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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k 9. 타리싱 - 라마 메도우 / 6.4km
Tarishing (2937m) - Rama Meadow (3200m)
7. 16. (토)
라마 메도우를 향하여
세상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썬크림도 튜브형 외 요즘은 스프레이형도 있고 스틱형도 있다. 자주 발라주어야 하는 히말라야 트레킹 때는 스틱형이 편리해 보인다. 나는 예전 그대로 튜브형을 가지고 왔는데 중간에 꺼내기 불편해 하루 한 번 아침에 바르는 것으로 만족했다. 세탁비누도 늘 가루비누를 가지고 다닌다. 이번에 보니 종이비누를 가지고 온 분도 있다. 내 빨래 스타일로는 가루비누가 낫다.
내 방은 이층 제일 끝, 길가에 있다. 아침 일찍 길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 머리맡 창 커튼을 열어보니 바퀴 달린 직사각형 수레에 뭔가 천으로 덮여 있고 여러 사람들이 주위에서 잡아 끌고 올라간다. 금방 장례행렬임을 알 수 있었다.
동행하는 20여 명 모두 이슬람 전통복장의 남자들이다. 따로 장례식 복장은 아니고 평소 입던 무채색의 옷이다. 한 사람이 뭐라고 선창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알라~@#$%라고 후창을 한다. 아주 담담한 모습이다. 특이한 것은 여자와 어린이는 없고 젋은 사람들이 드물다. 아니 젋기는 한데 이곳 사람들은 일찍 수염을 기르고 40세만 넘으면 거의 노인처럼 늙어보이니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
오늘은 차량으로 이동하니 비교적 편안한 하루가 될 것이다. 그런데 파키스탄 히말라야에서 차량 이동도 쉬운 일이 아니다. 타리싱으로 산길을 올라 올 때 충분히 롤러코스트를 타는 경험을 했다. 이제 다시 타리싱으로 내려가서 낭가 파르밧 산군 동쪽 라마 메도우로 간다. 그곳에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낭가 파르밧 산군을 돈다.
느긋하게 아침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승합차를 타고 오전 9시 가까이 되어서 출발. 역시 예상대로 험악한 절벽길이다. 그렇게 50분 가다가 작은 마을에서 멈추었다. 경찰 체크포스트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새 포터들을 구하는 모양이다.
오전 11시 40분 아스토레 도착. 올라올 때 점심 먹었던 호텔 식당에서 차와 음료수를 마시며 휴식. 점심을 먹고 갈 줄 알았는데 라마 메도우 가서 먹는단다. 이곳에서 식량을 보급해서 간다. 주방팀들이 시장으로 갔다.
아스토레에 오니 모두들 휴대폰을 꺼내 와이파이 접속을 시도한다. 이번에도 가이드 에싼의 핫스팟을 이용했다. 8일 만에 가족 친지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멤버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당연히 카카오톡이 대세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블로그에 올리기도 하지만 용량과 속도 때문에 사진은 몇 장 올리지 못한다.
식량을 준비하러 간 주방팀이 도착했다. 이미 시간은 오후 1시를 넘었다. 구비구비 산길과 절벽길을 돌아 라마 메도우에는 오후 2시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무성한 숲 속이라 좋아했는데 관광경찰이 오더니 저 아래 캠프사이트로 가라고 해서 실망했다.
지구 온난화의 희생국은 저개발국
라마 메도우는 텐트촌이 있는 유원지다. 메도우에서 3km 거리 위에 라마 레이크가 있다. 낭가 파르밧 산군 북동쪽 끝 최고봉 총그라(6830m)에서 흘러나온 빙하가 만든 호수다. 파키스탄은 유원지가 그리 많지 않고 주로 북쪽에 있다. 히말라야를 중심으로 훈자, 스카르두, 길기트, 나란 밸리 등이 대표적인데 훈자를 제외하면 그리 볼 것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히말라야 지역으로 인도와 국경도시 라호르나 수도 이슬라마바드 또는 아주 먼 남쪽 상업도시 카라치에 사는 부유한 사람들이 더운 여름철 휴양차 온다. 이곳 라마 메도우도 파키스탄에서는 제법 유명한 유원지라고 하는 데 우리 기준으로 보기엔 아주 소박하다.
파키스탄 지도를 보면 북부는 8천 미터급 히말라야 지역이고 국토 중앙을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인더스강을 중심으로 서부 위쪽은 아프가니스탄과, 아래쪽은 이란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데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한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 그곳 대부분은 1~2천 미터급 황량한 산이다. 반면 강 동쪽은 평야지대이고 더 동진하면 인도의 라자스탄 사막의 연장으로 사막지대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 온 8월 초부터 비정상적인 몬순 폭우로 인한 대홍수가 파키스탄 남부 평야지대를 휩쓸어 1300명 이상의 사망자와 무려 3천만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키는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그 전까지는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을 받던 중이었다. 대홍수로 200개 이상의 다리와 파키스탄 식량의 절반을 생산하는 신드주 지역의 농경지 전체가 휩쓸리며 전체 농작물의 90%가 파괴됐다고 한다.
파키스탄의 기후변화부 장관은 기후변화에 기여한 선진국들이 기록적인 폭우로 고통받는 파키스탄에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파키스탄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 기여한 바는 1% 미만에 불과한데 손실과 피해를 입고 있다. 오염을 일으킨 부유한 국가들이 홍수 피해를 입은 파키스탄에 배상해야 한다" 고 주장했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현재 기후온난화의 직접적인 피해를 받고 있는 나라는 대부분 네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저개발국가들이다. 이 문제를 등한시 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공멸의 길로 갈 것은 자명하다. 모든 나라가 함께 머리를 싸매고 해결책을 도모해도 쉽지 않은데 현실은 오히려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에싼의 큰 형
캠프는 찻길 옆이다. 위쪽으로 유원지 텐트촌이 보인다. 주말이라 차량과 오토바이 왕래가 끊이지 않고 있어 소음이 엄청나다. 캠프 설치를 마치고 근처 캠프 식당에서 밥을 기다리고 있으니 에싼이 한 사나이를 데리고 와 큰 형이라고 소개한다. 길기트에서 여행사를 하고 있는 형의 나이는 45세. 에싼이 28세 막내라고 하니 터울이 긴 편이다.
나중에 사진을 정리하다가 이 친구가 4일 차 바부사르 고개를 넘어 점심을 먹었던 삼거리에서 찍힌 사진을 보았다. 당시는 여행 초반이라 소개없이 그냥 에싼만 만나고 간듯하다. 이제 일정이 바뀌어 역방향으로 넘는다고 하니 아무래도 동생이 걱정이 되었는지 길기트에서 차를 몰고 왔다. 길기트에서 아스토레 거쳐 이곳 라마 메도우까지 120km이고 차로 4시간 이상 걸린다.
낭가님이 에싼 형이 쓰고 있는 모자가 마음에 드는지 한 번 쓰보자고 한다. 낭가님이 모자 쓴 모습이 영락없는 파키스탄 사람이다. 이 모자 이름은 파콜(PAKOL).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에 거주하는 남성들의 전통모자로 추운 파키스탄 북부 지방에서는 거의 모든 남성들이 쓰는 국민 모자라고 할 수 있다. 파키스탄 트레킹을 하면 어디서든 이 모자를 항상 보게 된다. (우리도 나중에 페어리 메도우에서 여행사에서 준비한 흰색 파콜 모자 하나씩 선물받았다)
라마 레이크
점심을 먹고 라마 레이크를 다녀오기로 했다. 3km 거리로 여기보다 300m 높은 곳이다. 멀리 호수로 가는 길이 보인다. 지프차 두 대를 대절해 나누어 탔다(한 대당 왕복 요금은 15,000원). 그리고 잠시지만 찻길은 오프로드의 결정판을 경험했다. 파키스탄의 산길은 항상 험악하다.
지프차들이 모여 있는 좁은 주차장에 도착했다. 호수는 여기서 30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오가는 현지인들도 많다. 말을 타고 편하게 가는 사람도 있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사진찍기를 좋아해서 볼 때마다 같이 찍자고 한다. 도시건 시골이건 산골이건 참 순박한 사람들인데 극단적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때문에 세계적인 평판은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혀 있다.
그리고 파키스탄 여성들의 인권은 최악에 속한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여자들을 보기가 어렵다. 대부분 집 안에 있거나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다. 산골 마을에 외국 트레커들이 캠프를 차리면 동네 꼬맹이들이 다 나와서 구경하는데 히잡을 쓴 여자 아이들은 멀리서 웅크리고 모여 앉아 구경한다. 그러다 호기심으로 조금이라도 가까이 오면 남자들이 돌을 던져 오지 못하게 한다. 물론 위협에 그치기는 하지만, 세상에 아이들에게 돌을 던지는 어른이라니!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 2011년 로이터 조사에 의하면 여성들이 살기에 가장 위험한 나라로 아프가니스탄, 콩고, 파키스탄, 인도, 소말리아가 차례로 ‘톱 5’에 들었다. 파키스탄은 3위로 종교·문화적 전통과 가부장적 부족사회의 관행이 여성 인권을 위협하고 있다. 파키스탄 인권위원회는 매년 1000명의 여성이 엄격한 이슬람식 성 규범을 어겼다는 이유로 가족이나 친척에 의해 ‘명예살인’으로 희생된다고 밝혔다.
그나마 도시는 여자아이들이 히잡도 쓰지 않고 낯선 이방인에게 말을 걸며 사진도 같이 찍는다.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나란 밸리의 호텔에서 만난 가족과 함께 여행 온 귀여운 여자 어린이는 영어도 유창하고, 수줍어 하면서도 이야기를 잘 한다. 보수적인 시골일수록, 문맹률이 높을수록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가 힘을 얻고 있는 슬픈 현실이다.
어느듯 오후 4시가 넘었다. 잠시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 반팔에 토시만 끼고 왔는데 고도가 높아지고 바람이 부니 춥다. 다시 또 깜박했다. 가벼운 산책으로 생각해 맨 몸으로 왔다. 히말라야에서는 아무리 가까운 곳을 방문하더라도 항상 물과 보온자켓과 헤드렌턴, 그리고 스틱을 지참해야 고생을 덜 한다.
사첸(Sachent) 빙하의 물이 한쪽에 모인 라마 호수는 그리 넓지 않다. 뒤쪽 설산이 보이는 맑은 날에는 멋 있겠지만 지금은 구름이 가리고 있다. 그러나 이 호수는 낭가 파르밧 산군에 전체에 있는 단 두 개의 호수 중 차량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호수이기때문에 많은 현지인들이 찿아 온다. 그래서 아래쪽에 유원지가 생겼다. 호수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파키스탄 유흥 문화
파키스탄은 헌법에 이슬람을 국교로 삼고 있어 술과 돼지고기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그래서 놀 때도 술을 먹지 않고 '맨정신'으로 박수치며 논다. 지난 번 라토보에서 밤에 포터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노래를 부르며 놀 때도 그저 통을 두드리며 박수치며 합창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강렬한 비트박자의 노래가 대부분이다. 술 한 잔 해야 노래와 춤이 나오는 한국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밤중에 위쪽 텐트촌에서 노래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이 놀러왔다. 물론 대부분 남자들이다. 써니님, 대표님과 함께 어떻게 놀기에 저렇게 큰 소리가 나오는지 올라가 보았다. 가까이 가보니 대형 텐트 안에 10여 명의 남자들이 박수치며 노래부르고 춤을 추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 그런 텐트가 많이 있다. 텐트를 빌려 가무를 즐기는 아주 ‘건전한’ 놀이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파키스탄에서 술을 아예 못 먹는 것은 아니다. 무슬림들만 먹지 않을 뿐 소수의 비무슬림들이나 외국인들은 해당사항이 없다. 그래서 외국인들에게는 호텔에서 맥주 등 술을 판다. 히말라야 원정대는 소주를 많이 가져가기로 유명하다. 고산 등반에 무슨 술이냐 하겠지만 알고보면 등반가들만큼 험한 육체 노동자가 없다. 게다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작업이다. 휴식일에는 가볍게 마시지만 등반을 마치면 성대한 파티를 연다.
2000년 가을 첫 히말라야 트레킹으로 안나푸르나 서키트를 마치고 당시 산악인 박영석 대장이 운영하는 카트만두의 빌라 에베레스트에서 며칠 머무를 때 한국 원정대들이 와서 밥을 먹는 것을 몇 번 보았다. 그런데 시커멓게 얼굴이 탄 사나이들이 바비큐를 해 먹으며 연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옆 방에 투숙하고 있는 사업차 온 젊은 친구에게 물었다.
"아니! 그 높은 산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저렇게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면 건강이 좋지 않을텐데 어째서 자제하지 않을까요?"
그러자 그 친구 말이 걸작이다.
"스님, 스님도 등산을 해 보아 아시겠지만 등산은 노가다 중 상노가다에 속합니다. 노가다들이 술담배 빼면 시체죠!"
입국 때 술을 가지고 들어올 수 없다고 하지만 외국인은 심하게 검색하지는 않는 것 같다. 파키스탄 원정이나 트레킹 후기를 보면 항상 술을 가지고 가서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지만 이번 우리팀에게 작가님은 출발 전 당부 사항으로 절대 금주령을 내렸다.
트레킹 중에 술을 금합니다(절대 가져오지 마세요).
음주로 인한 사고 시 보수적인 무슬림에게 오해를 살 수 있으며 수습하기 어렵습니다.
무슬림은 민족적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하며 낭가파르바트 주변은 그런 경향이 더 강합니다.
그들을 무시하는 언행을 할 경우 포터들의 집단 항의 또는 짐을 옮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그들에게 한국어로 욕을 하지 말아주세요.
꼭 이슬람 국가가 아니더라도 친목으로 모인 팀이 아닌 낯선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임시로 모인 그룹에서 술로 인한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잘한 일이다. 어느 모임이든 주(酒)류와 비주류가 있게 마련이고 친한 그룹이 아니면 반목이 일어나기 쉬워 주 목적인 히말라야 트레킹이 중간에 틀어질 수 있다. 더구나 평지 관광여행이 아닌 고산 트레킹에서 운행 중 술은 절대 금물이다.
라마 릿지 3980m, 그리고...
낮에 라마 레이크에서 내려와 내일 일정에 나와 있는 라마 릿지를 바라보았다. 고개로 오르는 길이 빤히 보인다. 3200m의 라마 메도우에서 무려 780m를 올려야 한다. 힘든 일정이 예고된 셈이다. 4천 미터 이하이고 빙하 모레인 길이 아니라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날 알게 되었지만 라마 릿지는 가벼운 워밍업에 불과했다. 릿지 너머에 어마어마한 길 아닌 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파키스탄 지형과 주변국. 금년 여름 대홍수로 평야지역인 발로치스탄 주와 신드 주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두 대의 차량으로 출발 준비
출발!
오전 9시 50분, 중간 마을 체크포인트 앞에서 정차. 관광경찰이 있다.
파콜 모자와 수염, 전통복은 파키스탄 북부지방 남자의 전형적인 옷차림이다.
여기서 새 포터들을 고용한다.
오전 11시 20분 아스토레 식당 도착. 차를 마시며 와이파이에 접속해 고국의 친지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구비구비 산길을 따라 오르면
라마 메도우 숲이 나온다. 아주 멋진 캠프사이트인데
관광 경찰이 저기 아래 길가로 가라고 한다.
길 옆 캠프 사이트에 짐을 풀고
위쪽은 유원지 천막촌이다.
캠프사이트 옆 식당에서 만난 가이드 에싼의 형
9일 전 삼거리에서 찍은 사진에 우연히 잡힌 에싼의 형 (대표님이 발견)
에싼의 형이 쓰고 있는 파콜(PAKOL) 모자를 한 번 써보고 싶은 낭가님. 거의 파키스탄 사람으로 보인다. (by 작가님)
점심 먹고 조금 쉬다가
라마 레이크 방문. 거친 돌길을 10여 분 달려 오후 4시 주차장 도착
라마 레이크는 주차장에서 30분 더 걸어가야 한다. 힘들면 말을 빌려 탈 수 있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같이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사첸(Sachen) 모레인 빙하 아래에서 빙하수가 흘러 나오고
빙하 위 모레인에 풀이 나 있다.
호수는 한참 걸어가야 나온다.
호수 등장. 네팔의 고사인꾼드, 틸리초, 임자초 등의 빙하호수를 생각하면 실망한다.
그래도 이 호수는 낭가 파르밧 산군 전체 두 개의 빙하 호수 중 접근이 가능한 유일한 호수다.
또 하나 있는 호수는 무타트 패스 너머에 있다. 그곳은 빙하 한 가운데 있어 접근이 불가능하다.
특별히 더 볼 것이 없어 기념사진만 찍고 바로 내려왔다.
내일 넘어갈 라마 릿지. 무려 780m를 올려야 릿지에 도착한다. 그때는 몰랐다. 다음날 운행에서 라마 릿지까지는 워밍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파콜(PAKOL)
파콜은 기본적으로 베레모처럼 착용한다. 착용자는 날씨, 기분 및 크기에 맞게 크기를 조절하고 조정할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많은 기능에 사용할 수 있다. 매우 실용적이고 편안하며 추운 기후에 특히 좋다. 남성은 추운 기후에서 일년 내내 파콜을 착용하는데, 추위, 바람 및 태양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탁월하다.
파콜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고급 천연 양모는 날씨에 관계없이 머리가 땀에 젖거나 추위를 막아준다. 소재는 흡습성이 있지만 비오는 날씨에 젖지 않으며 건조하지도 않다. 이것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특히 쓰는 모자로 평평하고 둥근 상단으로 형성된 캡 스타일로, 아래쪽으로 말린챙으로 둘러싸여 있다. 일반적으로 흰색, 회색 또는 다양한 갈색이다.
이 모자의 실용적인 디자인은 추운 날씨에 귀와 목을 덮을 수 있도록 아래로 당기고 따뜻한 온도에 맞게 말아 올릴 수 있다. 장식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때로는 특히 축제 행사를 위해 일반적으로 꽃이나 깃털을 모자에 꽃는다.
파콜은 치트랄, 더 정확하게는 길기트, 아스토레 및 길기트-발티스탄 주변 지역에서 기원을 두고 있다. 모직 모자는 수세기 동안 시나족과 코족(치트랄리스라고도 함)의 주요 모자였다. 또한 최근에 파슈툰족, 타직족, 누리스타니족과 같은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공동체에서 채택되었다. 아프간의 파슈툰족과는 달리, 파키스탄의 파슈툰족 사이에서, 특히 페샤와르와 같은 주요 도시에서 큰 터번을 대체하기 위해 처음 채택되었다.
오늘날 파콜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뿐만 아니라 잠무, 카슈미르, 델리와 같은 인도 일부 지역의 사회 계층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착용하고 있다. (위키백과)
이슬람에서의 죽음과 장례
작성자: 주요르단대사관
작성일: 2018-03-01
이슬람에서의 죽음이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과정으로 간주되어 영원한 삶에 이르는 교량으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고,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기 때문에 기쁨으로 본다. 즉, 내세는 이승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차원적 삶의 양태가 보장되는 곳이다.
이처럼 이슬람교에서 죽음은 이승과 저승의 매듭이고, 새롭고 영원한 삶에 이르는 교량이다. 따라서 죽은 자를 화장하는 경우 영혼의 안식처가 소멸된다고 보아 매장하여 무덤이라는 영혼의 거주공간을 만들어 주도록 가르친다.
나아가 영혼이 분리된 이후에도 육체와 영혼간의 사랑은 끝나지 않고 그후로도 상당기간 지속된다고 보기 때문에 사체(死體)에 대한 손상이나 무덤 위를 밟고 다니는 행위는 금기시된다. 이런 이유에서 이슬람사회에서의 장례의 특징은 빠른 매장(보통 24시간 이내), 간단하고 엄숙한 상례(喪禮), 내세에 대한 강한 믿음 등으로 규정된다.
자신의 죽음을 인지한 자는 세정의식을 행하고 얼굴을 메카 방향으로 향한 상태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샤하다’(신앙고백)를 낭송한다. 그럴 만한 기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가족이나 친지들이 ‘샤하다’를 낭송하여 들을 수 있게 한다.
사자(死者)는 얼굴이나 머리를 메카로 향하게 한 다음 우선 눈을 감기고 입을 다물게 한다. 발목을 묶고 두 손은 가슴 위에 놓는다. 가족이나 ‘무가실’(장의사)이 사체를 향료를 넣은 비눗물로 세정한 후 염(殮)을 한다. 이때 남편이 아내의 시신을 혹은 아내가 남편의 시신을, 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
고인의 머리털과 체모를 깎는 풍습이 일반적이다. 그런 다음 솜으로 입과 귀·코 등을 막으며 염습을 하고 하얀 무명천이나 자루를 이용해 한 겹 또는 여러 겹으로 둘러싼다. 이때는 하나의 천을 사용하며 천을 서로 연결해 쓰지 않는다. 흰색이나 초록색 수의를 입히기도 한다.
임종 순간에는 통곡으로 애도가 시작된다. 죽음을 알리기 위해 즉시 부고를 하되, 큰 소리로 울거나 비탄에 젖어 울부짖거나 뺨을 때리고 옷을 찢는 등의 행위는 이슬람 이전의 관습으로 금기시된다. 다만 조용히 흐느끼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는다.
장례 절차는 아침에 시신(屍身)이 집을 나설 때 모든 친지와 이웃이 상여꾼이 되어 모스크까지 간다. 가까운 모스크에서 홀수 열을 만들어 보통 낮예배에 이어 장례예배를 마친 다음 장지로 향한다. 상여꾼을 별도로 고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것은 강력한 사회연대 의식의 표현이다.
영구행렬의 맨 앞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샤하다’를 읊으며 걸어가고 그 뒤로 죽은 사람의 친구들과 초대된 사람들이 따르며 그 뒤에 까리(꾸란 독경사)들이 장례와 관련된 꾸란 구절들을 낭송하며 따라가고 마지막으로 어린아이들과 관 그리고 곡하는 여자들이 뒤를 따른다.
시신이 도착할 때가 되면 이미 무덤은 매장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고, 시신은 관 없이 매장한다. 사람 키 높이로 비교적 깊고 넓게 판 묘실에 얼굴을 메카 방향으로 향하게 안치하고, 하얀 천으로 싼 시신 위에는 아무 것도 덮지 않은 상태에서 공간을 두고 그 위를 큰 돌이나 석판으로 덮는다.
그리고는 흙을 다져 봉분 없이 지표면보다 약간 높게 평분을 만들고 표식을 한다. 비문을 세우기도 하는데, 여자의 경우 남편의 이름 대신 친정아버지의 이름을 표시한다. 그런 다음 장례행렬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하나씩 묘지 위의 흙을 어루만지며 고인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눈다.
화장하지 않고 매장하는 풍습은 내세에서 영혼과 함께 육신도 부활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묘실은 3~4명을 매장할 정도로 넓게 파는데, 한 세대가 지나면 한 무덤에 또 다른 가족을 매장하는 복장(復葬) 관습 때문일 것이다. 묘소에 집을 짓고 비석을 세우는 것은 일반적으로 금지되었는데, 후일 아랍 이외의 지방에서 왕묘나 성자들의 묘소에 대규모 묘당을 짓는 유행이 생겨났다.
장례식 당일에는 고인의 집에서 일절 음식을 만들지도, 대접하지도 않는다. 음식은 모두 동네 사람들이 분담하여 만들어 온다. 장례 후 첫 3일간 밤새 꾸란을 낭송하는 관습이 일반적이고, 지역에 따라 3일째, 40일째, 1년째 가족들이 고인의 추모집회나 기도 의식을 거행하기도 한다. 매장후 3일째 되는 날 무덤에 가서 꾸란을 외우는 추모의식을 갖기도 한다.
다음날은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무덤을 방문하고 그 음식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추모의식을 반복한다. 이러한 행위는 장례 후 하루가 되면 영혼은 육체를 완전히 떠나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대기 장소로 이동하지만, 처음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자신의 무덤으로 되돌아온다는 민간신앙 때문이다. 그 영혼들은 주로 금요일 오후예배 이후 무덤으로 돌아와 육체에 접목돼 밤새 지내다 일출과 함께 돌아간다고 믿고 있다.
통상 장례식후 40일간 추모의례가 다양한 형태로 지속된다. 유족들은 화려한 차림을 피하면서 주로 금요일에 가족과 친지가 모여 음식을 장만하고 꾸란을 독경하는 주기적인 추모의식을 행한다. 1주기가 돌아올 때까지 가족들은 근신하는 자세로 경건하고 검소한 일상을 보낸다.
추모 기간 동안 집에서 음주가무는 물론 축제, 결혼식 같은 세속적인 모든 즐거움은 유보되며 붉은색 옷이나 진한 화장, 천박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1주기 추모식을 치름으로써 고인을 위한 일련의 통과의례는 끝난다.
- 이종화 명지대·아세아신학대 강사
첫댓글 지기님 잘 계시지요. 추워진 날씨에 감기조심 건강하세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파키스탄의 자연재해 너무 심각하군요. 여러가지 정보를 포함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자연 재해보다 인재로 인한 참사에 할말을 잃었습니다. 무능 무책임한 저들의 행태 분명 처벌 받아야겠지요.
바위님은 여전히 산행을 즐기고 계시는군요.
가을 단풍 사진 잘 보고 있습니다.
조심조심 다니시기 바랍니다.
라마릿지는정말 워밍업 이었습니다 그날 오후7시까지 캠프지에 간다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포터 분들 밤늦게까지 저희들 짐 운반한다고 엄청고생했죠 그때는정말너무힘들었지만 지나고보니 좋은추억입니다
제일 날렵한 몸놀림을 자랑하시는 대표님도 힘들었다니 놀랍습니다.
모르고 갔으니 억지로 넘었지 이제 다시는 무타트 패스 같이 험한 고개는 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있다고 풍광은 정말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