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7. 람체 - 옥탕 - 람체 - 체람
캉첸중가 남면에서 보이는 다섯 봉우리
● 거리: 17.2km
● 시간: 6:50
● 최고: 4780m (옥탕 )
● 최저: 3870m (체람)
남면 베이스캠프 옥탕으로
어제는 음력 열이틀. 달빛이 유난히 밝았다. 추운 밤이었지만, 이불 속에만 있기 아쉬워 밖으로 나갔다. 달빛 아래 은빛으로 물든 설산은 숨이 멎을 만큼 고요하고 장엄했다. 그 아래에서 나는 한참이나 서 있었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만 맛볼 수 있는, 밤하늘과 설산의 호사를 누렸다.
묵고 있던 방은 바람이 숭숭 들어 아침 기온은 -4.8도까지 떨어졌으나 침낭이 좋으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다이닝룸은 밤이면 가이드와 포터들의 잠자리가 된다. 돌집 방보다 다이닝룸이 더 따뜻해 보인다. 밍마는 이불 속에 웅크려 있다가 내가 들어서자 부시시 일어났다.
아침은 언제나 같다. 따뜻한 밀크커피 한 잔과 티베트 빵 두 개. 꿀을 발라 먹으면 거친 고산의 아침도 부드러워진다. 오늘은 남면 베이스캠프인 옥탕으로 향하는 날. 이번 트레킹의 마지막 고비이자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만나는 곳이다.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는 아침, 배낭을 메고 옥탕으로 향했다. 얄룽빙하의 모레인 언덕을 오른쪽에 두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작은 개울을 건너고, 크고 작은 바위와 자갈이 흩어진 너덜길을 지나자 저 멀리 캉첸중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더 오르니 문 닫힌 비닐하우스 찻집이 하나 있고, 그 옆에 텐트 한 동이 쳐져 있다. 이곳에서 하루 묵으며 일몰과 일출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힌두 사당을 지나쳤다. 이곳 캉첸중가 지역은 티베트 불교와 힌두교가 나란히 공존하는 곳이다. 믿음의 모양은 달라도 산을 존중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
타르초가 휘날리는 옥탕
아침 아홉 시, 옥탕에 닿았다. 해발 4780미터. 캉첸중가 남면을 바라보는 뷰포인트다. '눈 덮인 다섯 개의 보물'이라는 뜻을 지닌 캉첸중가. 다섯 봉우리가 서로 어깨를 기대며 하얀 옷을 입고 서 있다. 아무리 오래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캉첸중가 원정대들이 지나가는 길목이다. 베이스캠프는 여기서 보이지 않는 5475m에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 와서 보니, 시간이나 체력에 여유가 없다면 굳이 거친 북면 베이스캠프인 팡페마를 고집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탕까지의 길은 평화롭고, 어느 구간에서도 산의 품을 깊이 느낄 수 있다.
구름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옥탕의 돌무지에는 타르초가 세찬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파상은 어디선가 향나무를 구해와 향을 피웠다. 맑은 히말라야 바람 속으로 스며드는 향냄새가 오래도록 코끝에 머문다.
내려오는 길, 한 네팔인을 만났다. 체람에서 새벽에 출발해 이곳까지 왔다 한다. 우리가 이틀에 걸쳐 오르는 길을 그는 하루 만에 올랐다. 저녁에 체람 롯지에서 다시 만났다. 이름이 나빈이라는 이 친구와 남은 하산길은 함께 하기로 했다.
히말라야 고산에서는 블루쉽(blue sheep) 떼도 종종 만난다. 바위틈을 능숙하게 오르내리는 이 산양 무리를, 히말라야를 오래 찾은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마주하게 된다. 궁금하여 이름의 유래를 찾아보니, 회색빛 털에 햇살이 닿으면 은은히 푸른빛이 돌아 '블루쉽'이라 불린다고 한다. 학명은 바랄(Bharal).
람체로 돌아와 점심으로 라라 누들수프를 먹고, 체람으로 하산 전 롯지 주인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하신 길에서 캠핑팀과 포터들을 마주치고, 체람에서 봤던 미국 노장팀과도 반가이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텐트를 치고 한가롭게 일몰과 일출을 감상할 것이어서 약간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미국팀의 짐을 지고 오는 좁교들이 나타났는데, 군사에서부터 우리가 넘었던 그 험한 고개를 이 좁은 길을 따라 넘어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명의 캐나다인을 만났다. 그중 한 친구가 마치 젊은 시절의 로버트 레드포드를 닮아 한마디 건넸다.
“오, 당신 로버트 레드포드 닮았네요.”
칭찬을 들은 친구는 싱긋 웃고, 옆 친구가 맞장구쳤다.
“맞아요, 이 친구 여자들에게 인기 최고예요. 그런데 나는 누구 닮았나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글쎄요, 폴 뉴먼은 아닌 것 같네요.”
모두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1969년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를 본 사람이라면 이 말의 의미를 알 것이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폴 뉴먼이 청춘과 우정을 그려낸, 서부 영화의 전설.
어릴 적 나는 영화를 보진 못하고 FM영화음악에서 흘러나오던 ‘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를 듣고는 경쾌한 로맨스인 줄만 알았다. 훗날 영화를 보니, 두 은행 강도 이야기였고,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 영화여서 적잖이 놀랐었다.
오후 2시 20분, 체람에 도착했다. 트레킹 17일째. 체력은 조금 지친 상태. 그래도 내일부터는 하산길이니 조금 수월할 것이다. 캉첸중가 트레킹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요약]
특별한 밤
● 전날 밤, 밝은 달빛 아래 은빛 설산을 감상하며 히말라야의 고요함을 만끽함.
● 돌집 방은 바람이 들어와 추웠지만, 침낭 덕분에 잘 지냄.
아침과 출발
● 따뜻한 밀크커피와 티베트 빵으로 아침 식사.
● 남면 베이스캠프 뷰포인트인 옥탕(Oktang, 4780m)으로 향함. 남면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곳.
트레킹 과정
● 얄룽 빙하의 모레인 언덕 아래를 걷고, 바위와 자갈길을 지나면서 캉첸중가의 웅장한 모습을 목격.
● 찻집과 힌두 사당을 지남.
옥탕 도착
● 캉첸중가 남면의 다섯 봉우리가 눈에 띄는 장관을 연출.
● 원정대 베이스캠프는 더 높은 곳(5475m)에 위치.
● 타르초(기도 깃발)와 파상이 피운 향나무 향이 히말라야 바람에 휘날림.
하산 중 만남
● 올라오는 네팔 트레커(나빈) 만남.
● 블루쉽(blue sheep) 무리 목격.
● 미국, 캐나다 등 트레킹팀과 교류하며 반가운 인사.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들어가니 아직 자고 있던 밍마가 그제서야 일어난다.
식당은 밤이되면 주인과 가이드, 포터들의 숙소로 변한다. 이불이 엄청 두터워 춥지 않다.
아침은 항상 밀크커피와 티베트 빵(꿀과 함께)
따뜻한 햇살 아래 출발
옥탕을 향하여. 얄룽 빙하 모레인 언덕을 오른쪽에 두고 완만하게 오른다.
개울을 건너고 모레인 너덜길을 오르니 멀리 캉첸중가가 나타났다.
비닐하우스 찻집과 조금 떨어져 있는 힌두 사당도 보인다.
찻집 문은 닫혀 있다.
찻집 옆에 텐트 한 동이 있다. 만약 이곳에 머물 수 있다면 캉첸중가 최상의 일몰과 일출 감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길은 모레인 언덕으로 오른다. 멀리 타르초가 펄럭이는 뷰포인트, 옥탕이 보인다.
캉첸중가 남면 뷰포인터 옥탕(4780m)
'눈 덮인 다섯 개의 보물'이라는 뜻의 캉첸중가 다섯 봉우리
옥탕 방문 기념
파상과 함께
칸첸중가 주변 파노라마
옥탕에서 조금 더 들어가 보았다. 원정대가 가는 길이다.
캉첸중가 남서벽 원정대 등반 루트
되돌아 내려가는 길. 구름이 피어오르기 시작.
파상이 어디서 구했는지 향나무를 가져와 제단에 향불을 피워 향공양을 올린다.
소원을 비는 파상
내려가는 길에 올라오는 사람을 만났다. 오늘 아침 체람에서 출발하여 오는 중이라고 한다.
나빈(Nabin)이라는 이 네팔 친구를 저녁에 체람 롯지에서 다시 만났다. 보통 이틀 일정인데 네팔 사람답게 하루에 마쳤다.
히말라야 고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블루쉽 무리. 아무리 봐도 갈색인데 이름이 '푸른양'이라니...
오전 11시, 람체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하산 전 롯지 사우지와
올라오는 캠핑팀과 포터들
체람에서 만났던 미국 노장팀과 반갑게 인사
이어서 만난 캐나다팀. 오른쪽 친구는 젋은 날의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를 많이 닮았다.
미국팀의 짐을 싣고 오는 좁교들. 이 소들이 군사에서 우리와 같이 그 험한 너덜길 고개를 넘어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오후 2시 20분, 체람 도착. 신축중인 건물이 많다. 이곳을 찿는 트레커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저녁은 항상 달밧. 이 음식을 먹고 험하고 높은 히말라야를 오르내리자니 에너지가 부족하다. 그나마 군사 캉첸중가 게스트하우스 사우니가 준 양배추 김치가 남아있어 다행이다.
옥탕, 캉첸중가 남면 베이스캠프 뷰포인트 파노라마
[참고영상] 람체 - 옥탕 - 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