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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k5: 강하르 - 난다데비 이스트 BC
Ganghar (3412m) - Nanda Devi East BC (3900)
히말라야 산맥 (The Himalayas)
유라시아판 아래의 인도 지각판의 섭입에 의해 들어 올려진 히말라야 산맥은 2400km 길이의 호를 그리며 서북서쪽에서 동남동쪽으로 이어진다. 서쪽 끝은 낭가 파르밧으로 인더스 강의 최북단 구부러진 곳 바로 남쪽에 있고, 동쪽 끝인 남차 바르와는 얄룽창포 강의 큰 굽이의 바로 서쪽에 있다. 너비는 서쪽 350km에서 동쪽 150km까지 다양하다.
히말라야라는 말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 '히마(눈)'와 '알라야(거처)'에서 유래했으며 '눈들의 거처'라는 뜻이다. 티베트 고원에서 인도 아대륙의 평원을 분리하는 아시아의 산맥으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을 포함하여 지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들이 있다. 히말라야에는 8천 미터 이상 되는 산 14개를 포함하여 높이 7천 미터 이상의 산이 200여 개다.
히말라야 산맥은 서쪽 파키스탄, 인도, 네팔, 중국(티베트), 부탄 등 5개국과 접해 있거나 교차한다. 북서쪽으로 카라코람과 힌두쿠시 산맥, 북쪽으로는 티베트 고원, 남쪽으로는 인도-갠지스 평원과 접해 있다. 히말라야는 남아시아와 티베트의 문화를 깊이 형성해 왔는데 히말라야의 많은 봉우리는 힌두교와 불교에서 신성시된다.
난다데비 이스트를 보다
평소대로 아침 일찍 일어났다. 어제 텐트를 야영지에서 조금 떨어져 서쪽에 쳤고 입구도 서쪽으로 했다. 난다데비 이스트 방향이다. 어제 오후에는 구름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텐트 안에서 서쪽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어두워 희미한 그림자만 보였다. 오전 5시 49분 파추 계곡 위로 금빛 설산이 삐죽 솟아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7434m의 난다데비 이스트다. 설산의 일출을 보니 반갑다.
설산이 없는 히말라야 트레킹은 별로 의미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설산이야말로 내가 히말라야에 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여름 우기 때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가지 않는다. 산사태 위험도 있고(파키스탄과 라다크는 여름에만 트레킹이 가능하니 예외). 봄에는 우기가 시작되기 전이지만 반드시라고 할 만큼 운행 중 비나 눈을 만난다.
지금까지 다녀 온 트레킹 중 봄에 간 것은 ABC, 무스탕, NABC(안나푸르나 북면 BC), 그리고 코프라단다였다. 그 중 무스탕을 제외하고 모두 비나 눈을 만났다. 그렇다고 종일 내린 것은 아니어서 견딜만 하기는 했다. 몬순 이전이라 설산도 잘 보았다.
봄 트레킹에서 가장 좋은 점은 지천으로 피어있는 랄리구라스 꽃을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봄철 트레킹 중 2010년 안나푸르나 북면 트레킹 때 본 랄리구라스 군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랄리구라스가 네팔 국화인 만큼 네팔 히말라야 어느곳이든 봄이면 지천으로 핀다.
위대한 탐험가 빌 틸만 (H. W. Tilman, 1898-1977)
산악인이자 탐험가인 틸만은 난다데비 초등 후에도 끊임없이 탐사를 이어갔다. 틸만은 1949년 네팔의 랑탕, 가네쉬, 주갈, 마낭 지역을 4개월간 광범위하게 탐험하는 과학적 원정을 이끌었다. 그는 가네쉬 히말의 팔도르(Paldor, 5896m)를 등반했고, 강첸포 너머에 훗날 자신의 이름을 딴 통로(틸만패스)를 발견했다.
또한 1950년 영국 안나푸르나 원정대를 이끌어 안나푸르나 4봉(7525m) 등정을 시도했다. 비록 등정에는 실패했으나 정상에 근접했다. 이 모든 것이 네팔이 외부 세계에 문을 열기 시작한 초기에 진행된 것이었다.
틸만은 이 때의 탐사를 기록하여 1952년 <네팔 히말라야(Nepal Himalaya)>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책에서 그는 랑탕 계곡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 중 하나"라고 했다고 한다. 원문을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봄철 랑탕의 온 산과 계곡에 피어 있는 랄리구라스 군락을 보고 느낀 감탄사일 것이다. 그의 네팔 탐사작업은 훗날 네팔 트레킹의 기원이 되었다.
1952년 틸만은 그의 업적으로 영국 왕립 지리학 협회의 창립자 메달을 수상한다.
이후 틸만은 방향을 바다로 바꾸었다. 1954년에 구입한 브리스톨 채널 파일럿 커터 미스치프(Mischief)를 타고 1955년부터 심해를 항해했으며, 이후에는 '씨 브리즈'와 '바록' 같은 다른 파일럿 커터들을 타고 북극과 남극의 해역으로 새롭고 미지의 산을 찾아 다녔다. 그의 항해는 1955년부터 1977년까지 23년 동안 21회 이루어졌으면 1회 항해에 평균 5개월, 1만 km 이상이었다.
그의 마지막도 전설적인 탐험가 답게 극적이다.
1977년, 80세의 틸만은 스미스 아일랜드(Smith Island)등반을 위해 남대서양으로 항해하는 등반가들과 함께 '앙 아방(En Avant, 전진)' 호의 승무원으로 초대되었다. 젊은 시몬 리처드슨이 선장이었다. 그들은 성공적으로 영국 사우스햄턴에서 라 팔라로, 그리고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후 포크랜드 제도(Falkland Islands)로 향하던 중 행방불명이 되었다. 결국 그 배는 모든 승무원과 함께 침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77년 빌 틸만이 선원들과 함께 등반 원정을 하기 위해 앙 아방(En Avant) 호를 타고 스미스 섬으로 향하는 도중 남대서양의 폭풍 바다에서 모두 사라졌을 때, 세계는 놀라운 모험가이자 억눌릴 수 없는 자유로운 정신을 잃었습니다.
80세에 해당하는 연령, 대부분의 사람들은 등반과 항해 경험이 있는 사람조차도 우아하게 은퇴하여 책과 정원 가꾸기로 만족하는 시기에 틸만은 자신의 늙은 몸을 최대한으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는 단 한 순간도 원정에 직접 참여할 수 없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Bill Tilman: Turning the page once again on old adventures)
1955년이면 틸만의 나이 57세 때다. 52세까지 히말라야를 섭렵한 후 다시 57세부터 80세까지 23년간을 쉬지않고 항해를 했으니 그의 체력과 노력과 의지가 놀랍다. 세계가 그를 위대한 탐험가, 모험가로 존경하는 이유다.
베이스캠프
잠깐 모습을 보여준 수난다데비는 곧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아침 먹고 천천히 베이스캠프를 향해 올랐다. 파추 계곡을 따라난 산길에도 쿠샤 풀이 많이 나 있다. 계곡 이어지는 오르막이긴 하나 한가로운 산길이다. 베이스캠프 고도는 3900m. 랑탕 트레킹 최종 목적지 컁진곰빠와 비슷한 고도니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4000m 이하는 트레킹 초반에 이르는 높이다. 그래서 푼힐(3120m), 코프라단다(3660m), 랑탕(3920m), ABC(4130m)는 초보자용으로 많이 추천하는 코스다. 그렇지만 히말라야는 히말라야다. 동네 뒷산이 아니다. 무엇보다 트레킹 시점까지 가는 일부터 진을 뺀다. 특히 이번 트레킹의 시점인 문시야리까지의 접근은 그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트레킹에서 제일 높은 베이스캠프가 3900m라고 해서 '흠~그 정도야 뭐...' 하고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작년 낭가 파르밧 서키트를 한 경험이 있으니까. 낭가 파르밧 트레킹 이후 이제 아무리 험한 코스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이지 낭가 파르밧 서키트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 그만큼 힘든 트레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가 파르밧 풍광은 엄청나다. 특히 원정대들이 베이스캠프를 차리는 디아미르 베이스캠프의 풍광은 압도적이다. 페어리메도우와 메스너 형제가 처음 오른 루팔벽이 있는 바진캠프도 마찬가지로 좋다.
만일 다시 간다면(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굳이 엄청난 고개를 넘고 넘어 한바퀴 도는 '개고생' 대신 이 세 베이스캠프만 골라서 갈 것이다. 차량으로 이동하여 2~3일 정도만 오르면 된다. 당연히 고소적응을 마친 상태여야 하고.
그리 높지않은 고도지만 계속 오르막이라 숨이 찬다. 그래도 산길이 좋아 쉬엄쉬엄 간다. 작은 계곡을 건너 11시 30분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주방에서 점심을 가지고 왔다. 양고기 카레 볶음밥이다. 이제 슬슬 인도음식이 질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가끔 후식으로 저녁식사 후 텐트에서 가져간 누릉지를 컵에 조금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불려 먹는다. 예전 롯지 트레킹 때 사용했던 노하우다. 그저 입가심 정도지만 구수한 숭늉이 들어가면 속이 한결 낫다.
12시 40분 베이스캠프 도착. 짐은 이미 다 와 있어 모두들 자리를 골라 부지런히 텐트를 쳤다. 나와 선암님은 다시 조금 떨어진 곳에 쳤다. 캠프가 넓어 선택의 여지가 많다. 텐트가 붙어 있으면 옆 텐트 소음이 바로 들려와 불편하다. 산골 적막강산에서 항상 완전 무소음 상태에서 자는 나는 트레킹을 오면 주변 소음에 예민해져 잠을 설치곤 한다.
원래 파추빙하 베이스캠프는 이곳에서 작은 언덕을 하나 넘는다. 그러나 물을 구하기 힘들어 이곳에 캠프를 차린다고 한다. 어련히 알아서 그랬겠지만 그 결정은 잘 한 일이다. 베이스캠프는 이곳보다 50여 미터 더 높고 파추빙하의 얼음바람이 정면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훨씬 춥다.
산 위에 구름이 잔뜩 끼었다. 바람도 스산하게 분다. 은근히 내일 날씨가 좋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지금까지는 정말 좋았다. 오늘 오후에 처음 흐린날을 만났다. 내일이 하이라이트인데 설산을 보지 못할까 걱정이다. 그러면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어진다. 이제는 바람과 더불어 비와 싸락눈까지 내리고 있다.
따끈한 우유와 간식을 먹고 좀 쉬다가 마부들이 피운 장작불로 모두 모였다. 캠프파이어다. 오랜만에 화끈한 불을 보니 반갑다. 이곳에 캠프를 차린 이유도 이런 고사목 땔감을 구하기 쉽기 때문이다. 한참 불을 쬐다가 텐트로 돌아왔다.
침낭 속에서 잠깐 졸다가 저녁을 알리는 '괭가리' 치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음식 쟁반이 괭가리 대용이다. 며칠 전 마르톨리에서 주방 도우미 마헨드라가 저녁 식사 준비되었다고 소리치길래 앞으로는 간식이나 식사 때 신호로 포크로 쟁반을 두드리라고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후로 트레킹을 마칠때까지 마헨드라의 성대는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다. ♣
지금 편의상 부르는 난다데비 이스트 BC와 오리지널 난다데비 이스트 BC
파추 계곡 뒤로 보이는 난다데비 이스트 일출 (사진: 솔나리님)
아침 식사 전 먼저 플라이를 걷어 말린다.
아침부터 구름이 몰려와 심상찮다.
식사 후 출발 준비 중. 노란선이 가는 길이다. 사당 앞을 지난다.
7시 45분 출발
사당을 지나 바로 치고 오른다.
쿠샤 풀이 바람에 날리는 한가로운 산길
뒤돌아 본 강하르 마을. 지붕이 무너진 폐가도 많다.
완만한 오르막
올라가야 할 길과
올라왔던 길
랄리구라스 숲을 만났다.
항상 나와 함께 후미를 담당하는 부뜰님. 운행 중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분들도 모두 한가닥 하는 분들이지만 부뜰님도 대단한 경력을 가진 분이다.
말이 온다고 한다. 지나갈 때까지 잠시 쿠샤 풀 속에서 휴식.
말님들이 지나가고
다시 한참 올라가니 간이 이정표가 있다.
그곳은 전망이 툭 터진 곳이어서 잠시 서서 휴식. 오전 11시 15분이다.
갑자기 넓은 벌판이 나타났다. 여름 방목지로 최고일 것 같다. 산길이 잘 나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 끝은 작은 계곡.
그 계곡을 건너 점심을 먹었다(노란원).
오늘 점심은 특식으로 양고기 카레가 나왔다. 주방팀이 가지고 왔다. 주방장 난디가 식판 준비 중. 가이드 나렌드라는 오이를 깎아 나누어 주었다.
을씨년스런 분위기지만 생존을 위해 먹어두어야 한다.
12시 40분 베이스캠프(아래) 도착
각자 자리를 잡고 부지런히 텐트 설치 중 (사진: 선암님)
나와 선암님은 조금 떨어져 설치했다.
모든 텐트 설치 완료
간식 시간. 스산한 날씨에 뜨거운 우유로 추위를 달랜다.
날씨가 춥다. 마부들이 피운 모닥불에 모두 모여 불을 쬐었다.
조금 위로 올라가 내려다 본 캠프사이트
캠프사이트 파노라마
▶인도 난다데비 이스트 BC 트레킹 문시야리 에이전시◀
India Nanda Devi East BC Trekking Munsiyari Agency
www.himalyantreks.com (CEO Narendra Kumar)
첫댓글 히말라야가 눈들의 거처라는 뜻이군요. 이렇게 또 하나 알고 갑니다. 디아미르 베이스캠프 가는 길의 풍광은 정말 엄청나네요. 한 번 걸어보고 싶은 길입니다. 틸만은 행복한 사람이었겠다 싶습니다. 기록으로만 봐서는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다가 가신 분이네요~ 모든 존재들이 그러할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감사합니다. 낭가 파르밧 페어리메도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