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그는 어디 까지 인가
김인호
21세기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듯 코로나 팬데믹은 햇수로 3년을 넘기고 있다. 죽음과 삶이 혼재하는 화장터에는 생을 마감한 인간의 존엄성이 없다. “누가 내 죽음을 이렇게 팽개칠 수 있는가” 산소량이 떨어지며 에크모 속 혼미함에서 부르짖는 코로나 망령은 불과 이 태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신선한 산길 속에 비친 청명한 쪽빛 하늘, 그 일상에서 오염된 바이러스는 비집고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신속항원검사상 양성입니다.”
이렇게 확실한 초기 진단법이 있던가. 이미 그 의미는 이 시대 선언문으로 설명이 필요 없는 단죄였다. 이 통보에 체념한 환자의 삶은 천차만별 상황이고 그에 대처하는 경우의 수는 너무 복잡하고 황당하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격리하셔야 합니다.”
이후 행보는 중대본에서 관리 통보할 것이다. 이 네트워크는 일사불란하고 신속하다. PCR검사를 RAT(신속항원검사) 결과로 대체한 날, 나의 진료실은 감염자와 외래 환자가 혼재되며 방역 수칙이 흐트러졌다. 진료실과 대기실을 격리하고, 검사자는 입구 한 편에서 판정 귀가시켰다. 일일 확진자 사십만 명을 넘어 세계 최대 감염자가 속출한 날,
”원장님! 저도 열나고 목이 따가워요“
우려하던 젊은 근무자 간호사가 확진되었다. 진료실 폐쇄의 갈림길에 섰지만, 업무를 절반으로 줄이고 7일간 격리시켰다. 그녀가 다시 출근하는 날, 기다렸다는 듯 고참 간호사가 연이어 확진되었다. 심상찮은 조짐이었다. 오미크론, 그의 확산세는 파죽지세였기에 나는 이중 방어막과 유리 캡을 덮어썼다. 나의 직업관에 처음으로 불안 공포와 회의감이 엄습했다.
”여보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2m 이상 접근하지 말아요.“
퇴근하며 베란다에 옷을 내다 털고 목 속을 식염수로 가셔내고 각자 방으로 칩거하기 시작했다. 나이와 기저질환으로 면역력에 자신이 없었다. 2년 전 초기 우환 코로나 유입 후 열 명 이상의 의사가 감염되어 사망했다는 현실은 충격이고 불안을 가중했다. 거실은 암울하고, 뉴스는 위중증자 사망자 장례 절차의 혼선, 요양병원 집단 감염으로 코홀트 격리 기사가 대수롭지 않은 듯 방송하고 있었다. 14세기 지구상 3억을 횡사시킨 페스트, 또 스페인 독감(1918년)은 2년 동안 5천만 명이 사망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역대 이 두 역병은 인간의 지성과 노력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자연현상 자체로 소멸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허황한 상황이지만, 어쩔 것인가. 제발 비켜 가길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절대 칩거하며 엄격하게 차단했다. 그러나 그 틈새로 구멍이 뚫린 것은 꽃망울이 터진 3월 말이었다.
”여보 나 목이 아퍼요...“
아내는 거의 울상이었고, RAT는 과학이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현상이지만 의사 남편으로 아쉬움이 밀려왔다. 숱한 양성 반응 환자처럼 극복하는 길뿐 우회할 길은 없었다.
”이제 입맛을 모르겠네요. 입이 쓰고 목이 따가워 잠을 이룰 수 없어요. 몸살과 오한이 덮치고 밤새 기침이 나와요. 가래도 콧물도요...“
마뜩잖은 나의 대응에 오미크론 맹독성을 일깨우듯 아내는 고통스러워했다. 난 ‘팍스로비드’ 수입 치료제를 처방하여 복용하기로 작정했다. 위중증 대상임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 약은 한정된 수입 용량으로 처방하기 까다로운 금기 사항이 많아 혼용금기 약물이 23가지로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거기에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아내 감염으로 나는 외토리로 진료실을 지켰다. 방역본부는 이윽고 전염원 수색을 포기하고 판데믹의 포위망마저 풀어 버렸다. QR 코드와 자동 체온으로 열감을 측정해 왔던 2년여 동안의 방역 프로세스와 입출국시 14일 격리 점검도 의미없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난 3년간 마치 간첩 색출하듯 범국가적으로 촘촘하고 세밀한 방어망 아니었던가. 이 코로나의 종말은 어디까지인가?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말처럼 되었다. 마스크 대란을 겪고 난 뒤 우선 1차 예방접종 했던 어깨가 뻐근했던 기억이 새롭다. 개발 예방백신의 사전 수입 부족의 헤프닝이 있었으나 접종 추진은 질병청 몫이다. 백신의 혈액응고장애와 신경마비 부작용이 나타나자 백신 거부 운동이 퍼져 나갔으나 비접종자 개인 활동 영역을 QR로 제한하며 일단은 국민의 80%가 2차접종을 완료하였다. 아내는 팍스코레나를 복용한 일주일간 약물 부작용에 시달렸다. 기침과 가래 근육통이 동반되는 과민반응으로 초죽음을 겪은 아내는 코로나 격리에서 해제되었다. 그러나 폐CT상 폐렴 양상이 남아 있고 ”아직도 입맛은 소태맛으로 혀가 말려드네요.“라며 포스트코로나 신드럼에 시달리고 있다.
”여보! 봄볕이 따스해요. 조금씩 걸어 보겠수?“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나는 벚꽃 만발한 양재천변을 걷는다.”어쩜 당신은 비껴가우?“ 아무리 겹겹이 차단하고 있지만 의사이기에 조만간 찾아올지 모를 변형 오미크론의 침습을 예측하며 아내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나 역시 ‘코로나! 과연 그의 끝은 어디까지인가.’되물으며 두려워 하고 있으나 믿고 있다. 4차 예방도 하며 면역성으로 막아보다 보면 역시 자연의 싱그런 봄바람을 타고 맥없이 사라지는 코로나 말로(末路)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빌어보는 마음은 누구보다 간절하다.
김인호
필자; 수필과 비평 (2012년)등단
의협 의사시니어클럽 운영위원장, 한국의사수필가협회 고문
수필집 <그리움도 저마다 무늬가 다르다>
drkimih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