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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라스 - 바부사르 탑 - 나란 (114km) / 나란 - 이슬라마바드 (275km) // 389km
Chilas (1065m) - Babusar Top (4173m) - Naran (2410m) - 이슬라마바드 (507m )
우리의 낭가 파르밧 트레킹 여정
칠라스 - 바부사르 패스 - 나란 - 이슬라마바드
첫날 이슬라마바드에서 처음 출발 할 때는 나란까지 비교적 평탄한 서쪽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타고 올라가다가 지름길인 나란으로 갔다. 그런데 내려올 때는 험준한 동쪽 산길을 따라 내려왔다. 이유는 모른다.
칠라스 - (44km) - 바부사르 패스 - (70km) - 나란
7. 29. (금)
칠라스 - 바부사르 탑 - 나란
오늘부터는 돌아가는 여정이다. 아침 먹고 이곳에서 가이드 에싼을 제외한 스태프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대기한 밴에 탔다. 뜨거운 날이지만 차에 에어컨이 잘 나오니 시원하다. 어제 왔던 길로 잠깐 돌아가 바부사르 삼거리에서 바부사르 탑(패스)으로 향한다. 바부사르 탑을 넘는 길이 이슬라마바드로 가는 지름길이다.
예전에는 바부사르 길이 험한 비포장길이라 이용할 수 없어 이슬라마바드에서 K2로 가려면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타고 빙 둘러 스카르두로 갔다. 당연히 시간이 많이 걸렸다. 2013년 K2-발토르 빙하 트레킹을 한 유영국님 책을 보면 이슬라마바드에서 새벽 4시 출발하여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타고 칠라스까지 가는 데 17시간 걸렸다고 하니 얼마나 고생이 심했을지 짐작이 간다.
바부사르 탑까지 가는 길은 구절양장길이다. 1065m의 칠라스에서 4173m의 바부사르 탑까지 3108m를 치고 올라가야 하니 길이 얌전할 수가 없다. 이곳에 눈이 내리면 제설작업을 마치기 전에는 고개를 넘지 못한다. 바부사르 탑까지 1시간 50분 걸렸다. 7월 7일 이 고개를 넘었을 때가 생각난다. 산사태 때문에 나란에서 이틀을 기다리다 겨우 넘었다. 어느새 22일 전의 일이 되었다.
처음 바부사르 탑에 도착했을 때도 느낀 바지만 파키스탄 북부로 가는 유명 관문인 고개인데 상업시설은 너무 '기본적'이다. 상점은 포장마차 수준이고 노점상도 많이 보인다. 그럴듯한 건물은 몇 채 보이지 않는다. 2019년 세계은행이 발표한 세계 일인당 명목 국민 총소득을 보면 한국은 33,720달러(25위)이고 파키스탄은 1,530달러(139위), 네팔은 1,090달러(150위)다. 소득이 낮으니 시설이 열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바부사르 탑을 기준으로 풍경이 확 바뀐다. 북쪽은 인더스 강을 끼고 있는 전형적인 파키스탄 히말라야의 거친 모습이고 남쪽은 차츰 지대가 낮아지면서 나무와 초지가 많다. 길가에 양봉업자들도 많이 보인다. 내려가던 중 대표님은 병에 든 꿀을, 나는 밀랍꿀을 하나 샀다. 나중에 한국 와서 먹어보니 맛이 괜찮다.
중간에 산사태 지역이 한 군데 있었지만 지난 번처럼 복구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곳이 상습 산사태 지역인지 구걸하는 아이들이 서 있는 차 창문에서 구걸을 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도로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네팔에서는 보드나트나 스와얌부나트, 파슈파티나트 등 종교 관련 유적지에서 앉아 구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돌아다니며 구걸하는 사람은 여행자 거리인 타멜 정도에서 아주 가끔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만큼 이곳에서의 삶이 더 힘들다는 뜻일 것이다. 또 이슬람 교도의 5대 의무 중 하나로 기부(희사)가 있어 생긴 관습일 수도 있겠다.
오후 1시 15분. 오늘의 목적지 나란에 도착했다. 나란은 카간 계곡 상류에 있는 인기 있는 관광 도시로 바부사르 패스를 통해 길기트 훈자로 가는 관문이다. 래프팅을 하는 곳도 여러 곳 보인다. 위키백과를 보면 나란 계곡은 파키스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계곡으로 매년 약 150만 명의 사람들이 방문한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정도의 인프라는 없어 보인다. 위키백과도 사용자가 내용을 보고 수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무조건 믿으면 안된다.
호텔 로비 소파에 한 여행자 가족(5인)이 있다. 방 열쇠를 기다리며 옆 소파에 앉아 있으니 7세 쯤으로 보이는 막내 꼬마 숙녀가 우리들에게 관심을 보인다. 말을 거니 영어를 곧 잘 한다. 사진을 찍자고 하니 웃으며 오케이 한다. 이 친구도 외국인을 보기 힘든 파키스탄이라 신기한 모양이다. 예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문득 어제 콜라를 마셨던 곳에서 보았던, 짐을 지고 땀을 뻘뻘 흘리던 어린 소녀와 조금 전 산사태 지역에서 구걸하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인간의 삶이란 참...
인도나 파키스탄 또 네팔의 부유층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영어로 수업 하는 사립 영어기숙학교(English Boarding school)를 다닌다. 하루종일 영어를 쓰니 중학생만 되어도 평균적으로 우리나라 대학 졸업생들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 인도 파키스탄 네팔에서 영어를 공용어 중 하나로 쓰는 것은 암울했던 영국 식민지 시대의 유산 중 하나인데 글로벌시대에 그나마 순기능을 하고 있는 유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근처에서 방문할 수 있는 명소로 빙하 호수인 사이풀 물룩( Saiful Muluk)이 있다고 한다. 나란 마을 근처 카간 계곡의 북쪽 끝에 위치한 산악 호수로 해발 3,224m 높이에 있는 이 호수는 파키스탄에서 가장 높은 호수 중 하나라고 하며 나란 북쪽 약 9km 떨어진 곳으로 지프차만 갈 수 있다. 그러나 피곤하기도 하고 날이 흐려 가지 않기로 했다.
사실 호수는 지난 번 라마 호수도 가 보았지만 네팔 히말라야에 있는 틸리초, 임자초, 촐라초, 고사인꾼드 등의 호수에 비하면 파키스탄 호수는 특별히 볼 만한 풍광이 아니다. 그렇지만 차를 타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점과 호수가 드문 파키스탄이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식당으로 내려가 저녁을 먹었다. 밤이 되니 쌀쌀해진다. 저지대이긴 해도 고도가 2400m 이고 빙하수가 내려오는 강변이라 해가 지면 기온이 많이 내려간다.
7. 30. (토)
나란 - 이슬라마바드
아침 먹고 9시 50분 느긋하게 출발하여 한참내려가다가 점심을 먹은 후 산 넘고 물 건너는 엄청난 산허리 계곡길을 지나갔다. 올라갈 때와 다른 길이다. 이곳은 바부사르 탑 오르는 산길을 10배로 확대한 느낌이다. 여름철 휴가지로 유명한 계곡이라 오가는 차량이 많다. 쉬엄쉬엄 다리를 푸는 시간을 가지며 내려와 오후 4시 이슬라마바드 호텔에 도착했다. 그렇게 낭가 파르밧 트레킹을 잘 마쳤다.
호텔에는 혼자 훈자 지방을 여행하고 돌아 온 길동님이 기다리고 있어 반갑게 만났다. 7월 18일 헤어지고 13일 만이다. 며칠 전에 도착했다고. 다시 나와 룸메이트가 되었다. 고생도 했지만 이슬라마바드에서 여행 온 가족의 도움도 받고 해서 좋았다고 한다. 우리를 기다리는 동안 가까운 곳에 있는 불교유적지 탁실라를 다녀왔는데 그 중 시르캅(Sirksp)이 그렇게 평화롭고 좋았다고 한다.
탁실라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슬라마바드에서 가까운 줄은 몰랐다. 하긴 내가 파키스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뭐 있겠는가. 8000m급 히말라야 14좌 중 5좌가 있는 나라로 2차 대전 후 종교 문제로 인도에서 분리되었고, 그 갈등으로 지금도 라다크가 있는 카슈미르 지방에서 영토분쟁이 빈번하고, 그 결과 인도와 함께 전 세계에서 몇 안되는 핵무기를 가진 나라가 되었으며, 아프카니스탄과 가까와 극우이슬람 근본주의자 탈레반이 자주 자폭테러를 하는 나라라는 사실 정도다.
카라치, 라호르, 라왈핀디 등의 도시는 물론이고 낭가 파르밧이 K2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도 트레킹을 준비하면서 확인한 사실이다. 사실 히말라야가 없다면 인더스 문명의 유적지인 하라파와 모헨조다로를 찾는 고고학자들 외에는 외국인들에게 여행지로 별 매력이 없는 나라다. 국내외적인 정치 불안으로 비자 발급이 까다로운 것도 그 원인이 하나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파키스탄은 후기 세계 문명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간다라 문명이 탄생한 곳이다. 간다라 문명은 그리스의 알렉산드 대왕(B.C 356~326)의 동방 원정 침략의 영향으로 당시 탁실라의 주류였던 불교 문화에 헬레니즘 문화를 더하여 탄생한 그리스-불교미술 혹은 로마-불교미술이라고도 칭하는 문명이다. 즉 간다라 지역에서 인류 최초로 동서 문명의 교류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다행히 내일 하루 자유시간이 있다. 길동님이 안내를 받아 간다라 문명의 중심지였던 탁실라를 방문하기로 했다. 대표님, 써니님, 서란님이 동참 하기로 했다. 바위님은 이전 K2 트레킹 때 다녀 오셨고 작가님과 낭가님은 호텔에서 쉬겠다고 한다. 호텔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방으로 돌아 와 인터넷에서 탁실라에 대한 정보를 챙겨보았다. 특히 유튜브 Silk Road Music and Arts Society 채널에서 많는 도움을 받았다.
백산스님(나와 트레킹을 6번 같이 함)이 2000년 실크로드 여행 후 쓴 후기에 탁실라 부분이 있어 찾아 보았다. 당시에는 먼 나라 일이어서 '음...그렇군! 그런데 분위기를 잘 모르겠다' 했는데 이제 한 달 가까이 파키스탄에 머물며 경험한 사실을 참고하여 현지에서 읽으니 비로소 실감이 난다.
길동님의 파란만장한 나홀로 훈자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탁실라는 '돌의 도시'라고 한다. 법현, 현장, 혜초스님도 이곳을 방문했으며 혜초스님은 왕오천축국전에서 이곳의 지명을 탁사국이라 했다. 절도 많고 스님도 많아 불교가 융성한 곳이라 적고 있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한가로운 탁실라의 분위기. 말이 끄는 마차에 앉아 유적지를 찾아 나섰다. 처음 방문지는 자율리안 사원. 인도의 나란다 대학과 쌍벽을 이를 정도로 고대 불교학의 권위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사원은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나지막한 산야가 한 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곳이라 명당터라 할 만하다. 스님들이 머물렀을 만한 석실들과 스투파 간다라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는 석벽에서 당시 이곳에서 불전간행과 학문연구가 대단히 성행했을 것이다.
답사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파키스탄 한 명이 불러 세운다. 뭔가 은밀한 것을 보여주려는 듯 손으로 감추고 있는데 손바닥만한 간다라 불상의 머리였다. 이 친구의 표현대로하자면 매우 대단히 오래된 것으로 다른 사람이 보면 안된단다.
당신은 살 의향이 있는가. 불상의 얼굴과 머리는 마른 흙이 약간 있었고 코는 깨어져 있었는데 붙인 것 같다. 여기도 이런게 있구나... 속으로 웃음이 나온다. 그래 얼마면 되겠는가? 300루피. 모조 불두 하나 들고와서 많이도 부른다.
담에 오면 살께, 오케이? 털래털래 내려오자 뒤따라 오면서 200...100루피... 아래로 내려 수록 값이 따라 내려오는 중이다. 귀찮다. 하지만 붓다 형상을 한 머리인데 땟국이 흐르는 저 친구 손바닥에서 노는 게 좀 그렇다. 50루피에 줄래? 오케이? 결국 50루피라도 달라며 내 손에 불두를 건네준 친구는 흔들거리는 마차 뒷좌석에 앉아 멀어져 가는 나를 보고 있었다.
지금은 혼적 속에서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수도원과 구석에서 방문객을 맞는 붓다 보살상들... 그리고 박물관의 그늘진 한구석에서 방문객을 맞는 붓다 보살상들... 그래도 탁실라 박물관에서 만나는 간다라 부처님은 온화한 미소로서 방문객을 반겨주고 있었다.
붓다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는 '다라마라지카 스투파' 양식은 녹야원의 스투파와 비슷한 것 같다. 주변은 잡초가 우거져 있었고 승원터도 이곳 저곳에 산재해 있지만 관리자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듯 아이들만 이리저리 몰려다니다 뜻밖의 외지인이 나타나자 가는 곳마다 촐랑거리며 따라온다. 아이놈들은 불경스럽게 진신사리탑 꼭대기까지 올라가 나보고도 올라오라 손짓하고 있다.
마지막 방문지였던 모 사원터에서 관리자 영감님의 지극한 환대를 받았다. 파키스탄들의 친절함은 케러코람을 넘어오면서 이미 경험한지라 환대가 별로 생소하지는 않다.
뭔가 특별한 것을 보여주려는 듯 내손을 잡고 한쪽으로 간 영감님은 자물쇠를 따고 유리문을 열자 바위에 새겨진 답이 나타났다. 그 조각의 성세함에 감탄하고 있는데 영감님은 얼른 닫아야 한다며 문을 잠그고 본래 보여주는 곳이 아니지만 자신이 보여줬으니 관람비를 내야 한다고 했다.
조금 황당했지만 달라니 줄 수밖에... 수고비조로 30루피를 주자 더 달라고 한다. 형편상 그것만 받으시라 하고 내려오다 뒤를 돌아보니 영강님 표정이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다시한번 손을 흔들어 주고 내려오니 마차기사 양반 빨리 가자고 성화다.
날씨도 따뜻하니 우선 좋았고 흔들거리며 마차 뒤에 앉아 다니는 것도 좋았다. 탁실라에서 보낸 한나절은 유쾌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백산스님 <서역기행> 9. 탁실라에서 보낸 유쾌한 오후)
인더스 강변의 아침
타고 갈 밴이 대기 중
작별 인사를 하고 8시 5분 출발. 에어컨이 잘 나와 시원하다.
10분 후 바부사르 삼거리 도착
바부사르 패스를 향하여 가다
길 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청년들
파키스탄 중산간 지방 풍경
칠라스에서 바부사르 패스 오르는 길
9시 50분 바부사르 탑(패스) 도착. 안개 낀 4173m 고도라 춥다.
대부분 허름한 점포다.
노점상도 많고
그중 제일 깔끔하게 지은 카페 <하늘로 가는 문>
여기서 나란까지 70km , 이슬라마바드까지 326km
나란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본 풍경(오른쪽으로 가는 중)
11시 5분 산사태 지역을 만났다. 다행히 상황은 곧 해결되었다. 이곳이 상습 산사태 지역인지 구걸하는 아이들이 상주해 있다.
12시 40분 래프팅을 하는 곳을 지나다. 나란은 이슬라마바드에서 제일 가까운 래프팅 명소다.
나란 계곡(어퍼 카간 계곡)을 흘러 내려가는 쿤하르(Kunhar) 강
래프팅 하는 사람들
숙소인 나란 아이코닉 호텔 도착. 바부사르 탑에서 65km 거리다.
호텔 로비
로비에서 만난 한 여행자 가족의 막내 꼬마 아가씨. 기꺼이 포즈를 취해 준다. 영어를 잘 한다.
내려오는 도중 길 가 양봉 가게에서 300루피(18,000원) 주고 산 밀랍 벌꿀. 맛이 좋았다.
호텔 앞
호텔 위 바부사르 탑 방향
호텔 앞 밤 풍경
식사시간은 언제나 즐거워. 가운데 친구는 어제 트레킹을 마치기 전 콜라를 준비하여 기다린 에싼의 사촌 동생이라고. (아래 사진).
어제 트레킹 마치기 전 가뭄에 단비 같은 콜라를 준비해 온 에싼의 사촌동생
사이풀 물룩 호수(3224m)는 나란에서 방문할 수 있는 명소다. 지프차를 차고 북쪽으로 거친 산길 9km 거리를 1000m 올라가야 한다. (사진클릭-큰 사진)
7. 30. (토) 나란 - 이슬라마바드
나란 - 이슬라마바드 (275km)
2400고지의 나란은 고냉지 채소가 많이 나는 곳이다. 저 위쪽 골짜기에 주요 시설이 몰려 있다.
출발 준비 하는 여행자들. 느긋하게 9시 50분 출발.
1시 45분 중국이 건설 중인 댐지역 통과
12시 10분 제법 큰 마을을 지나면서 과일과 음료수를 사 먹었다. 이쯤 어디선가 점심을 먹었는데 어딘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 중요하지 않는 일이지만 기억력이 떨어지는 증거다. 다음부터는 항상 밥 먹는 사진을 찍을 것. 그러면 시간과 장소가 사진에 자동적으로 저장된다. 나는 후기를 편년체로 쓰기 때문에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장소의 기록이 중요하다.
구비구비 돌아가는 어마어마한 산길이다. 왜 평탄한 길을 두고 이 길을 택했는지 알 수 없다. 경치는 볼만했다. 짐작컨대 에싼이 우리에게 파키스탄 산악도로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오후 4시 이슬라마바드에 거의 다 왔다. 이 큰 공터는 노천 화장실로 이용하는 곳이다.
잘 계획된 도시 이슬라바마드에 도착했다. 비로소 근 한달 간의 긴 여정이 끝낫다.
오후 4시 50분 숙소 엔보이 호텔 도착
호텔 앞 풍경
서미트 카라코럼 에이전트의 메니저가 기다리고 있었다.
방 배정 전 로비에서 휴식 중인 낭가님
바위님과 서란님
4층에 있는 객실
조금 좁기는 해도 처음 왔을 때 보다 한등급 업그레이드 된 디럭스룸이다. 13일 만에 다시 만난 룸메이트 길동님과 같이 쓴다.
저녁 식사 하러 근처 식당으로 가는 중. 떠나는 날까지 계속 같은 식당에서 먹었다. 내일은 간다라 미술의 탄생지 탁실라로 갈 예정이다.
첫댓글 갔다온지 몇개월지났는데 다시가고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외여행은 도시만보고다니는거보다 트레킹하면서 위대한자연경관을보는것이 오랫도록 기억에 남는거 같습니다
동감합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이 특히 더 그렇습니다. 파키스탄 트레킹은 힘들어 다시 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고대 불교 유적지가 많아 시절인연이 오면 순례자로서 다시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