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범죄적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아이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사회가 아이에게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한 가운데, 그리고 ‘사회적 감정’을 키우거나 자신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키우지 못하는 가운데 성장하도록 버려두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는 스파이나 이방인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어떤 아이는 이런 기회를 받고 어떤 아이는 그렇지 못하다. 세상은 아이게 탐욕스럽기 그지없는 용(龍)으로 비친다. 기회를 갖지 못한 아이가 용을 무찌를 파괴적 무기를 만드는 것은 정당하다고 여긴다. 이보다 더 흔한 예로 응석받이로 자란 아이들이 있다.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은 삶의 초기에는 이롭겠지만, 아이에게 엄청남 피해를 주는 측면도 있다. 아니가 세상에 적응하도록 키우는 임무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어머니보다, 그 임무를 과도하게 발휘하는 어머니가 훨씬 더 많다.
이런 어머니들은 자신이 아이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점을 입증해 보인다. 이러면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발달시키지 못하게 된다. 만약 아이가 일생을 왕자처럼 살아갈 수만 있다면 바람직할 수도 있다. 대다수는 그럴 수 없고 사회는 최대의 기여와 적응을 요구한다. 사회가 보상을 하는 예는 극히 드물지만, 처벌은 아주 신속하다. 사회는 각자에게 기회를 보장해주는 대신에 유익한 것을 내놓지 않으면 처벌을 내린다.
응석받이로 자란 아이는 증오로 자란 아이와 같은 태도로 세상을 본다. 자신에 대한 온갖 찬사와 환영이 자신 앞에 놓인 삶의 과제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걸 깨닫고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응석받이로 키우고 과도하게 보호하는 걱정하는 것은 올바른 양육태도가 아니다. 아이가 훗날 반드시 직면할 공동체적 과제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할 뿐이다. 아이를 혐오하는 것이나 응석받이로 키우는 것이나 똑 같이 열등감을 키워 훗날 아이의 적응을 어렵게 만든다. 오늘날 이런 식으로 정서적으로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이 그릇된 삶의 패턴을 낳는 가장 큰 원인일 성싶다.
삶의 패턴은 대체로 아이가 5~6세 시기에 고착된다. 이 시기에 일어나는 일단의 상황들이 아이의 열등한 상황에 특별한 색깔을 입히며, 삶의 목표를 굳히게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가 안전이나 완전성, 우월 등으로 여기는 것들을 추구하는 행동 패턴이 생겨나게 된다. 만약 아이가 훗날 교육이나 처지의 갑작스런 변화를 통해서 통찰을 얻지 못하면, 그 같은 행동 패턴은 역동적이고 통일된 흐름을 지속한다.
개인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자기 자신에게 객관적일 수 있는 기술을 사전에 배운 사람이라야 경험에서 배울 수 있다. 자신의 행동 패턴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기술은 저절로 배워지기는 힘들고, 대체로 외부 영향이나 교육을 통해 얻어진다. 대다수는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패턴에 맞추어 왜곡시키고,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기에 대체로 본인에게 어울리는 경험이 일어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의 경험은 어린 시절의 열등한 상황과 그 상황을 보상하려는 삶의 목표의 본질에 따라 결정된다.
자신의 삶의 패턴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필요하다면 목표를 바꿀 수 있고, 또 자신의 행동에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파악할 줄 아는 개인만이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라 할 수 있다. 개인심리학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표와 자신의 패턴을 이해하도록 돕고,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적어도 신경증적인 행동에 따를 수 있는 큰 잘못을 작은 실수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개인심리학은 분명 사람들이 행동 패턴을 바굴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점이 개인심리학의 최대의 장점이다.
우월의 목표가 정해지기만 하면, 각 개인은 현실의 장애들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직접적으로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앞으로 나이간다. 개인은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적절한 도구와 가치를 선택한다. 개인심리학에서는 이 도구를 ‘성격적 특성’이라고 부르고, 도구 전체를 ‘인격’이라고 부른다. 한 인간의 인격은 그 사람이 인생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선택한 도구와 장비의 총합이라고 볼 수 있다. 인격은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하나의 통일성이다. 어느 날 주식을 사다가 갑자기 다음 날 주식을 판다고 하여 ‘인격 분열’이라 할 수 없다. 이 투자자의 목표는 오직 돈을 버는 데 있다. 어떤 사람을 전에는 수 없이 칭찬하다가, 갑자기 비난을 한다하여 ‘인격 분열’이라 할 수 없다. 그 사람이 살아온 패턴이고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이 선택하는 구체적인 도구는 그 사람의 체질과 환경, 시대, 그리고 그가 마주한 저항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야심가의 공격성과 성직자의 순종처럼 삶의 패턴에 차이가 존재한다. 무솔리니와 간디도 시대와 환경이 그들로 하여금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선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부모의 특별한 관심에 따라 아이의 삶의 패턴이 달리즌 경우가 많다. 설교자, 변호사, 경찰의 자식들이 종종 범죄자가 되는 수가 있다. 부모의 고압적인 권위에 압도당하면 아이는 부모의 약점을 건드리는 경향을 보이며 반항아 기질이 발생한다.
개인심리학은 상대적인 과학이며, 기준을 내세우는 법칙들의 집합은 아니다. 절대적인 충동이나 만병통치약, 구원을 위한 단순한 공식 같은 것들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 시대에 적절한 상대적인 어떤 공식을 대략적으로 소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 공식을 갖고 있으면 신경증환자나 범죄자, 정신병환자라 부르는 사람들의 행동을 쉽게 비교할 수 있다.
여기서 과감하게 정상적인 사람을 대략적으로 묘사한다면, 완전한 인간 존재가 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 사람은 자신의 개인적 약점과 어린 시절의 경험을 사회적으로 값지고 생산적인 일로 보상하려 한다. 이런 사람은 정직과 성실, 책임감을 발달시킨다. 나이 들며 그의 사회적 연결과 유용성은 더욱 넓어지고 태도도 더욱 훌륭해지며 용기도 커진다. 그는 행동과 판단과 봉사활동 등에서 더욱 독립적인 존재가 되지만, 그의 활동은 어디까지나 그 시대의 사회적 필요에 따른다. 의미를 추구하는 노력을 통해서 해소되지 않은 야망이나 자만심을 사회복지에 기여하는 쪽으로 승화시킨다. 그 사람의 이성(異性)을 동료로 존중하며, 노동뿐만 아니라 삶의 특권까지도 이성과 같이 나누려 한다.
첫댓글 매우 합리적이고 좋은 내용인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우리 총무이사님이 거의 가까이 간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