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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실라 유적지 / 에필로그
Taxila Ruins / Epilogue
탁실라 유적지 방문 순서
1. 탁실라 박물관
2. 피팔란
3. 자울리안
4. 모라 모라두
5. 시르캅
탁실라 유적지
탁실라에는 기원전 6세기부터 6세기까지 천년에 걸쳐 건설된 많은 유적이 넓게 퍼져 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서쪽으로 대략 30㎞ 떨어져 있으며, 중석기시대의 칸푸르 동굴과 네 곳의 정착지인 사라이달라 · 비르 · 시르캅 및 시르수크, 여러 시대의 수많은 불교 승원, 또 중세 시대의 모스크와 마드라사(이슬람 신학교)가 포함된다.
탁실라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 유튜브에 소개된 내용을 캡쳐하여 그대로 가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이런 역사 깊은 고대 유적지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미리 공부를 해야 뭔가 보인다. 2006년 영국의 가디언지는 탁실라를 파키스탄에서 제일 먼저 가 보아야 할 여행지로 꼽았다.
처음 간 곳은 박물관에서 가까운 다르마라지카 스투파가 있는 유적지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들어가지 못하고 (그곳 점심시간이었든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오기로 하고 차를 돌렸다. 그리고 그 후 모든 일정은 운전기사에게 맡겼다. 준비해온 캡쳐 사진에 나오는 일정은 의미가 없어졌다. 아는 것이 없으니 지시를 할 수 없었다.
우리의 일정은 박물관을 나온 후 핍플란에서 시작하여 자울리안, 모라 모라두를 거쳐 시르캅에서 마쳤다. 호텔에서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다 둘러볼 수 없었고, 중간에 택시 한 대에 문제가 생겨 거의 1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정작 제일 중요한 유적인 다르마라지카 스투파를 참배하지 못했는데 다시 갈 기약이 없는 지금 생각하니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연료 주입하느라 늦어졌다는데 처음 출발 후 우리 택시가 주유소에서 기름 넣을때 그 택시(하늘색 옷을 입은 운전기사)는 도데체 뭘 했는지 모르겠다.
피팔란(Pipplan)
제일 먼저 찾아간 피팔란은 1세기에 건축된 작은 승원이다.
한국의 작은 암자 정도의 규모
적막한 땡볕 아래 한 사나이가 앉아 있길래 가 보니 풀을 매는 중이다.
마침 호텔에서 가지고 간 과자가 있어 새참으로 주었다.
독특한 디자인의 벽이 멋있다. 2000년 전의 디자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 감각이다.
법당 내부 무너진 봉헌탑 흔적
가운데 원형과 사각형은 무너진 탑의 기단부다. 오른쪽은 우리의 두 기사 양반.
자울리안(Jaulian)
자울리안은 2세기에서 4세기 사이 고대 간다라 국가에서 인도 아대륙 밖으로 불교가 확장되던 초기에 건설되었다. 이 지역은 1세기에서 4세기 사이 쿠샨 제국 시대에 유명해졌다. 불교는 탁실라 계곡의 교역로를 따라 전파된 것으로 여겨진다. 자울리안 고고학적 유적지의 불교 승원 및 사리탑은 실크로드를 따라 불교의 초기 발전과 확산을 보여 준다.
자울리안은 탁실라 도시의 중요한 유적지 중 하나다. 불교에 대한 학습 및 연구의 권위 있는 장소로 설립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학생들은 인도 아대륙 전역과 멀리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국에서 와 공부했다. 중요한 유물은 탁실라 박물관으로 옮겨졌지만 이곳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자울리안은 1층에 28개의 승방이 있고 2층에 28개의 방이 있는 2층 건물로 지어졌다. 두 층은 여전히 보존되어 있는 돌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일부 감실에는 보존된 불상이 있다. 각 방에는 램프를 놓을 벽감과 신선한 공기와 자연 채광을 제공하는 창문이 있었다. 승방, 강당, 주방, 창고 등 수도원 생활과 관련된 여러 구조물이 복합 단지에 있다.
서쪽의 파르티아(페르시아) 제국으로 가는 육로, 인도의 서쪽 해안을 따라 있는 항구, 실크로드의 중앙아시아 회랑에 접근할 수 있는 간다라는 상업 활동의 혜택을 받기에 좋은 위치에 있었다. 쿠샨 제국은 헬레니즘, 페르시아, 인도의 영향을 받은 주민들의 특성을 활용하여 문화적 포용을 통해 상업을 육성했으며, 그 결과 이웃 나라들과 더 쉽게 무역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문화적 유동성은 불교 단지 내에서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의 특징을 보여주는 자울리안 사리탑의 특징인 혼합적 건축에서도 볼 수 있다.
사리탑은 부처님 또는 불교 성인의 유물을 포함하거나 성스러운 행사와 장소를 기념하기 위한 돔 모양의 종교 구조물이다. 사리탑 순례를 하거나 사리탑 건립을 위해 돈을 기부하는 것은 부처님을 숭배하고 신앙을 지키는 주요 방법 중 일부였다.
자울리안에는 총 27개의 봉헌 사리탑이 주 사리탑을 둘러싸고 있다. 카로스티(Kharosthi) 문자의 비문은 일부 사리탑과 법당 바닥에 쓰여 있으며 기증자의 이름과 직함이 나와 있다. 그들은 지역의 불교 전파에 대한 후원의 중요성을 보여 주며 다양한 기부자 계층은 종교가 사회의 많은 부분에 미친 광범위한 매력과 영향을 보여준다.(Jaulian, Pakistan - Google Arts & Culture)
Marshall, John Hubert, Sir - A guide to Taxila, Publication date 1918, India
자울리안 승원 유적은 언덕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어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외국인은 500루피. 내국인은 50루피. 그나마 다행인 것은 500루피 내면 탁실라 모든 유적을 관람할 수 있는 자유이용권이라는 점이다.
승원 입구
불탑 기단부
이곳 불탑 기단부에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으로 좌대를 아틀라스가 받치고 있는 모습의 부조가 있다. 중앙탑 주변에는 27개의 작은 사리탑, 부처님의 생애를 묘사한 조각이 있는 59개의 작은 불당이 있다. 자울리안의 형태와 건물은 인근 모라 모라두의 형태와 건물과 유사하다.
주변 작은 방과 탑은 심하게 손상되었다. 주 사리탑은 작은 봉헌탑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봉헌탑 일부는 실제로 존경받는 스승의 사리탑이라고 한다.
파괴된 불상
5세기 백훈족에 의해 훼손된 불상을 보니 안타깝다.
중앙 사리탑 기단부는 그나마 보존이 잘 된 편이다. 세 불상이 각각 시대를 반영한 듯 머리 모습이 다르다. 가운데 불상은 훼손이 아주 심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다.
초기 그리스풍 머리
후기 나발형 머리
주변에 제자들과 함께 있는 감실형 불상. 탁실라 박물관에 복사본이 있다.
치유의 부처 (Healing Budda-약사불)
배꼽에 원형 구멍이 있는 치유의 부처(약사불). 카로시티(Kharoshti) 문자로 된 비문이 있는 불상은 그것이 "법(달마)을 기뻐한" 한 신도가 기부한 것이라 기록되어 있다. 배꼽의 구멍은 기도자가 특정 신체 질환에 대한 기도를 드릴 때 손가락을 넣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약사불은 미얀마, 한국, 티베트, 중국, 일본에서 널리 숭배된다. 믿음에 따르면, 일부 질병은 단순히 약사불의 형상을 만지거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효과적으로 치료된다고 한다. 자울리안에서 약사불상이 발견된 것은 이 신앙이 3~4세기경 간다라에서 기원했거나 그 이전에 널리 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위 설명서)
2층 승원 유적. 전체 28개의 승방이 있으며 일부 방에는 불상이 보존되어 있다. 간다라 지역의 다른 대형 승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중앙에는 넓은 저수지가 있다.
각 방에는 램프를 보관할 수있는 틈새와 신선한 공기와 자연 채광을 제공하는 창문이 있다.
열심히 설명하는 관리인 아저씨
원형 부분과 복원 부분.
승원은 산세가 안온하여 공부하기 좋은 분위기다. 관리인 아저씨와 기념사진을 찍고 약간의 팁을 주었다. 가이드를 원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수고를 했으니 조금이라도 주는 것이 좋다. 다시 긴 계단을 내려와 입구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땀을 식힌 후 모라 모라두로 향했다.
모라 모라두(Mohra Morado)
모라 모라두 승원 안내문
모라 모라두 승원은 쿠샨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2세기에 지어졌으며 4세기와 5세기에 걸쳐 광범위하게 리빌딩되었다. 모라 모라두 유적은 시르수크(Sirsukh) 시에서 남동쪽으로 약 1.6km 떨어진 모라 모라두 마을 뒤쪽 계곡에 있다. 1914년과 1915년 존 마샬 경의 감독하에 발굴되었다.
모라 모라두의 대탑은 규모가 엄청나서 기단 높이만 4.75m에 달한다.
주 탑을 지나 계단을 올라 오른쪽 승원 구역으로 들어간다.
승원 입구
마당 가운데 저수지를 두고 사방에 작은 방들이 있다. 간다라 지역 대형 승원은 모두 이런 구조다.
탑과 연결되어 있는 승원은 직사각형이며 여러 개의 넓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승원에 들어가면 사방에 27개의 감실방이 있는 널찍한 안뜰이 나온다. 일부 방에는 램프를 위한 작은 감실이 있다. 마당 중앙에는 60cm 깊이의 오목한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모든 불교 사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속물인 저수지다. 위쪽 파란 문 안에 유명한 봉헌탑이 있다.
또 다른 귀중한 유물인 봉헌 사리탑은 모든 세부 사항이 완벽하며 감실에 있다. 존경받는 스승이나 수행자를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으며 이 사리탑의 복제품이 현재 탁실라 박물관에 있다.
봉헌탑 문을 열어주는 관리인 아저씨. 시간은 이미 오후 5시가 넘었다.
봉헌 사리탑
시르캅(Sirkap)
모라 모라두를 나와 다음에 간 유적지는 시르캅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모라 모라두를 나와 시르캅을 가는 도중 차 연료를 넣는다고 시간을 많이 소모했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다 시르캅을 향했다.
연대순으로 탁실라의 두 번째 주요 도시인 시르캅(‘잘린 머리’라는 뜻)은 탁실라 계곡의 평원에 있다. 수많은 주택, 사리탑 및 사원들이 기원전 180년 무렵 그리스 풍의 박트리아 왕국에 의해 설립된 것으로, 넓고 개방적인 그리드 시스템(격자형 도시 계획) 양식을 취하였다.
탁실라는 힌두스(인더스 강 유역 국가)라 불리는 왕조의 수도였으며, 펀잡(다섯 개의 강) 지방의 서쪽 절반에 해당한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 왕 통치 하에 아케메네스 왕국에 부속되었으나 점령이 오래가진 못했다. 이 도시는 중앙아시아의 쿠샨 왕조에 의해 1세기에 멸망하였다.
시르캅은 길이 5㎞ 이상, 두께 최대 6m의 강력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원래는 네 면 각각에 출입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북쪽 벽에만 있으며, 방문객들은 이곳을 통해 들어가게 된다. 압시달 사원, 태양 사원, 쌍두독수리탑, 쿠날라 수도원 및 가이 수도원 등 수많은 사원과 수도원이 있다.(Taxila Museum (punjab.gov.pk))
시르캅 입구
시르캅에 대해 설명하는 관리인 아저씨. 우리와 동행하며 안내해 준 이 양반은 나중에 이곳에서 나온 것이라면 알렉산더로 보이는 인물의 얼굴이 새겨진 작은 그리스풍 동전 몇 개를 보여주며 사라고 한다. 싸게 준다고. 95%는 가짜일 것이고 진짜라면 문화재 불법 반출이니 더더욱 사면 안된다.
풀이 무성하다. 여름이라 풀이 다 자랄 때까지 그냥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 몇 군데 없는 귀한 기원전 유적인데 그냥 방치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국가 재정이 부족한 탓일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1980년에 지정되어 40년이 넘었는데...
독특한 둥근 탑
쌍두 독수리탑. 탑 기단부 오른쪽에 쌍두독수리부조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쌍두독수리 부조
자이나교 탑. 위 돌기둥은 그리스 코린트 양식이다.
시르캅은 길동님 말처럼 아늑하고 고즈녁한 분위기다. 그리스 철학자 아폴로니우스는 서기 1세기에 탁실라를 방문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그리스 유형의 구성을 가진 구조물들에 대해 설명하는 아마도 시르캅(Sirkap)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우리에게 탁실라는 니느웨(Nineveh)와 거의 같은 크기이며, 그리스 도시의 방식에 따라 상당히 잘 요새화되었다고 말한다. 도시가 성벽으로 둘러싸였다는 것은 이미 설명했지만, 그들은 그리스의 아테네와 같이 불규칙한 방식으로 좁은 거리로 나뉘어 있으며, 집은 바깥에서 볼 때 단층으로 보이지만, 집 안으로 들어가면 지하실이 지상의 방과 같은 크기로 땅 아래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위키백과)
다르마라지카(Darmarajika)
넓고 넓은 시르캅을 방문하고 내려오니 시간이 6시가 넘었다. 다르마라지키 대탑을 들르기에는 늦었다. 이미 관람시간이 지냤다. 사실 탁실라 유적지 중 연대가 확실하며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발굴된(현재 탁실라 박물관에 봉안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유적이다.
다르마라지카 스투파는 BC 3세기 아쇼카 왕이 세운 최초의 부처님 사리탑이다. 1912-16년 당시 인도고고학 국장 존 마샬에 의해 다르마라지카 스투파 발굴이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비문이 들어있는 관에서 부처님의 사리함이 발견되었다.
비문은 한때 간다라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고대 카로스티 문자로 작성되었다. 내용은 노아차의 우루사카가 다르마라지카에 있는 그의 예배당에 부처님의 뼈 유물을 놓았다고 쓰여 있다. 마샬 경은 다르마라지카 스투파가 기원전 3세기에 마우리야 황제 아쇼카에 의해 부처님의 신성한 유물을 모신 불탑으로 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불교 스투파 중 하나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다르마라지카라는 이름은 진정한 법왕(Dharma raja)인 고타마 붓다의 사리 위에 탑이 세워진 사실에서 유래한다. 탁실라는 마우리아 제국의 많은 도시 중 하나로 아쇼카에게서 성물을 나누어 받았다. 다르마라지카 스투파 부처님 사리를 안치하기 위해 아쇼카 왕이 세웠다.
다르마라지카는 BC 3세기부터 AD 7세기까지 탁실라 불교 역사의 거의 전 기간에 걸쳐 존재했다. 주요 불탑은 마우리야 시대에 지어졌지만 서기 40년의 지진으로 인해 손상되어 쿠샨 시대에 두 번 재건되었다. 다르마라지카의 전체 단지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부분은 여러 유형의 건축물이 연속으로 구성된 스투파 지역이며 북쪽에 위치한 두 번째 부분은 승원 지역이다.
사리탑은 직경 40m, 높이 14m의 원형 봉분으로 지어졌다. 단단한 석조로 지어졌으며 4개의 계단으로 올라가는 바닥 주위에 높은 테라스가 있다. 이 구조는 고대에 탑돌이 경로로 사용되었던 열린 포장 통로로 둘러싸여 있다. 탑 지역의 안뜰은 순례자와 방문객이 세운 BC 1세기부터 AD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많은 다른 법당과 여러 봉헌탑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사리탑은 불상과 조각상으로 장식되었다. 큰 사리탑의 북쪽은 승려들의 거처와 작업 공간이 있는 승원 지역이다.
다르마라지카 스투파에서 여러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모두 탁실라 박물관에 보존 및 전시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발견은 1917년 탑 옆 법당 중 하나에서 다르마라지카 스투파에 부처님 사리를 안치한 것을 기록한 은 두루마리가 들어 있는 사리함이 발견된 것이다. 이것은 당시 영국령 인도 총독이 실론의 불교도 공동체에 선물했으며 이후 스리랑카 캔디시의 불치사에 안치되었다.
다르마라지카는 존 마샬 경의 지휘 아래 1912-1916년과 1934-1936년에 발굴했다. 1980년에는 문화적, 역사적, 과학적 또는 다른 형태의 중요성을 지닌 유네스코의 세계 유산 목록에 포함되었다. (Taxila Museum 자료)
돌아오는 길
탁실라 간다라 유적은 아리안, 그리스,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 불교, 자이나교, 중앙아시아 등 고대 문화가 융합하여 활짝 꽃 핀 아주 오래된 문명의 유적이다. 그래서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갈 기회가 있으면, 그것이 원정이든 트레킹이든 배낭여행이든 출장이든, 꼭 한 번 가보시길 권한다.
아쉽지만 유적지 방문을 마쳤다. 이슬라마바드로 돌아가는데도 1시간 이상 걸린다. 급조된 탐방이었지만 길동님 덕분에 예정에 없던 고대 간다라 유적지를 볼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특히 불제자로서 부처님의 모습이 처음 세상에 실물로 조성된 이곳 간다라에서 1900년 전의 모습을 실제로 친견하니 더욱 감명 깊었다.
D 29 (일). 8월 1일, 밤 11시 20분 - 이슬라마바드 공항 이륙
하루종일 호텔에서 푹 쉬다가 저녁을 일찍 먹고 이슬라마바드 공항으로 갔다. 에싼이 배웅을 해 주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제 정말로 낭가 파르밧 트레킹을 마쳤다는 실감이 났다. 공항 출국심사에서 다시 모든 서류를 다시 제출하여 확인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서 입국 때 준비한 서류를 버리지 말고 잘 보관해두어야 한다. 그나마 외국인은 좀 덜하다. 자국민들에 대한 검색은 출국심사대에 가기 전 검색대부터 엄청 깐깐해서 여러 서류를 자세히 살펴보고 사진도 확인한다.
이렇게 입출국이 까다로우니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반감된다. 인더스문명과 더불어 고대 간다라 문명 유적지가 많이 있어 전세계 불자들과 역사에 관심을 가진 여행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출입국이 힘들어 찾아오기 쉽지 않다. 그러니 관광으로 얻는 수입이 별로 없고, 수입이 적으니 유적지 보존에 쓸 재원이 부족해 그저 방치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D 30 (월). 8월 2일, 아침 6시 20분 - 방콕 수완나폼 공항 도착
1일 밤 비행기를 타고 방콕 공항에 2일 아침 6시 20분에 도착했다. 인천행 비행기 출발 시각은 다시 밤 11시 30분. 공항에서 꼬박 17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다른 분들은 방콕 시내로 관광 겸 휴식을 취하러 나가고 나는 공항 대합실에 남았다. 아직도 속이 좋지 않아 안정이 필요했다. 라운지에서 샤워도 하고 간단한 요기도 했지만 라운지 이용시간은 최대 2시간이라 두 군데 이용해도 시간이 남아 돌았다. 다행히 쉴만한 의자가 많이 있고 무료 와이파이가 있어 그럭저럭 시간을 때웠다.
D 31 (화). 8월 3일, 아침 6시 55분 - 인천공항 도착. 30박 31일간의 여행을 마쳤다.
에필로그
이런저런 우여곡절과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그래도 별고 없이 무사히 트레킹을 마쳤습니다. 좋은 분들과 함께 한 멋진 트레킹이었습니다. 일정에 차질이 생길 때마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힘든 파키스탄 낭가 파르밧 트레킹을 주선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이끌어주신 거작가(거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유영국님이 파키스탄 K2 발토르 트레킹 책 <신들의 정원, 하늘길을 걷다> 에필로그에 인용한 튀르키예(터키)의 시인 나짐 히크메티 란(1902~1963)의 시 〈진정한 여행〉을 재인용하며 글을 마칩니다.
진정한 여행
가장 장엄한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러지지 않았습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날은 아직 살아보지 않았습니다
가장 거대한 바다는 아직 개척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긴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불멸의 춤은 아직 공연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우리가 진정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때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바로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 때입니다
A True Travel
The most magnificent poem hasn't been written yet
The most beautiful song hasn't been sung yet
The most glorious day hasn't been lived yet
The most immense sea hasn't been pioneered yet
The most prolonged travel hasn't been done yet
The immortal dance hasn't been performed yet
The most shine star hasn't been discovered yet
When we don't know any more what we are supposed to do
It's the time when we can do true something
When we don't know any more where we are supposed to go
It's the start when the true travel has just begun
첫댓글 잊었던 듯한 낭가파르팟 트레킹이 다시 내게로 온 듯 합니다,
당시의 우여곡절 속에서 '탁실라'는 회한과 미련, 당혹과 침잠의 시간들을 살피게 하였습니다.
카페지기님의 글을 읽으며 불교와 그 역사에 관해 그리고 탁실라가 가지고 있는 불교유산들에서 현대인으로 감동과 감사를 느낍니다. 무엇보다 사진과 이미지 등을 꼼꼼히 주석까지 붙여 설명해주신 지기님께 "덕분에 잘~ 읽었다"고 감사 인사드립니다.
긴 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