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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녔던 신학교는 일반 대학교 근처에 있었습니다. 선배 신부님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버스에 ‘차장’이 있던 시절 그들은 일반 대학생들 틈의 신학생들을 어찌 그리 잘 구분해 내는지, 신학교 앞 정류장에 도착할 때가 되면 신학생들만 잘도 골라서 차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차장들은 어떻게 신학생들을 가려낼 수 있었을까요? 여러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신학생들만이 풍기는 향기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른 학생들과는 구분되는 그 무엇이 있었을 것입니다. 수녀원을 방문했을 때 한창 수련기에 있는 수녀님들을 보아도 특별한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은퇴한 노사제의 집에서도, 늘 기도와 더불어 열심히 살아가는 교우 가정에서도 영적인 향기에 취할 때가 있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만 보아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은 훤칠한 외모를 지닌 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은 국민 모두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러할진대, 이 모든 사람의 모범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야 오죽하시겠습니까? 그분께서 지니신 영적인 매력이 얼마나 충만했을까요? 그분께서 지니신 그 향기가 얼마나 대단했을까요? 예수님에 대한 비뚠 시선만 없다면, 누구나 다 그분에게서 영적인 매력과 향기를 진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분의 행동과 말씀에서 이를 충분히 맛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통해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고 오히려 분노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에 대한 증인들을 거론하시면서 당신에 대해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