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한국 낭가 파르밧 원정대(루트 1-1)
이성원 원정대장, 김창호, 김주형 등반대장, 대원 김병찬, 이현조, 주우평, 박남수, 송형근, 김미곤, 박상훈, 박현수, 구형준 12명으로 구성된 한국원정대는 이미 4월 20일 베이스캠프를 설치했으나 43일 후, 6월 14일에 한 팀이 루팔 대장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고도 6,850m까지 오르고 그 지점에 3캠프를 설치했다.
그 사이에 낙석과 눈사태가 여러 지점에 설치한 7개의 텐트들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캠프1에 설치한 텐트 3개와 캠프2의 텐트 모두가 신설 더미에 완전히 파묻히고 말았던 것이다.
6월 말 마침내 공격 팀이 정상 공격을 시도할 생각이었다. 4명의 대원이 6월 26일에 정상 공격에 나섰다. 해발 약 7,550m 지점에서 메르클 린네에 진입해 기어오를 때 김미곤 대원이 다리에 낙석을 맞았고, 부상 정도가 심각해 등반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 힘든 구조 활동을 펴며 베이스캠프까지 그를 내려 보내야 했다.
김창호와 이현조는 7월 13일 또다시 메르클 린네 쪽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오후 10시 30분경 해발 7,125m의 4캠프를 출발해 메르클 빙원(氷原)을 오르고 7,550m까지 뻗은 정말 위험하기 그지없는 아이스 쿨와르의 입구까지 서로 로프를 동여매고 올라갔다.
한국대원들은 오로지 지름 6mm와 길이 50m의 로프만을 사용해 7월 14일 9시경에 다시 등반에 나섰다. 쿨와르를 통해 우르릉거리며 떨어지는 바위와 얼음 덩어리들로 인해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오후 5시경 2인조는 해발 7,850m에 있는 설원(雪原) 최고지점에 도달했다.
그들은 이 지대에서 밤을 새우는 비박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위로 올라갈 결심을 했다. 이어 오후 9시경 남봉과 중앙봉을 잇는 산등성이에 진출하고 두 시간 뒤 마침내 낭가파르바트의 최고지점에 도달했다.
이 2인조는 잠시 휴식을 취했을 뿐 정상까지 중단하지 않고 24시간을 계속 등반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주위가 어두워 납득이 가는 정상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뒤늦게 그들의 성과를 의문시할 수 있을 거라고 조금은 걱정했던 것이다. 이것은 이 산의 다른 쪽으로 하산한 결정에 대한 상황을 짐작해 나온 황당무계한 하나의 시나리오였다.
2인조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확실하게 했다. 그래서 두 한국인은 그들의 주요 스폰서 깃발과 로프를 증거물로 정상에 남겨두기로 결정했다.
그 사이에 김창호와 이현조는 라인홀트 메스너가 서신을 넣어 둔 작은 통을 발견했다. 메스너가 1978년 디아미르의 대장벽 단독등정에 성공한 후 정상에 남겨둔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등정 증거물로 이 철제통을 가지고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김창호와 이현조는 정상에서 10분 동안 있은 후 로프도 서로 동여매지 않은 채 밤 11시 10분 디아미르 대장벽의 킨스호퍼 루트를 따라 하산하기 시작했다. 정상지대 중간 어느 지점에서 한 줄기 설판(雪板)이 느즈러지며 흘러내렸다. 그 바람에 이현조는 눈 더미에 파묻히고 김창호는 50m 아래 깊숙한 곳에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스럽게도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다만 김창호는 헤드라이트를 잃어버려 어둠 속을 하강하는 게 문제였다.
두 사람은 눈사태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계속 아래로 하강해 해발 7,100m에 있는 일본원정대 텐트에 다다랐다. 그들은 억수로 쏟아지는 잠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휴식을 취하고 나면 다시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듯 힘든 상황에서도 비틀거리며 아래로 계속 내려갔다.
그들은 환각을 일으키고 있었다. 한 다른 등산가가 그들 앞에 나타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두 사람은 마지막 힘을 다해 루팔 대장벽의 4캠프를 출발한 이후 디아미르 기슭의 베이스캠프까지 68시간 남짓 걸린 이 대장정을 해냈던 것이다.
두 한국인을 맞아들인 등반가들은 이현조가 먼저 도착하고 이 엄청난 고난을 겪은 후에도 놀랄 만큼 씩씩한 모습이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 산의 다른 쪽에 있는 동료 대원들과 교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서로 9일 후에야 동료대원들과 만났다. 전부해서 이 원정대는 109일 걸렸다.
낭가파르바트 루팔벽 초등자인 라인홀트 메스너와 35년 후에 등정한 김창호가 낭가파르바트로 4일간의 여행을 했다. 루팔벽 아래 타라싱 마을에서 메르클 쿨와르의 상태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1970년 낭가에서 라인홀트는 친동생을 잃었고 자신은 동상으로 발가락을 잘라야 했다.
출처 : 월간산(http://s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