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잡기
안 광 준
매년 추석이 다가올 무렵 고향의 산림조합에서 전화가 온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 고향 선산에 누워계신 조부모님, 부모님 묫자리의 벌초를 부탁한다. 추석 때마다 벌초를 대행시키면서 나의 머릿속에는 가끔 배산임수, 무덤 방위 등의 말로 대표되는 풍수지리설이 떠오르곤 한다. 돌아가신 후에도 조상님들의 시신이 어떠한 곳에 자리잡는가, 어느 방향으로 눕는가에 따라 살아있는 후손들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라는 것이 대체적인 풍수지리설의 요체이다. 중국에서는 1990년대에 진입하면서 양택(주택)풍수는 건축에 실용되는 과학으로 그리고 음택(산소 묘지)풍수는 개개인의 신념, 신앙으로 발전되어 왔으며 2000년대부터는 세계문화사상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아파트를 짓는 건설업체들도 이런 풍수지리설을 교묘히 활용한다고 한다. A 아파트 단지에 입주해 살게 되면 풍수지리의 영향을 받아 사업이 번창해져서 부자가 된다는 소문을 암암리 시중에 퍼트리고 다닌다. 그러면 분양이 감쪽같이 아주 잘 되곤 한단다. 같은 아파트인데도 어느 호실의 아파트가 자리 잡은 방향과 층수에 따라 그 아파트의 매매가격도 큰 폭으로 영향을 받는다. 이런 아파트의 앉은 방향은 일조량과도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어 우리들의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며 동서남북의 방향에 따라 전, 자장의 흐름도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의 심장도 전기적 자극에 의해 심박동이 이어져 생명이 유지되고 있음을 우리는 의학적 지식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방 안에서도 책상을 어디에 놓고 어느 방향으로 향하게 하느냐에 따라 학습 집중도가 상이하게 달라진다는 연구도 있다. 병원 입원실도 햇빛이 잘 드는 침대에 누운 환자가 더 빨리 회복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병원의 침대 자리 배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나는 산부인과학을 전공했다. 정자와 난자의 만남도 그러하다. 한 여인의 뱃속에서 수정난이 어디에 자리잡느냐에 따라 자궁외 임신이 되어 몰락의 길을 걷게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궁 내 정상 임신이 되어 태아 탄생의 결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자궁내에서도 태반이 어디에 자리 잡느냐에 따라 태아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것이다. 전치태반으로 자궁 입구 쪽 잘못된 자리에 앉게 되면 태아는 물론이고 심지어 산모까지도 생명이 위험할 지경에 다다를 수 있게 된다.
이토록 <자리를 잡는 것> 이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이다. 조금 더 시야를 확대해 보면 한국, 미국, 프랑스 등등의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지역(경상도냐 전라도냐)에서 태어났느냐? 에 따라 한 사람의 일생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느 학교 출신인가? 무슨 전공을 선택해서 어떤 직업의 길을 걷고 있으며 어느 직장을 다니고 있는가? 그리고 어느 남자 혹은 어느 여자와 결혼해서 같이 살고 있는가? 아니면 독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들이 자리 잡기의 한[예] 들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바로 우리 인생들의 운명도 이런 자리 잡기의 연속행렬로 결정되는 게 아닌가 한다! 추석이 다가올 즈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들이다.
안광준
1999년 월간 한국시 4월호 수필 부문 등단
(직)대한산부인과의사회 고문
대한산부인과학회 부회장 역임
온천 사랑의 요양병원 진료원장
christianah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