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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k 18. 카루 사가르 - 카루 사가르 패스 - 쿠타 갈리 / 7km
Karu Sagar (4184m) - Karu Sagar Pass (4982m) - Kuta Gali (3865m)
[참고] 여기에 표시된 거리는 GPS에서 평면 이동을 측정한 것이므로 평지가 아닌 고개를 넘는 거리는 실제보다 훨씬 적게 나옵니다. 고개는 측정값 X3으로 해야 합니다.
7. 25. (월)
감기에 걸리다
우중 산행의 결과로 밤새 기침을 했다. 감기에 걸린 모양이다. 입술 튼 것도 여전하고. 컨디션이 점점 떨어지는 중이다. 마지막 핫팩을 터트려 보온에 힘썼지만 우행 중 맞은 비로 인한 체온 저하가 있었고 짐을 1시간 가까이 비를 맞으며 기다린 후유증은 피할 수 없었던가 보다.
어제 가지고 온 감기약을 스태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가져 온 10통의 감기약 중 7통과 정로환, 타이레놀을 작은 지퍼백에 나누어 담아 주방텐트로 가니 초저녁인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불을 켠다. 에싼도 함께 있다. 에싼에게 복용법을 말해주었다.
남은 감기약 세 통은 내 몫이다. 그런데 감기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어 나중에 약이 떨어졌다. 지금까지 트레킹 중 감기약을 3일 동안 먹은 기억이 없다. 그만큼 체력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고산에서는 뇌가 비정상이 된다
장갑을 네 컬레 가지고 왔다. 자전거 탈 때 많이 끼는 손가락 없는 얇은 것 하나, 그 보다 조금 두꺼운 것(2번), 제법 두꺼운 것(3번) 그리고 고소용 아주 두꺼운 것. 손가락 없는 장갑은 초창기 저지대에서 잘 썼는데 고산을 오르면서부터 2번을 사용하고 있다(그 사이 손가락 장갑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어제 우중 산행으로 고소모자도 장갑도 모두 젖었다. 고소 모자는 그래도 고산에서 밤에 쓰고 자는 빵모자형 여분이 하나 있다. 출발할 때 젖은 장갑을 낄 수 없어 맨손으로 스틱을 잡았다.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높이 오를수록 손이 시리다. 4천 미터가 넘는 고산에서 구름이 낀 흐린 날에 맨손으로 운행하니 바로 느낌이 왔다. 고소장갑은 마제노 패스 넘는 날 끼고 있다가 벗은 후 다시 낄 일이 없었다. 고소장갑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3번 장갑까지 카고백에 넣어버렸으니 이런 낭패가 없다.
아침에 아직 따뜻한 핫팩을 부주방장 만주르에게 준 이유는 양손을 사용하는 스틱 운행에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생각하니 주머니에 넣어 두었으면 쉴 때 손을 녹일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트레킹을 되돌아보니 이런 실수를 여러 번 했고 모두 4천 미터 이상 고산이었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산소부족으로 뇌가 잘 돌아가지 않은 탓이다. 마치 컴퓨터에 메모리가 부족해 버벅거리는 현상이라고나 할까.
어제 비맞은 옷을 비닐에 싸서 넣었더니 카고백 무게가 늘었다. 여기서는 무게로 임금을 받으므로 포터들은 그만큼 수입이 늘어난다. 그래도 무게가 늘어난 만큼 힘이 들 것이다. 이 고난도의 코스에서 적게는 20kg에서 많으면 40kg까지 짐을 진다고 하니 대단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지금까지의 고개는 잊어라!
이번 트레킹에서 마지막 고개를 넘는다. 오늘 코스는 일주일 전에 넘었던 무타트 패스와 비슷하다. 높이도 4982m로 4960m의 무타트 패스보다 조금 더 높다. 다만 도착지가 무타트 패스는 4400m 하이캠프지만 오늘은 3865m의 쿠타 갈리까지 700가까이 더 내려 가야 한다. 힘들 것이 자명하다. 오늘만 잘 견디면 남은 3일 일정은 여유가 있으니 힘을 내리라 다짐했다.
무타트 패스를 넘는 경험을 했고 랑탕 컁진곰빠에서 체르코리 오르는 정도니 아주 어렵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은 순진한 소망이었다는 것을 알기까지 몇 시간 걸리지 않았다. 엊그제 써니님이 스태프들에게 들었다고 한 말, "내일 모레 넘을 고개가 더 힘듭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근래에 트레킹을 하면서 점점 체력이 딸리는 것을 느낀다. 이미 60대 전반을 지나 후반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그동안 60년 이상 쓴 '기계'가 예전과 같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이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 하더라도 생물학적으로 환갑이 지나면 고물 상태가 된다.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안팍으로 여러군데서 고장 신호를 보내 오고 있슴을 알 사람은 다 안다. 다만 애써 자기는 아니겠거니 모르는 척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노화가 가속되는 몸으로 이렇게 힘든 고개를 넘을 때마다 '아, 이렇게 힘든 히말라야를 왜 왔지?' 하며 후회를 하곤 한다. 5년 전인 2017년 강라와 메소칸토라를 넘을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다음 해 왕복 16시간 걸려서 라다크 스톡 캉그리 정상을 다녀왔다.
지금은 당시 사진을 느긋하게 보고 있지만 아직도 그때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의 뇌는 보정작업을 잘 해주는 친구라 과거의 기억 중 힘들었던 부분은 조금 순화시키고 좋았던 부분은 강조하여 내 보낸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과거의 좋았던 추억을 회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살도록 해주는 것 같다.
그 덕분인지 그 탓인지 모르지만, 힘들어 다시는 오지 않으려고 했던 다짐도 1~2년이 지나면 아직 가보지 못한 코스의 히말라야 설산이 눈에 아른거려 장비를 챙기게 한다. 그러나 이번 트레킹은 처음부터 각오를 하고 왔다. 파키스탄 트레킹은 처음이기도 하고 워낙 난이도가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내 체력을 테스트 하는 기회로 삼고 싶었다.
그리고 트레킹을 마친 결론은 이렇다.
“이제 나에게 이런 난코스는 무리다!”
아침을 일찍 먹고 6시 40분 출발. 비는 오지 않지만 날이 흐리고 찬 바람이 분다. 산 아래에는 구름이 가리고 있다. 4184m의 고도라 춥다. 이 고도는 4130m의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보다 높다. 어제 엄청난 산사태가 난 계곡을 따라 오른다. 오늘도 내가 선두에 섰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쉬엄쉬엄 가다가 나중에는 각개전투로 바뀌어 각자도생이 되었다. 그냥 돌무더기 위를 넘어야 하니 일렬로 갈 수가 없다. 정상 가까이에서는 작은 빙하도 건넜다.
10시 30분, 4940m의 능선에 도착했다. 3시간 50분 걸렸다. 그런데 그곳은 아래 능선이고 고개 정상은 조금 올라가야 한다. 구름이 잔뜩 몰려와 화이트아웃이 현상이 자주 나타났다. 10여 분 더 올라 4982m의 고개마루에 도착했다. 포터들도 하나 둘 도착한다. 안개로 주변 풍광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사실은 몸이 힘드니 풍광에는 관심이 없어졌다. 어서 빨리 하산하여 쉬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잠시 쉰 후 점심을 먹고 땀이 식기 전에 하산을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하산길도 잊어라!
그런데 하산길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산안개가 자욱히 낀 상태에서 바로 내려가는 길이 아니라 산허리를 타고 빙빙 둘러가는 길이다.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다. 바위와 돌 부스러기가 가파른 경사면에 당장 흘러내릴 자세다. 그 사이를 미끄러지면서 가로질로 내려가자니 신경이 바짝 쓰이고 체략 소모가 많다.
내가 힘들어 하니 키친보이 자히드가 내 배낭을 들어주겠다고 해서 배낭(3kg)을 주었다. 그런데 배낭이 없으니 뭔가 허전해서 1시간 후 돌려받았다. 산길에서, 특히 이런 가파른 경사면에서 배낭은 넘어질 경우 에어백 역할을 해준다. 가슴 앞에 매고 가는 숄더백(또는 카메라 가방)도 앞으로 넘어질 때 충격을 흡수해 준다. 그러므로 평지길이 아닌 산길에서는 조금 힘들어도 항상 매고 가는 것이 좋다.
'강경파'들은 역시 빠르게 간다. 두 노장님들도 덩달아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온건파'인 써니님도 이번에는 강경파로 바뀌었다. 오직 나와 대표님만 뒤에 쳐져 있다. 대표님도 사실은 아주 빠르게 갈 수 있지만 의리를 지켜 나와 보조를 맞추어 주고 있다.
지금까지 경험한 히말라야 하이패스에서 제일 힘들었던 고개는 어디였을까. 토롱라? 라르키아라? 강라? 강자라? 촐라? 메소칸토라? 모두 5천 미터를 넘지만 이 카루 사가르 패스와 비교하면 별로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그 중 어렵게 느낀 고개는 쿰부의 촐라인데 그래도 여기에 비해 쉽게 느껴지는 것은 이 고개의 하산이 넘사벽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촐라에 고정로프를 설치해 두었고 랑탕의 강자라에도 난이도 높은 랑탕 쪽 정상 벽에 고정 사다리를 설치해 두었다고 하니 이곳과 비할 바가 아니다. 아직 넘어보지 못했지만 추쿵의 콩마라와 비교가 될 것 같다.
그렇게 내려오다가 다시 바위 너덜 돌길을 만났다. 그리고 불안정한 돌 위를 넘다가 스틱으로 찍으니 제법 큰 돌 하나가 미끄러져 내려 온다. 다리를 향해 내려오는 돌을 가까스로 왼손의 스틱으로 막았다. 다행히 스틱만 부러지고 몸은 무사했다. 그러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돌길이 끝나고 초지에 거의 다 왔는데 조금 빨리 지나가려다가 무릎이 바위를 스쳤다. 무릎이 얼얼했지만 이번에도 운이 좋아 가벼운 찰과상으로 그쳤다.
오후 1시 30분, 마침내 초지로 내려왔다. 이제 다 왔으려니 하고 한시름 놓았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다시 1시간 40분을 더 운행해 3시 10분이 되어서야 마지막 내리막길 입구에 도착했다. 문제는 그곳에서 380m를 수직으로 내려가야 한다. 경사도 70도는 될 것 같은 가파른 초원길 하강이다. 그 길을 지그재그로 내려와야 하니 운행 거리는 그 5배가 넘을 것이다.
십년감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선두 주자들은 이미 저 아래에 내려가 있어 가물가물하다. 의리남인 대표님도 유수프가 나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멀찌감치 앞에 가고 있다. 내려오는 길에 염소 한 마리가 죽어 있다. 무슨 일인가 유수프에게 물어보니 낙석에 맞았을 것라고 한다. 초지 좌우가 절벽이라 낙석에 조심해야 한다.
50분 동안 신경 바짝 쓰면서 지그재그로 내려왔다. 수목한계선이 가까워지니 향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거의 다 내려와 바닥까지 20여 미터 남겨두고 잠깐 방심했던지 미끄러졌다. 유수프가 미끄러져 내려오는 나를 잡아 주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십년감수! 그나마 아래쪽에 향나무들이 있어 막아주니 크게 위험하지는 않겠다고 하니 유수프가 고개를 젓는다. 기둥에 부러진 나무가지가 있어 찔리면 위험하다고. 정말 땔감으로 가지를 잘랐는지 남은 가지가 기둥에 삐죽 많이 나와 있어 거기에 부딪쳤으면 다쳤을 것이 분명하다.
무사히 계곡 바닥에 도착하니 써니님과 대표님이 기다리고 있다. 마을이 제법 크다. 이 마을은 트레킹팀 보다 원정대들이 더 많이 지나가는 길목이다. 대부분의 낭가 파르밧 원정대들은 이곳 디아미르 베이스캠프에 캠프를 차린다. 그리고 원정대 짐은 이곳과 아래쪽 몇 마을에서 담당하다 보니 모두 포터일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어제 밤 우리 캠프까지 그 험한 길을 올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숙달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꼬맹이 한 녀석이 따라 붙었다. 대표님이 가지고 가는 우산을 달라고 한다. 안된다고 해도 캠프까지 따라오며 조른다. 그 우산은 대표님이 출발 전 바위님에게 빌린 것이니 줄 수 없다. 대표님은 자기 것이었다면 주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끈질긴 녀석이었다. 그래도 불쌍하다고 주면 버릇이 되어 좋지 않다. 사탕처럼 먹을 것이라면 나누어 먹어도 좋지만 그것도 달라고 하면 주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럴 땐 그냥 모르는체 무시하고 가는 것이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
오랜만에 구경거리가 생겨 캠프에는 동네 꼬맹이들이 모두 몰려와 있다. 여자 아이들은 멀리서 모여 웅크리고 앉아 구경한다. 포터들도 속속 도착하고 차례로 텐트가 쳐 졌다. 카고백은 도착 후 무게를 재느라 텐트로 들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아직 햇볕이 많이 남아 있어 젖은 옷가지를 꺼내 햇볕에 말렸다. 문제의 뽀글이 자켓을 바위 위에 널었다가 나중에 텐트 위로 옮겼다. 뜨거운 코코아 한 잔 마시며 오늘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힘든 코스는 이제 끝났으니 한시름 놓았다.
모두들 지쳤는지 차 드시라고 불러도 한참 후에 텐트에서 나왔다. 오늘 짐 중 의자가 몇 개 깨진 채 도착했다. 어디선가 짐이 구른 모양이다. 이제부터는 파키스탄 식으로 바닥에 앉아서 먹고 마신다. 워낙 힘든 코스인 줄 알기에 아무도 불만이 없다.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드디어 디아미르 벽을 만났다. 차를 마시고 밖으로 나오니 동남쪽으로 수많은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낭가 파르밧 디아미르 대장벽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다.
오늘 일정이 바빠 아침을 일찍 먹었다.
6시 40분 쌀쌀한 날씨에 출발
휴식 중 물을 마시는 바위님. 300m 상승.
모두 휴식 중 (by 바위님)
이런 바위 위를 각자 알아서 올라간다.
구름이 아래에 깔려 있다.
배낭 벗기도 힘들어 그냥 경사면에 등을 대고 쉰다. 어제 우중 운행 때 쓴 고소 모자가 젖어 쓸 수 없다. 대신 취침용 빵 모자를 썼다. (by 바위님)
9시 10분. 2시간 30분 동안 600m 상승
다시 힘을 내어 오른다.
작은 빙하도 건너고. 선두 주자들은 거의 다 올라갔다.
10시 30분. 능선 도착
포터들도 올라오고 있다.
능선에서 잠시 휴식. 에싼이 위성전화로 어딘가 연락 시도 중.
갑시다! 고개 정상까지 40여 미터 더 올라가야 한다.
10시 40분 카루 사가르 패스 도착. 대표님은 김장용 비닐봉투로 상체를 감싸고 올라왔다. 나중에 에싼은 대표님을 '플라스틱맨'으로 불렀다(우리는 ‘비닐봉지'로 부르고 영어권 사람들은 '플라스틱백'이라 부른다).
고개에서 점심을 먹었다. 타르초 같은 표시가 없으니 아무래도 좀 싱겁다. (by 낭가님)
현 위치
점섬 먹고 11시 5분 고개를 넘어 왼편 골짜기로 하산 시작.
내리막도 계속 너덜길 내리막이다. 화이트 아웃으로 사방이 오리무중이다.
오후 11시 20분. 산비탈을 가로질러 간다. 이 길에 비하면 틸리초 가는 길은 오솔길이다.
위 사진 부분 확대. 안개 속에서 미끄러운 돌부스러기 길을 조심조심 건넌다.
11시 50분 작은 언덕에서 휴식
12시 25분 현재. 1시간 20분 운행에 250여 미터 하강.
길 없는 길은 계속되고
오후 1시. 잠시 휴식
그리고 다시 출발. 고개로부터 500여 미터 하강 중이다.
바위 돌길 위를 넘다가 불안정한 돌을 건드려 다리를 향해 내려오는 것을 왼손 스틱으로 막았다. 다행히 스틱만 부러지고 몸은 무사했다. 십년감수!
오후 1시 20분 조심스럽게 비탈길 통과 중
확대사진
오후 1시 30분 마침내 초지 도착
초지 끝 언덕에서 다음 코스를 브리핑을 하는 에싼
디아미르 빙하를 향해 출발. 안개가 걷히자 디아미르 빙하가 나타났다.
1시 50분. 다 온 줄 알았더니 아직도 멀었다.
다음 목적지는 주황색 원이다. 노란색 원은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 포터들. 길을 보니 심란하다.
오른쪽 골짜기는 낭떠러지다.
포터가 모자라 매트를 지고 오는 보조 가이드 아쉬라프. 내 보조가방도 들고 있다. 어제 밤 수쿠루와 둘이서 이 고개를 왕복하고 다시 짐을 지고 내려오는 중이다. 어린 친구지만 참으로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아쉬프도 나를 추월했다. 이미 도착한 멤버들은 여유 있게 쉬고 있다.
뒤에는 포터들이 따라오고 있다. 저런 길을 내려왔다.
오후 2시 40분. 나도 도착. 고개에서 736m 하강.
갈 길이 더 남았다. 다시 너덜지대가 나왔다.
선두 주자들은 바람처럼 사라지는 중
마지막 난코스 지점에 3시 10분 도착. 380m를 수직으로 하강한다. 주방장 유수프와 대표님이 기다려 주었다.
위쪽으로 포터들이 지나가고 있다. 저 길이 좀 더 돌아가지만 편안한 길 같은데 에싼은 오늘도 지름길을 택해 바로 하강한다.
에스코트를 맡은 유수프가 앞장 섰다.
나는 이제 시작인데 선두는 벌써 반 이상 내려갔다.
거의 다 내려왔다고 잠깐 방심했던지 미끄러졌다. 다행히 유수프가 앞에 있다가 2~3m 내려오는 나를 잡아 주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4시 7분, 무사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의리 있는 온건파 멤버들이 기다려 주었다.
‘환영 인파’와 함께 캠핑장으로 가는 선두 그룹 (by 바위님)
제법 큰 마을이다.
마을 제일 위에 캠핑장이 있다. 구름이 가리고 있지만 설산의 자태가 웅장하다.
4시 20분 캠프 사이트 도착. 9시간 40분 간의 긴 운행을 마쳤다. 캠프 앞에는 빙하수 개울이 흐르고 있다.
포터들도 속속 도착
해가 남아 있어 짐가방에서 뽀글이 자켓을 꺼내 바위 위에 널었다. 구름이 많이 걷혔다.
캠프 설치 완료
자켓을 텐트 위로 옮겼다.
오후 5시 25분. 구름이 살짝 가리고 있는 낭가 파르밧 디아미르 벽
쿠타 갈리에서 보는 낭가 파르밧 북서벽 파노라마
현 위치
첫댓글 고산에서는날씨도흐리고 다아미르까지 내려온다고 힘들었지만 내려와서 바라본 경치와 날씨가좋아져서 기분도 업 되었습니다
느림보와 보조 맞추어 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
지나고 나면 다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이 코스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오르막 내리막 특히 내리막 자갈 빙하길에 다리가 후덜거려 혼났습니다. 처음으로 제 베낭을 유수프에 맡기고 홀몸으로 걸었는데도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내리막길에서 항상 앞서 가셔서 제가 따라 가기 힘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