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서정시와 은유적 세계관
은유는 동일성의 미학을 통해 주체와 대상 사이의 총체성을 지향하는 수사학이며, 기호의 본질 또는 기원을 인정하고 이를 표현하는 관점에서 보는 수사학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물질적인 기호나 사물은, 정신적이고 초월적인 세계까지 표현할 수 있다. 이는 곧 시에서 사용하는 기호나 이미지가 물질성 너머에 존재하는 본질이나 신적인 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는 관점으로 확장될 수 있다. 주체와 대상 사이의 유사성은 은유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은유에서 사용되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유사성은 언어의 일반 이론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때 표현하고자 하는 사상이나 의미는 원관념으로, 보조관념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서정시가 지닌 언어 기호에 대한 본질적인 입장이 나타난다. 서정시는 이러한 원관념으로 사상이나 의미를, 보조관념으로 언어 기호가 표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즉 둘 사이의 동일성을 인정하고, 이 동일성에 의해 언어 기호가 사상이나 의미를 표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슈타이거는 서정시가 ‘주체와 객체의 간격이 성립하지 않는’ 장르라고 주장한다. 이는 서정시에서 자아와 세계는 거리를 두고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합일을 이룬다는 말이고, 이는 서정시가 은유의 수사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서정시적 상황 속에서 자아는 대상을 바라보며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자아화 하여 자아와 대상상이의 거리를 없애는 방법으로 동일시된 대상을 묘사함으로써 자아의 정서를 표현한다. 자아와 대상의 거리를 없앤 상황을 ‘거리의 정서적 결핍’이라 한다. 이를 통해 주체와 대상이 서정적인 동일시가 가능해진다.
이런 전통 서정시의 입장과는 반대로, 김춘수의 무의미시는 이미지를 환유적으로 사용하여 자아와 대상 사이의 단절을 의도적으로 추구하여 비동일시를 지향하였다.
정지용은 전통 서정시를 추구하여 자아와 대상의 동일시를 추구하였다. 전통 서정시에서 묘사하는 자연 사물들은 그냥 환유적인 인접성을 따라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자아와 세계를 결합하는 구체적인 이미지로 작용한다. ‘서러운 새가 되어/ 흰 밥알을 쫏다.’고 있는 자아의 이미지가 시 전체를 지배하면서 자아와 세계가 동일한 하나의 서정으로 결합되고 있다. 여기서 자아는 한 마리의 새가되어 양지쪽에 쪼그리고 앉아 흰 밥알이아 쪼아 먹는 존재가 되어 있다. 이것이 시인에게는 더욱 ‘서럽게’ 다가온다.
여기서 나타나는 동일성의 세계는 자아와 세계 사이의 거리를 없애고 자아와 세계가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경지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새는 이 시에서 자연 속에 존재하는 사물이면서 자아와 하나가 되어 있으며, 그 새를 묘사함으로써 시인은 자이의 내면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 이런 동일성의 세계를 밝히는 정지용시인의 말은 이렇다.
시인은 구극에서 언어문자가 그리 대수롭지 않다. 시는 언어 구성이기보다는 정신적인 것의 열렬한 정황 혹은 旺溢한 상태 혹은 황홀한 士氣임으로 시인은 항상 정신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을 조준한다. 언어와 宗匠은 정신 것까지 일보 뒤에서 세심할 뿐이다. 표현의 기술적인 것은 차라리 시인이 타고난 재간 혹은 평생 숙련한 脘法의 부지중 소득이다.
정지용 시인의 시론은 이처럼 시의 언어가 기호 너머의 대상을 담아내야 한다는 관념이 나타나 있으며, 그 바탕에는 은유의 미학이 자리 잡고 있다. 은유가 지닌 동일성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정지용의 이러한 관점은 현대 서정시의 기반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서정시가 기호 자체의 놀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물과 같은 현실, 세계 혹은 근원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자연과 사물이 지닌 본질의 의미를 담아낼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는 장르 의식이 여기에 존재한다.
자아와 세계가 동일성을 형성하면서 하나의 세계로 통합할 때, 자연과 사물들은 인식대상으로서의 차가운 물질성을 넘어서서, 자아와 대화하며 세계의 근원과 의미, 가치를 드러내는 존재가 된다. 서정시는 이러한 자연이나 사물들의 의미나 가치를 표현함으로써 세계의 본질을 독자들에게 풀어놓는 장르가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동일성에 기반 하는 은유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것이고, 삶의 뜻 없음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된다. 은유의 미학을 바탕으로 한 서정시는 그 의미를 상실해버린 시대에 절대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의 한 양상이다.
첫댓글 결론적으로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거리가 멀수록 훌륭한 은유라 말이 귓전에 남습니다.
유사점이 있어 보조관념을 불러왔지만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공통점을 제외한 나머지 이미지가
작품이나 단락 전체의 분위기를 새롭게 하고 주제를 구현하는데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면
훌륭한 은유가 될 수 있다하겠습니다. 즉, 뻔한 은유보다는 상상하기 어려운 비유를 해야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