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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개요
편집자 전경홍
1.수필이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인간의 사상, 감정, 정서, 상상 등을 문자와 기호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예술에 다양한 장르가 있듯이 문학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는 흔히 시, 소설, 수필, 평론, 희곡을 문학의 5대 장르라고 부른다. 이 중에서 수필 문학이란 무엇이며, 수필은 다른 장르와 비교할 때 djEJ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수필의 사전적 정의는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 따위를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기술한 산문 형식의 글” 이라고 말한다.
영어로는 수필을 ‘에세이’(Essay, miscellaneous writings)라고 하는데, ‘에세이’는 “산문체로 쓰는 적당한 길이의 작문으로, 작자가 선택한 주제를 내용으로 그 주제와 작자와의 관계를 별 부담 없이 서술하는 글”이라고 설명한다.
영어 사전들이 기술하는 수필의 정의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에세이’란 주로 분석이나 해석을 위주로 어떠한 대상을 약간은 한정되고 개성적인 관점에서 다루며, 문제와 방법이 어느 정도 자유로운 문학적 지식을 말한다. (Webster Dictionary). '에세이‘란 어떤 대상이든 상관없이 작자의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산문체의 문학적 저작물로, 좀 더 주관적이고 개성적이라는 점에서 논문, 소설 등과 다르다. '에세이'란 대체로 산문 형식으로 쓰는 적당한 길이의 작문으로, 어떤 대상과 작자와의 관계를 부드럽고 간략하게 서술한 것이다.
2.수필의 역사
동양에서 ‘수필이라는 용어를 맨 처음으로 사용한 이는 남송의 문인 홍매로 알려진다. 폭넓은 독서가로 알려진 용재 홍매 선생은 자신의 지식을 토대로 정치, 사회, 사상, 역사, 풍속예술, 의학, 천문, 수학 등 다방면의 사상에 관한 고증을 기록한 <용재수필>을 지었다. 그 책의 서문에 “뜻한 바를 수시로 기록하여 앞뒤 차례가 없으므로 이름하여 수필이라 이른다.”고 썼다. 서양에서는 16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1533~1592)가 TMs 수상록(Les Essais)이 최초의 수필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뒤이어 영국의 사상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 수상록을 발표한 후 유럽에 ’수필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 이인로(1152~1220) 선생이 쓴 파한집을 최초의 수필로 보고 있으나, ‘수필’이라는 제목의 글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중기 이후이다. ‘윤흔(1564~1638)의 <도재수필>, 이민구(1589~1670)의 <독사수필>, 조선 숙종때 승려 명안 스님의 <배우수필 1722>, 조선건의 <한거수필 1688>, 이형상의 <병와수필>, 박지원의 <일신수필>, 안정복의 <상옹수필>, 정종유의 <현곡수필>, 조운사의 <몽암수필> 등이 대표적인 수필작품으로 전한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이전의 한문체 형식의 수필을 ‘고전수필’ 이라고 한다면, 갑오개혁이후에 등장한 한글 구어체 형식의 수필을 ‘근대수필’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근대수필’은 일제 강점기의 암울했던 시대에 활동했던 문인들이 쓴 수필로, 주로 인간과 사회, 자연 따위에 관한 개인적 정서와 철학적 사색 등을 주제로 한것이 특징이다. 나도향의 <그믐달>(1925), 민태원의 <청춘예찬>(1930년대),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며>(1938), 양주동의 <질화로>, 한용운의 <명사십리>(1940), 김진섭의 <백설부>(1948), 계용묵의 <구두>(1949), 이양하의 <신로예찬>, 이영도의 <매화>, 이희승의 <딸깍발이>(1956), 정비석의 <산정무한>,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 등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 수필은 절정기를 맞이하였다. 소설가와 시인들 외에 젊은 인문학자들과 에세이스트들이 수필문단에 가세하여 많은 수필작품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수필붐을 타고 1972년 3월에 <수필문학>이 창간되었다, ‘수필 문단’이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1960년대 이후에 발표된 수필을 ‘현대 수필’ 이라고 불러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조치훈의 <지조론>(1960), 피천득의 <인연>(1969), 이어령의 <골무>, 정진권의 <짜장면>, 목성균의 <세한도>, 안병옥의 <생각하는 갈대>, 김형석의 <수학이 모르는 지혜>, 법정의 <무소유>,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박경리의 <거리의 악사>, 박완서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정희승의 <살아 있는 돌>, 김훈의 <광야를 달리는 말>등이 명수필로 손꼽힌다.
3.수필의 특성
수필은 시, 소설, 희곡, 평론과 어떻게 다를까?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필자는 크게 수필의 형식과 내용 측면에서 그 특성을 정리해 본다.
첫째, 수필은 산문체의 글로, 다른 장르에 비해 비교적 형식이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다. 시처럼 운율에 얽매이지 않고 붓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서술하는 것이 바로 수필이다. 흔히 수필을 ‘자유로운 산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본다.
남북조시대 문학평론가 유협이 쓴 <문심조룡>에 “유문유필 이위무운자필야 유운자문야”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를 번역하면 “문장에는 시문과 수필이 있는데, 운율이 없는 것을 시필이라 하고, 운율이 있는것을 시문이라고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수필은 형식상으로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희곡도 아닌 독특한 문의 한 장르라고 말할 수 있다.
수필이 형식상 지니고 있는 또 다른 특성으로, 글의 분량이 다른 산문에 비해 비교적 짧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물론 시, 시조 등 운문에 비해서는 길지만, 소설, 평론, 희곡 등에 여타 산문에 비해서는 짧은 것이 특징이다. 수필은 장황하게 지루하지도 않고, 깔끔하고 간결하여 읽기에 수월한 것이 그 묘미이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의 미라고나 할까. 글은 길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짧으면서도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수필은 글의 분량이 대략 원고지 15매 정도가 적당하나, 5매 정도의 장편 수필도 적지 않다. 글쓴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나 사상을 군더더기 없이 충분히 전달할 수만 있다면 수필의 분량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수필은 대부분 1인칭 형식으로 묘사하는것이 일반적이나, 소설적 기법이나 비평적 기법을 사용하는 수필도 적지 않다.
둘째, 수필은 글의 주제나 내용 측면에서 소설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
소설은 작가의 생각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이나, 상상으로 가능한 일들을 여러 가지 형태의 기법을 사용하여 쓴 글이다. 이처럼 소설이 허구성을 띰으로써 읽는 재미에 치중한다면, 수필은 비교적 비허구적인 내용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글이다. 수필은 글의 소재가 어떠한 제한 없이 아주 다양한 것이 또 다른 특징이다. 글쓴이의 사상이나 체험을 개성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라면, 설명문, 논설문, 감상문, 비평문은 물론이고, 서사문, 기행문, 견문록, 수상록, 일기, 편지글, 잡문 등 어떠한 내용의 글이라도 무방하다.
수필가 양주동 박사는 우수마발이 모두 수필의 소재라고 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코로 맡아지는 것, 피부로 느껴지는 것, 마음에 다가오는 것, 머리로 생각되는 것 등 모든 것이 수필의 소재이다. 수필은 마치 용광로와 같아서 이처럼 다양한 소재들을 거리낌 없이 글로써 담아낸다. 수필은 글을 통해 자연과 인생을 관조하기로 하고, 철학적인 인생관과 가치관을 성찰하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 보고 느끼는 신변잡기나 생활 속의 유머와 위트를 글로 쓰기도 하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 체득한 삶의 지혜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이처럼 수필은 글쓴이의 중심 사상이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심오한 문학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수필은 글의 내용이 주는 무게감 내지는 중향감에 따라 경수필과 중수필로 구분하기도 한다. 사전적인의미로 보면, 경수필은 생활 속의 체험 등을 통해 자신의 느낌을 쓴 글이고, 중수필은 시사적이거나 철학적인 내용을 논리적으로 서술한 글을 말한다. 경수필은 만장의 흐름이 비교적 가볍고 자기 고백적이며 주인공인 ‘나’가 잘 드러난다. 그래서 표현이 주관적이고 예술적 가치가 돋보이며, 감정과 정서가 잘 드러난다. 반면에 중수필은 문장의 흐름이 다소 느리고 주인공인 ‘나’가 잘 드러나지 않으나, 논리적이고 사색적이다. 따라서 글의 내용이 다분히 객관적이고 사회적이며, 실용적인 석이 특징이다.
4.좋은 수필(명수필)의 조건
“좋은 수필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는 수필을 쓰는 문인이면 누구나 늘 마주치는 화두가 아닐 수 없다. 필자로서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화두이기는 하나, 수필을 쓰는 문인의 한 한사람으로서 비록 미흡하지만 나름대로 소견을 정리해 본다.
첫째, 좋은 수필은 글에 담고자 하는 주제와 내용이 참신하고 독창성이 있어야한다. 수필은 글쓴이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문학이다. 진부하거나 구태의연한 주제와 내용으로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거나 공감을 얻지 못한다. 자신의 체험이나 철학적인 가치가 들어 있는 주제나 내용을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로 드러낼 수 있어야 좋은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좋은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글의 주제와 내용이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제와 내용이 진솔해야 하며, 내용을 부풀리거나 과장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야 한다.
둘째, 좋은 수필은 문학성이 가미되어야 한다. 수필이 논문이나 비평과 다른 점은 풍부한 감서오가 서정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수필이 단순한 잡문이 아니라 문학의 한 장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글이 문학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훈적이고 논리적인 글이라 할지라도 문학적인 성서가 깃들어 있지 않으면 진정한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체험이나 사고를 통해서 얻은 글의 소재를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력과 심미안을 통해 재구성하거나, 재창조하였을 때 비로소 좋은 수필이 탄생하는 것이다.
셋째, 좋은 수필은 구성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글에 서론, 본론, 결론이 있고, 기, 승, 전, 결이 있어야 한다. 수필의 특성이 아무리 자유로운 형식을 지닌 것이라고 해도, 논리성이 부족하고 횡설수설하는 글이라면 어떻게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는가? 수필은 보통 제목, 서두, 본문, 맺음의 4부분으로 구성된다, 제목은 척 보기만 해도 주제나 내용의 핵심을 간파할 수 있도록 상징적이고 압축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제목은 독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정해야 한다. 글의 서두는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글의 내용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음식으로 치면 식욕을 돋우는 애피타이저이다. 본문의 내용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맺음은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나 시사점을 전달하는 글의 마무리 작업이다.
넷재, 좋은 수필은 글이 쉽고 간결하면서도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부담 없이 쉽게 읽을 수 있고, 글의 내용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지나친 미사여구는 독자를 식상하게 한다. 글이 읽기에 지루하거나 따분하면 독자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예로부터 수필은 나뭇잎을 모두 떨구어 버린 나목과 같이 담백해야 한다고 했다. 당나라 중기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우명한 향산거사 백거이 선생은 글을 퇴고할 때마다 글을 전혀 모르는 노파에게 먼저 읽어준 후 노파가 알아들을 수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했다고 한다. 그리고 노파가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수도 없이 반복해서 글을 고친 후에야 비로소 붓을 놓았다고 한다.
다섯째, 좋은 수필은 품위와 품격을 갖춘 글이어야 한다.
읽기에 유치하거나 천박한 느낌을 주는 글은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좋은 수필이라고 할 수 없다. 부드럽고 고운 어휘를 골라서 써야하며, 저속한 표현이나 야비한 내용은 삼가야 한다. 수필은 무엇보다 겉치레나 과장됨이 없는 진솔한 글이어야 한다. 수필은 거짓이 아닌 참의 문학이다. 꾸며낸 이야기는 소설에서는 허용되지만, 수필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일기에 거짓 내용이 있을 수 없듯이, 수필에도 거짓이 담겨서는 안 된다. 그리고 수필은 해학성을 가미해야 품격이 살아난다. 심각한 주제와 내용을 다룰 때 글의 중간에 적절한 유머와 위트를 곁들인다면, 독자들에게 한결 긴장감과 부담감을 덜어 줄 수 있다. 진솔하고 감동적인 주제에 유머와 위트까지 겸비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여섯째, 수필은 우리의 교유한 정서를 간직한 민족적인 문학이다. 따라서 수필은 될 수 있는 한 아름답고 순수한 우리말을 골라서 써야 한다. 우리말은 깊은 품위와 긴 여운을 가지고 있으며, 명확하면서도 아름다운 리듬을 가지고 있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언어이다. 찾아보라! 단아하면서도 격조 높은 우리 고유의 한글이 얼마나 많은가? 수필가는 우리 말을 갈고 닦는 연금술사가 되어야 한다. 글을 쓸 때는 늘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내용에 적합하고 어법에 맞는 어휘를 골라서 써야 한다. 한 문장에서 같은 어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잘해야 좋은 수필이 될 수 있다. 불필요한 약어의 사용을 피하고, 비속어와 반복어, 상투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문장의 단락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독자들이 글의 내용을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5.맺음
수필은 글쓴이의 마음과 심성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수필은 작자의 고매한 인격과 사려 깊은 가치관이 민낯으로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좋은 수필을 쓰려면 먼저 자신의 인격 수양과 철저한 자기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수필가는 우주와 대자연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보편성과 내 이웃과 사회를 보듬을 줄 아는 포용성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만 수필이 독자들의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수필은 겸손의 문학이다. 자기를 낮추고 자기 자신을 깊이 반성함으로써 깨달은 소중한 삶의 지혜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진정한 수필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필은 허구성을 지닌 소설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생활문학이다. 따라서 수필은 비현실적이거나 공상적인 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폭넓은 인생 경험이나 생생한 생활체험을 통해 획득한 글감을 바탕으로 진솔하게 글을 써야 한다. 그리고 수필은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발과 가슴으로 써야 한다.
수필가는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글을 쓸 것이 아니라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자연을 관찰하고, 많은 사람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서 살아 숨 쉬는 글감을 찾아내야 한다.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이 상호 교감하면서 서로 정감을 나눌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좋은 수필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