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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k 16. 베얄캠프 - 잘리푸르 패스 - 구탐 사가르 / 10km
Beyal Camp(3550m) - Jalipur Pass(4837m) - Gutum Sagar(4140m)
7. 23. (토)
히말라야가 불편해지다
아침이 일찍 찾아았다. 여름이어서 그런지 오전 4시 조금 넘으니 날이 밝기 시작한다. 그런대로 잠을 잘 잤다. 날이 좋아 낭가 파르밧 전망이 좋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황금빛 일출이 아니지만 선명한 풍광이다. 이틀 잘 쉬었다. 오늘은 넘을 자일푸르 패스는 높이가 4837m다. 베얄캠프가 3550m이니 1300m 가까이 올라가야 한다.
이제 고개라면 지긋지긋 하나 낭가 파르밧 서키트 트레킹에서는 숙명이다. 마치 고개들의 땅 라다크 트레킹을 하는 듯하다. 차이라면 라다크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낭만적인 고개길이고 낭가 파르밧은 빙하와 빙퇴석이 난무하는 거친 고개길이다. 거기에 가파른 절벽길은 덤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년설이 덮인 히말라야의 장엄한 설산은 볼 때마다 심신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한 번 다녀오면 설산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이른바 설산병에 걸린 것이다. 그래서 TV에 히말라야 관련 영상이 나오면 반갑다. 그런 설산이 수백 개가 있는 곳이 히말라야니 한두 번 방문하는 것으로 양이 차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나도 여러 번 히말라야를 방문했다. 처음 네팔에 갔을 때는 처음 보는 히말라야 설산의 모습에 감탄을 했다. 그리고 네팔 산골 주민들의 모습에서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간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더욱 정다운 곳으로 각인되었다.
농경을 시작하기 전 인류는 수렵과 채집으로 살았다. 이러한 수렵 채집이 시작된 시기는 5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농경이 시작된 시기를 대략 1만 년이라고 한다면 500만 년 이상의 시간 동안 인류는 수렵 채집을 했고 농경은 아주 최근에 들어왔다.
인간에게는 여전히 돌아다니며 사냥하고 채집하던 유전자가 깊이 새겨져 있다.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어 틈만 나면 돌아다닌다. 지금도 이 세상 많은 곳에서 유목민으로 이동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런 까닭에 현대인은 틈만나면 '농경사회'인 도시를 벗어나 자연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여행은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본능에 따라 히말라야를 다녔는데 언제부턴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트레일 주변에 거주하는 산골 주민들의 고단한 삶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누구는 팔자가 좋아 비싼 비행기를 타고 외국여행을 다니는데 현지인들은 가혹한 환경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파키스탄도 마찬가지다. 여기도 산골은 작은 농경지와 목축이 삶의 전부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으니 문명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시각에서 이들을 판단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하더라도 의식주 수준을 보면 비교가 아니될 수 없다. 비단 이곳 뿐만 아니다. 동남아시아와 중남미, 아프리카 산간 오지 등도 대동소이한 형변이다.
가장 큰 문제는 몸이 아플 때다. 부족하지만 안분자족하는 생활을 한다고 해도 몸이 아프면 병원이 없고 약품도 구하기 어려운 히말라야 깊은 산골 부락에서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생로병사가 필연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병이 났을 때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죽는다면 참으로 슬픈일이다.
2006년 네팔 무스탕에 갔을 때 충격을 받았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산과 광대한 고원, 기이한 절벽과 메마른 계곡, 몰아치는 바람과 먼지, 한 세기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마을과 주민들의 모습, 그리고 보석같이 아름다운 곰빠의 벽화. 그런 충격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스탕이 결코 유토피아가 아닌 것은 의료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접근성이 떨어져 환자 이송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무스탕 왕국의 수도 로만탕까지 찻길이 열려 한시름 놓았다.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이기를 만들기 위해 배출한 오염물질은 지구온난화를 가속시켜 환경을 파괴시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탄소배출을 별로 하지 않는 저개발국가들이 오히려 지구온난화로 인한 피해를 제일 많이 받고 있다. 히말라야만 해도 점점 줄어드는 빙하로 장차 주변에 살고 있는 수억 명의 주민들이 물부족을 겪을 거라고 환경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뱃살은 나의 힘
포터들이 부산하게 짐을 꾸리고 있다. 파리캠프에서 어제까지 이틀 동안 고용한 당나귀 포터들 대신 오늘부터 새 포터들이 짐을 진다. 이번이 다섯 번째다. 계속 새 포터를 고용하여 챙겨야 하는 가이드 에싼은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다.
6시에 아침 먹고 6시 30분 출발. 당나귀도 몇 마리 보이는 걸로 봐서 아주 가파른 고개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1300m 상승이니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니다. 매일 아침식사로 짜파티와 계란 오믈렛을 먹고 점심으로 주먹밥을 먹는 빈약한 식사로 지내온 지 어언 15일. 아침에 일어나 바지를 입을 때 오랫동안 비상식량으로 배에 비축해 두었던 지방이 에너지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포터들이 나르는 짐 중에서 제일 이상한 것이 플라스틱 의자다. 부피도 크고 무게도 무겁다. 네팔 트레킹 때는 항상 캠핑용 접이식 의자를 사용했다. 그것이 훨씬 경제적인데 왜 그럴까 항상 의문이었다.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평소 여행사에 비축해 둔 장비이기 때문일 것 같다.
<서미트 카라코람>은 트레커들보다는 원정대를 많이 상대하는 여행사다. 그리고 베이스캠프에 한 달 이상 머무는 원정대 의자는 항상 플라스틱 의자다. 오래 쓰기에는 접이식보다 편하다. 그래서 기왕에 있는 장비를 가져온 것이리라. 그렇지만 트레킹 팀을 한 두번 상대하고 말 것이 아닌데 트레킹용 접이식 의자를 준비한다면 포터비를 줄일 수 있고 깨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실제로 트레킹 18일 째, 운반중인 의자 뭉치가 굴러 몇 개 깨져버렸다. 그날 저녁부터 트레킹을 마칠 때까지 타프를 깔고 파키스탄 식으로 앉아 먹었다.
너덜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힘이 딸려 쉬엄쉬엄 올랐다. 예외는 없다. 그동안 운행으로 모두들 조금 지쳐 있는 상태다. 오늘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일은 모두에게 콜라 한 병씩 지급되었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베얄캠프에 코카콜라가 있다. 우리의 연락장교 써니님이 가이드에게 전달하여 한 병씩 보급받으니 든든하다. 맛없는 히말라야 석회수보다 100배 낫다. 땀을 잔뜩 흘려 목마른 상태에서는 200배 낫다.
10시 40분 점심 먹고 다시 두 시간 운행하여 12시 35분 잘리푸르 고개 정상에 도착했다. 6시간 걸렸다. 트레킹 11일 차 무타트 패스 넘을 때는 860m 올리는 데 6시간 10분 걸렸다. 오늘은 6시간 운행으로 1300m 올렸다. 무타트 패스보다 고도가 1000m 가까이 낮고 급경사가 아닌 덕분도 있지만 그만큼 무타트 패스가 힘든 고개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정상에는 빙하가 덮여 있다. 역시 이곳도 예상대로 급경사 너덜길 내리막이다. 파키스탄 고개는 멋이 없다. 네팔이나 티베트는 고개에 오르면 꼭대기라는 표시로 오색 타르초들이 거친 히말라야 바람에 펄럭인다. 돌탑도 있어 고생하고 올라 온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이슬람국가인 파키스탄 고개에는 아무것도 없이 밋밋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곳은 지리적으로 티베트의 연장선에 있다(라다크와 가깝다). 지금도 티베트계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 북파키스탄은 중앙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 처럼 불교 국가였다. 제행무상이라, 모든 것은 변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입술 트기 시작
젊은 사람들은 빠르게 내려가고 나를 포함한 노장들은 슬슬 기며 내려간다. 아래에 얼음이 있는 불안정한 빙퇴석 길이라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그렇게 1시간 10여 분 내려와 오후 2시 초지에 도착했다. 4천 고지에서 날씨가 흐리고 땀이 식으니 춥다.
목적지 구탐 사가르(4140m)에는 오후 3시에 도착했다. 8시간 30분 운행으로 모두 지쳤다. 주방텐트 외에 짐이 도착하지 않아 한참 기다렸다. 캠핑장이 좁고 풀에 습기가 많아 축축햐다. 그것은 견딜만 한데 바닥이 경사져 누우니 몸이 자꾸 밀려 내려간다. 그런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때는 카고백 크기를 적당히 조절하여 다리쪽에 괴고 잤다. 불편하지만 가끔 있는 일이니 감수할 수 있다. 텐트는 4시 넘어 설치되었다.
피로가 쌓이니 입술이 트기 시작한다. 코에서는 피딱지가 생긴다. 히말라야 트레킹 때는 항상 생기는 일이다. 그러다 트레킹을 마치면 회복되곤 했다.
식당에서 서란님이 입술 치료용 항바이러스 연고제를 빌려 주었다. 덕분에 빨리 회복된 것 같다. 앞으로는 립밤 외에 치료 연고제도 가지고 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원정대급 밥상이 부럽다
오늘로 트레킹 16일 차를 마쳤다. 그리고 앞으로 5일 더 남았다. 돌포 트레킹이나 캉첸중가 남북 베이스캠프 트레킹 같은 장거리 코스를 제외하면, 네팔의 웬만한 코스는 이 기간이면 끝난다. K2 베이스캠프 트레킹에서 파키스탄 최고 높은 고개이자 최대 난코스인 곤도고로 라(5580m)를 넘는 코스도 16일이면 마친다. 그래서 낭가 파르밧 서키트 트레킹은 단일 일정으로는 파키스탄에서 제일 긴 트레킹 코스다.
음식이 맞지 않지만 그나마 저녁은 좀 나은 것이 북어국 덕분이다. 북어국에 밥을 말아 먹으면 하루의 피로가 플리는 듯하다. 다만 밑반찬이 없어(고추장도 떨어졌다) 핫소스를 쳐서 먹는 수밖에 없다. 후식으로 숭늉과 통조림 과일도 나오니 그럴듯 하나 반복되는 메뉴로 식상해졌다.
2005년 23일 동안(트레킹은 12일) K2 트레킹을 한 서울대학교 교수산악회에서 발행한 책 <인더스 강을 따라 히말라야까지>를 잘 읽었다(2006년 발행이라 이미 품절되어 북코아에서 중고서적으로 구입). 학자들답게 1부에서는 개론으로 파키스탄 전반에 대한 인문, 사회, 정치, 경제, 역사와 함께 고산병, 장비, 음식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2-3부에서는 17인 개인의 K2 트레킹 경험담인데 10인 10색이 느끼는 소감을 읽는 재미가 있다. 1부 목차를 소개 하자면 다음과 같다.
1부 파키스탄으로 가는 길
1. 히말라야 트레킹의 개요/ 김안중
2. K-2-발토르 빙하지역 탐사기획/ 정영목
3. '파키스탄'의 탄생을 둘러싼 갈등/ 박지향
4. '산악인의 천국', 그러나 비극의 땅, 발티스탄을 가다/ 최갑수
5. 고산 트레킹의 장비/ 손병주
6. 고산병의 정체와 예방/ 조수헌
7. 산행음식/ 최명언
8. 이슬람과 경제발전/ 김수행
이 팀은 운이 좋아 당시 박영석 대장이 히말라야 14좌 완등 중 브로드피크와 K2에서 잃은 대원(1999년 브로드피크 허승관 대원, 2001년 K2 박영도 대원)을 추모하는 동판을 K2 메모리얼에 가서 남기려는 계획을 알고 그 팀에 연락하여 동참 승락을 받았다. 그래서 그 팀이 원정대급 수준의 준비를 제공했으니 그것이 어떨지는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다른 것은 그만두고 부러운 것은 다양한 종류의 한식이다(그 일부를 발췌하여 아래 부록에 실음). 비교적 적은 경비로 온 우리팀에게는 언감생심이다. 혜초여행사를 따라가면 비용이 더 들기는 해도 한식이 나오니 좋을 것이지만 지금은 비용이 문제가 아닌 것이, 낭가 파르밧 서키트 트레킹은 패키지 상품 자체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교수팀을 인솔하여 함께 간 박영석 대장도 오희준 대원도 이제는 히말라야의 품에 안겼다. 교수산악회가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한 날 저녁 마침 낭가 파르밧 루팔벽 등정에 성공하고 돌아 온 한국루팔벽원정대와 만나 축하 파티를 한다. 그때 라인홀트 메스너 초등 이후 35년 만에 두 번째로 루발벽 등정에 성공한 김창호 대장과 이현조 대원도 히말라야의 품으로 돌아갔다.
생자필멸이라, 언젠가는 우리도 모두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겠지만 자신의 꿈을 찿아 히말라야에 왔다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자취가 있는 곳을 방문할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진다. 부디 편히들 쉬시기를…
아침에 본 낭가 파르밧 반영. 밤 새 흙이 가라앉아 물이 맑아졌다.
베얄 캠프의 아침
아름다운 낭가 파르밧 북면
두개의 봉우리(왼편의 동봉과 오른편의 북봉)가 뚜렷하다.
아침은 언제나 짜파티와 계란 오믈렛. 점심은 주먹밥. 이런 식단에서 하루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어려워 오랜 세월동안 배둘레햄에 비축해 둔 비상식량(지방)이 사용되고 있다.
출발 준비를 한다. 빙퇴석 길을 지나 작은 능선을 오른 후 오른쪽 골짜기로 들어가 고개를 향해 오른다.
출발준비를 마친 포터들. 알고보니 부자지간이다. 이 아저씨 짐 무게는 48kg. 어째서 간단한 캠핑의자를 두고 이동하기 불편하고 무거운 플라스틱 의자를 가지고 다니는지 알 수 없다. 네팔에서는 항상 접이식 캠핑의자를 사용했다. (아래 사진)
2010 안나푸르나 북면 베이스캠프 트레킹
2012 랑탕 강자라 트레킹
첫 번째 휴식. 왼편은 원주민 마을이고 오른편은 베얄캠프
능선길로 접어들었다,
포터가 부족해 수쿠르가 식탁을 지고 간다.
출발 전 보았던 포터 아저씨도 쉬고. 파키스탄 산골에서 이런 얼굴은 보통 40대 중반이다.
우리도 휴식
스태프들도 휴식
콜라 타임. 출발 때 1인 1콜라 가지고 왔다. 땀을 흘린 후 갈증에 마시는 콜라 맛은 단연 최고다.
능선을 넘어 우회전하여 계곡으로 들어왔다.
출발 후 4시간 지나니 배가 고프다. 신발과 양말 벗고 주먹밥 점심 먹는 중
오전 11시 35 휴식. 여기서 저기 빤히 보이는 고개 마루까지 1시간 걸렸다.
포터들도 힘들어 하며 올라 오는 중
자세히 보니 아버지가 아들 짐을 봐 주고 있다.
12시 35분 잘리푸르 패스(4837m) 도착
이 친구는 우리를 호위하는 경찰이다.
정상에 왔으니 기념사진을 찍고
고개를 넘으니 다시 까마득한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다.
아래에 얼음이 있어 돌이 움직이니 하산이 조심스럽다.
아래에는 '젊은이'들이 먼저 내려와 쉬고 있다.
잠시 쉰 후 다시 길을 떠난다.
수목한계선이 가까우니 초지가 나타났다.
오후 3시, 오늘의 목적지 구탐 사가르 캠프사이트 도착. 8시간 30분의 운행으로 모두 지쳤다. 날씨가 으스스하다. 짐을 실은 당나귀도 도착.
무슨 얘기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4시 가까이 되어 텐트가 도착했다. 바닥이 고르지 못하고 바닥 초지가 축축해서 잠자리가 그리 편치 않았다.
입술이 많이 텄다. 입술연고만 바르고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서란님이 가져온 약을 주셨다. 며칠 잘 사용하고 반납하다. 이 약은 기억해 두고 다음에 갈 때 사 가야겠다.
구탐 사가르 캠프 사이트의 저녁 풍경
[부록] 산행음식 (발췌)
최명언 / 자연과학대학 화학부
아침, 점심, 저녁
아침식사 때 내가 가장 즐기던 국은 북어국이었다. 반찬은 식판에 4~5개 정도가 나왔으며 그 종류는 다양하였고 새로운 것들이 나오곤 하였다. 김치는 물론 장조림, 멸치볶음, 오징어무침, 젖갈류 등. 그리고 때로는 나물류 등도 제공 되었다. 식사는 가능하면 모든 대원이 함께 하도록 하였으나 고산증세 등으로 참석 못하는 대원들이 자주 생겼다.
국 종류도 다양하여 고기국, 감자국, 무국, 미역국 등등 저녁식사 때 국까지 합하면 아마도 열 가지는 족히 될 듯싶었다. 따뜻한 국을 먹기 위해 국은 식탁에 먼저 온 순서대로 담아 주었는데 그로인해 먼저 먹는 대원은 건더기가 별로 없는 국을 나중에 온 대원은 국물 없는 건더기뿐이 국이 되곤 하였다.
아침 식사 중 그날 트레킹 때 먹을 간식(사탕과 초콜릿) 등을 배급받았으며 각자 그날 먹을 음료수를 챙겨 배낭에 넣으면 출발 준비가 완료되었다. 나는 음료수로 그 전날 침낭에서 보온용으로 사 용했던 끓인 물에 설탕을 약간 넣거나 또는 뜨거운 현미차를 섞어 가지고 갔다. 트레킹 중의 점심식사는 라면 또는 '행동식'이라고 부르는 도시락으로 해결하였다. 도시락은 삶은 감자와 달걀로 구성되었으며(소금이 포함됨) 트레킹 코스에서 취사용 물을 구할 수 없거나 또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두서너 번 제공되었다.
어떤 사람은 라면을 좋아하나 나는 라면을 일 년에 몇 번밖에 먹지 않는 사람이다. 점심에 주로 라면이 제공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별로 달갑게 듣지 않았다. 그러나 트레킹이 시작되고 한낮의 더위에 시달리다 보면 국물 있는 얼큰한 라면이 제격임을 트레킹 하루 만에 실감하였다.
30여 명의 라면을 끓이기 위해서 취사담당은 점심장소에 큰 냄비와 석유곤로를 따로 가져와야 했으며, 깔개와 식기 그리고 김치 등도 준비하여야 했다. 먹거리가 풍부했던 초기에는 라면에 달걀도 풀었으며, 점심 후 망고나 살구 같은 과일도 먹을 수 있었다.
오전 중의 트레킹이 이미 다섯 시간 가량 경과됐기 매문에 늦게 도착하는 대원이 생기고, 결국 라면을 두 번씩 끓이게 되기가 일수였다. 나는 평소에 즐기지 않았던 라면을 트레킹 동안 가능한 많이 먹으려고 하였고, 더 먹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다.
라면 이야기 중 빼어놓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트레킹 끝 무렵 빠유에서 야영 후 졸라에서 라면을 먹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라면상자를 나르는 포터가 제때 도착하지 못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날따라 날씨는 쌀쌀하고 점심때쯤 부슬비까지 내려 모두들 초췌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점심준비가 30분 이상 지체되었고, 비 막이로 처진 천막 안에서 급한 대로 서서 한 끼를 때울 수가 있었다.
하루의 트레킹을 따끈한 '차이'(cai, 밀크 티)로 피곤을 풀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트레킹 일정은 많게는 10시간 적게는 5시간 정도의 일정으로 짜여져 있었다. 맑은 날씨의 경우 낮에는 고도(3,000~4,720m) 때문에 햇볕이 따갑게 내려 쪼여 뜨거우나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온도가 급속히 내려가 초겨울 같은 온도가 되었다. 궂은 날씨에는 비와 바람이 동반되기 때문에 줄곧 추위에 시달려야 했다.
지치고 고달픈(그 정도가 대원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다) 대원들은 누구나 그날 캠프 자리에 도착하면 우선 차이를 찾고 한두 잔씩 마시곤 하였다. 따라서 쿡들은 취사용 텐트를 세우자마자 곧바로 차이를 준비하고 찻잔을 식당용 텐트 앞에 내놓는 것이 급선무였다. 산 위의 여름 햇살은 금방 떨어져 저녁식사 때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았고, 우리는 두꺼운 옷을 걸치고 털모자에 헤드랜턴까지 끼고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대원 중에는 설사로 시달리는 사람, 두통으로 머리가 무거운 사람, 너무 지쳐서 식욕이 떨어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배가 고파 식욕이 왕성한 사람들이 함께 식탁을 사이에 두고 음식을 기다린다. 어떤 음식이 나오던 그날의 음식 맛은 각 대원들의 식욕에 좌우될 것이 분명하다. 저녁식사 후에는 침낭을 덥혀 줄 뜨거운 물을 플라스틱(Nalgene) 병에 담아 각자 텐트로 돌아간다. 내일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를 걱정하면서.
첫댓글 베알캠프에서 아침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염소때가 따라 올라 왔던가요. 오르막 오르면서 힘들었던 기억도 아름다운 황량함의 풍경도 아련한 추억입니다. 지기님의 수고와 노력에 다시 트레킹 하는 기분좋은 아침입니다. 매일 오르는 동네 산행 울산의 관문 문수산 정상에서 커피 한잔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예, 염소 떼도 같이 올라왔었죠.
그나저나 이 추운 날씨에도 등산을 하신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날 아버지포터를 따라 같이온 젊은 포터가 생각납니다 포터일이 처음인지 고개올라오면서 너무힘들어 하는모습 아버지가 너무 뒷쳐진다고 빨리올라오라고불러도 힘들어 못올라오니 아버지가가서 아들짐을 메고 같이올라온모습에 이분들은 전생에 무엇을 잘못 햇기에 현생에서 이렇게 고통을받고있는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보고있자니 마음이아파 콜라먹고 힘내라고 준것이 생각납니다 그날 염소들도 같이 올라왔습니다 그 경찰분 투잡 하는거 아닙니까 염소도 키우고 경찰일도하고
대표님의 따뜻한 마음씨
항상 감동을 줍니다.
아이들에게 많이 나눠 주셨죠.
복 받으실 겁니다
염소떼 지기는 따로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