗는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눈싸움하던 개구쟁이 모습도 스쳐가고, 뒷동산 가파른 잔디 위 비료포대 썰매도 정겹게 지나간다. 문장대 함박눈 쏟아지는 날 하산 길에 환희로 포효하던 그 장엄한 광경은 지금도 가슴 뿌듯하다. 40년 전 집사람과 첫 눈 오는 날 덕수궁 돌담길을 조용히 걷던 시절은 최루탄 과 함께했었다.
눈과의 인연은 추억 속에 많은 사연과 함께 쌓였지만 다시는 되돌아 경험할 수 없는 미련에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다. 오늘 이곳의 날씨는 영하권이라 인적도 드물고 수많은 벤치에 홀로 앉은 사람도 나 혼자다. 다시 일어서서 걷는다. 이곳 공원 둘레 길은 650미터에 길 한가운데 오가는 사람이 부딪치지 말라고 흰줄도색을 칠해 놨다. 바닥은 흙이 아니고 쿠션 있는 파란색 아스팔트다. 길가의 황량한 나목들 사이에서 산수유나무의 빨간색 열매가 당알 당알 맺혀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소나무와 잣나무 숲에는 솔잎이 쌓여 갈퀴나무로 지게로 몇 십 짐은 족히 넘을 만큼 사방 천지에 널려있다. 시골에서 솔잎으로 양은솥 얹은 양철 화덕에 차분히 불을 때서 물 끓이고 국 끓이던 시절이 얼비친다. 이 모두가 70년이란 세월이 간직해둔 영상이다.
삶의 역사가 길게는 몇 십 년 뒤면 안개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고 기록되지 않은 인생의 줄거리가 이렇게 허공 속에 날라 간 뒤 새로운 역사는 새로운 이들에게서 시작될 것이다. 세상의 영화란 지푸라기처럼 가볍다. 시간에 쫓긴 머리칼은 색이바래 하해지고, 세월 다한 얼굴에는 주름만 깊어 간다. 나라는 존재는 성은 빈(貧)이요 이름은 궁(窮)이 아니던가. 세상사 부질없는 인생이요 부평초인데 속절없는 세상만사 이제는 내 알바 아니겠나싶다. 지나간 몇 십 년은 내가 가담한 역사였고 이제는 새로운 이들이 새로운 역사를 짊어졌다. 우리시대는 아궁이 연탄 시대였고 지금의 시대는 인공지능시대다. 이미 극락과 천당인데 어찌 삼악도를 말하겠는가.
생각에 잠겨 길을 걷다보니 길가의 단단풍 나무가 향기를 내품는다. 소나무에는 솔향기 단단풍 나무엔 단내가 풍긴다. 과일나무는 향기를 품지 아니하고 과일을 맺지 않은 나무는 향기를 품는다고 한다. 자연에 돌려줄 꽃과 과일은 수많은 자연의 도전과 시련을 겪고도 자연의 동물들에게 생명을 잇게 해준다. 자연이 살아가는 이치다. 처가의 감나무도 은행나무도 공원의 산수유도 산사춘도 모가 열매도 한여름의 모진 열기를 견디고 가을의 열매를 맺는다. 삼라만상의 이치는 나를 희생해서 남을 살리는 역사(役事)다. 초목은 혹한에도 죽지 않고 다시 꽃과 열매를 선사한다. 사람은 자연에게 무엇을 선사하는 지 물음이 다가오면서 내가 사는 동안 세상에 무엇을 했는지가 물음으로 남는다. 오직 먹고 살았다는 답변이 전부다.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거창한 물음에는 거창한 답변은 없다.
사소한 답변은 있다. 열심히 살되 착하게 사는 것이며 순리대로 사는 것이며 손해 본 듯 사는 것이며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라고 되 뇌이면서 공원을 느리게 거닐며 낙엽을 밟아본다. 오그라진 낙엽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고 잔디 위 낙엽은 마대자루에 담겨져 가지런히 쌓였다. 그제 12월 첫 눈발이 날리는 날 싸락눈을 맞으며 공원을 거닐면서 낙엽을 밟고 한해도 저물고 내 삶도 저물고 하루해도 저물 즈음에 발길을 돌렸다. 젊은이는 희망을 안고 노년은 희망을 잃고 세상을 바라본다. 세상은 살아볼만한 모험이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나이테가 늘어가니 이런 상념도 해본다. 절실하고 고단하고 가엾은 삶이었지만 그래도 그 삶이 이제는 그리워진다.
2019년 12월 9일
율 천 이 권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