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마칼루 베이스캠프 트레킹
day 7. 양글레 카르카 / 한국행을 꿈꾸는 니마 셰르파
10. 28 (화)
자고 일어나도 머리가 띵하니 개운치 않다. 문득 침상을 살펴 스틱으로 침상 높이를 재어보니, 머리를 둔 창가 쪽 1cm 정도 낮다. 밤새 머리 쪽으로 피가 쏠려 두통이 생긴 것 같다. 거대한 산을 오르는 길에서도 결국 나를 괴롭히는 것은 이런 아주 작고 기초적인 어긋남이다.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없어 안도하며 밖으로 나갔으나 웬걸, 이제는 비 대신 쌀가루 같은 눈이 천천히 내리고 있다. 계곡 너머는 이미 은세계로 변해 있다. 일단 아침을 먹으며 이 불확실한 기상 상태를 살피기로 한다.
아침부터 영국 팀 리더가 분주하다. 대원 중 한 어르신에게 고산병이 찾아온 모양이다. 텐트 안에서 꼼짝도 못 할 만큼 증세가 심각하다는데, 안타깝게도 이곳 양글레 카르카가 이 인근에선 가장 낮은 지대라 더 내려갈 곳이 없다. 루클라에 헬기를 요청했으나 이런 날씨에 비행은 불가능하다. 자연의 섭리 앞에 인간의 힘은 나약하다.
오전 8시경부터 어제 내려온 팀들이 하산을 시작한다. 프랑스 시니어 팀은 일찌감치 하산을 시작했다. 올라가려던 팀들은 망설임 속에 발이 묶였다. 그 와중에 스페인 커플만이 판초 우의를 쓰고 묵묵히 눈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 팀은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베이스캠프에서의 이틀 체류를 하루로 줄이면 전체 일정에 문제가 없다.
롯지 앞마당에서 내게는 좀 생소한 풍경이 펼쳐진다. 동료가 고산병으로 힘들어 하는 상황임에도, 나머지 영국 할머니들이 네팔 청년들을 따라 즐겁게 율동을 하고 있다. 나중에는 리더까지 합류한다.
동료의 아픔은 아픔이고 나의 즐거움은 별개라는 그들의 철저한 개인주의가, 우리식의 정(情) 문화에 익숙한 눈에는 다소 생경하고 '철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걱정한다고 해결된다면 걱정할 일이 없다"는 히말라야의 철학을 가장 잘 실천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한국행을 꿈꾸는 니마 셰르파
오후에 적막을 깨고 아르헨티나에서 온 10여 명의 단체 팀이 올라왔다. 좁은 식당이 순식간에 만원이다. 주인아저씨가 내 방의 남는 이불과 매트리스를 가져갔다.
저녁을 기다리는 중, 아르헨티나 그룹의 보조 가이드가 인사를 건네온다. 니마(Nima) 셰르파라는 이름의 이 친구는 나빈을 통해 내가 한국인임을 알자 서툰 한국어로 반가움을 표한다. 한국 고용허가제(EPS)를 통해 취업하기 위해 공부 중이며, 지난 시험에서 불합격했다고 풀이 죽은 소리로 말한다.
매년 수만 명이 응시한다는 그 치열한 시험을 위해 그는 산을 오르는 틈틈이 단어를 외웠을 것이다. 요즘은 일을 하느라 손을 놓고 있어 점점 한글을 까먹는다고 아쉬워한다.
니마가 보여주는 휴대폰 속 사진을 보고 놀랐다. 2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니마는 에베레스트를 네 번이나 등정한 베테랑 셰르파다. 원정대 일이 없는 시즌에는 이처럼 트레킹 팀의 보조 가이드로 나서며 생계를 잇고 있다. 에베레스트의 정상을 네 번이나 오른 그가 한국의 공장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현실이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히말라야에서 발생하는 사망 사고 중 셰르파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이는 그들이 등반객보다 더 자주, 더 위험한 구간을 오가며 짐을 나르고 길을 개척하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 전체 사망자의 약 3분의 1 가량이 셰르파로 알려져 있다. 눈사태, 추락, 고산병 등이 주된 원인이며, 특히 짐을 나르는 과정에서 불규칙한 설벽이나 빙폭(Icefall) 통과 시 사고가 잦다.
아무래도 위험한 고산 등정보다는 안전한 땅이 나을 것이다. 히말라야 원정에 절대로 필요한 클라이밍 셰르파들의 인터뷰를 보면 한결같이 가족을 좀 나은 환경에서 살게 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고 한다. 인간세, 아니 중생계의 모든 부모라는 존재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니마에게 다음에는 꼭 합격하기를 바란다는 격려를 해주었다. 한국에 오면 쉬는 날 어느 산악회의 초청을 받아 에베레스트 등정에 관한 이야기와 노하우를 강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롯지의 식당은 북적이는 사람들로 소란스럽다. 난로 주변은 젖은 옷과 등산화를 말리는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다. 일 년에 단 1000여 명만이 찾는 이 오지에서도 인간의 삶은 여전히 뜨겁고 역동적이다.
새로 알게 된 사실 하나. 내일 갈 예정인 랑말레 카르카에 롯지가 두 개 있는데 아래쪽 롯지는 우리 포터 파상의 누나네가 운영하고 위쪽 롯지는 니마의 누나네가 운영한다고.
내일은 산이 길을 열어줄까. 그럴 것을 기대하며 침낭 속으로 몸을 뉘었다. 오늘은 머리를 문쪽으로 두었다.
아침에 나가보니 쌀가루 같은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영국팀 할배 한 분이 고산병으로 고생 중이라고 한다.
오전 8시, 프랑스 시니어팀 하산
나와 네팔 친구들은 관망중이다. 스페인 커플은 눈을 맞으며 올라갔다. 나는 하루 더 마물기로 했다 네팔팀은 이 근처 시바다라 동굴 사원이 목적지인데 바위길이 험악하여 이런 눈 오는 날씨에는 아예 갈 수 없다.
그 와중에 네팔 친구들의 지도로 영국 할매들이 영상을 보고 율동을 함께 한다.
별거 아닌 동작에 즐거워 하는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은 팀원이 아프면 절대 저렇게 웃으며 놀지 않을 것이다.
얼마 후 리더 여성(앞 파란모자)도 합류
좀 싱겁다.
모두들 흩어지니 다시 적막강산. 눈은 여전히 사뿐사뿐 내리고 있어 걱정이다.
모처럼 점심을 푸짐하게 먹고 에너지를 비축했다. 부드럽게 잘 익는 감자면 면발이 좋다.
오후 2시, 내려오는 트레커들도 있고
늦은 오후에는 단체팀이 올라왔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10여 명의 그룹이다.
롯지에서 매일 트레커들이 이동하다가 그렇지 못하니 병목현상이 생겼다. 식당이고 방이고 만원이다.
아르헨티나 그룹의 보조가이드인 니마 셰르파는 한국에 가려고 EPS-TOPIK 시험을 공부하는데 지난 번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EPS-TOPIK 시험은 네팔 노동자들이 한국 고용허가제(EPS)로 취업하기 위해 반드시 치르는 한국어 시험으로, 한국 고용노동부·HRD Korea가 주관하고 네팔 노동부 산하 EPS Branch가 현지 시행을 담당한다. 2025년 기준으로 생산·제조, 농축산 등 분야별로 별도 시험이 진행되며, 한 회에 수만 명(2025년 생산부분 지원자만 약 6만 7천 명)이 응시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한국은 네팔 노동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인데 그 이유는 내국인 외국인 임금이 같기 때문이다. 중동이나 일본, 동남아시아는 내국인의 반, 심하면 3분의 1 정도밖에 주지 않는다.
놀랍게도 니마는 에베레스트를 4번 등정한 클라이머 셰르파다. 2024년도에는 오스트리아 팀과 함께 등정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히말라야 클라이밍 셰르파들 중에서 명함을 못내민다. (니마의 휴대폰에서 캡쳐)
[참고영상] 마칼루 순례 - 다란- 칸드바리-양글레 카르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