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구리 한 마리가 평생 홀로 우물 속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 다른 개구리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서 왔소?” 다른 개구리가 대답하였습니다. “바다에서 왔습니다. 난 그곳에서 살고 있지요.” “바다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내 우물만큼이나 큽니까?” 바다에서 온 개구리가 폭소했습니다. “아예 비교할 수 없소.” 우물 개구리는 바다 개구리의 말에 관심을 보이는 척했으나 사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 평생 만나 본 거짓말쟁이 중에서 이 개구리가 가장 대단한 거짓말쟁이구나.’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어디에서 왔는지 안다고 자신하였습니다. 나자렛 출신으로, 마리아에게서 태어났고, 목수의 아들이라는 것을 두고 그들이 자신하는 것입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이는 지상의 논리입니다. 우물 안의 논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에게서 왔는지 제대로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천상적인 분이시고, 천상의 주인이신 아버지 하느님에게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바다에 대해서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릅니다. 천상의 논리, 바다의 논리는 지상의 논리, 우물 안의 논리와 다릅니다. 자꾸 우리의 논리로 하느님을 재거나 판단하고, 그분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방식과 응답하실 때를 정하신다고 해서, 결코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갇혀 계시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우리의 논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신비와 섭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죽이려고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논리로 하느님을 가두려는 완고함 때문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