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의 허무함을 생각했는데
오늘부터 전도서를 묵상하게 됩니다.
어떤 생각을 하게 되면, 말씀으로 응답을 주시고,
그 말씀을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생명의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숱한 죄악을 완전히 정결케 하시는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그 완전한 사랑을 의지하여 나아가오니
아버지 품속에 이르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본문 주해)
1~3절 : ‘전도자’는 ‘부름 받아 모인 무리들에게 말하는 자’로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시고 부와 영광도 주셨다. 그 결과 잠언 삼천을 말하고 노래 천 다섯 편이며 혼자서 백과사전을 저작할 정도의 지혜를 가진 자가 되었다.(왕상4장) 이러한 지혜와 영광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한다.
솔로몬의 지혜와 부와 영광과 권력을 가지고 사람이 해 보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해 보았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모든 것, 해 아래서 행할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다 찾아서 해 보았지만 그 모든 결론은 헛되다는 것이다.
‘해 아래’(3, 9절)는 ‘하늘 아래, 땅 위에서’ 라는 표현도 된다. 즉 타락한 아담 안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이 해와 하늘과 땅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4~7절 : ‘땅이 영원하다’(4절)는 것은, 허무하게 죽어가는 인생에 비하여 땅이 오래가는 것을 말한다.
해, 바람, 강물을 통하여 반복되는 일상을 보여준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면 역시 헛된 인생이라는 것이다.
모든 강물이 흘러서 바다로 가지만 그 바다를 채우지 못한다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만족이 없는 세상임을 알려준다.
8~11절 : “만물이 다 지쳐 있음을 사람이 말로 다 나타낼 수 없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않으며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다.”(8절, 새번역)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인생은 무엇을 해도 자족할 수 없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기에 결코 채워지지 않는 갈망으로 살아가기에 피곤한 것이다.
새로운 것이라고 보는 것, 새로운 것이라고 듣는 것들도 이전 역사 속에 다 있었던 것일 뿐,새로운 것이 없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반복되고 반복될 뿐이다. 그래서 해 아래 새 것이 없는 것이다. 그 모양은 바뀔지 모르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잊혀져가는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나 업적도 세월이 가면 잊혀지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나의 묵상)
솔로몬은 지혜에서나 부에서나 인생의 쾌락에서나 누려보지 않은 것이 없는 존재이다. 그런 그가 자기가 다 해보니 ‘해 아래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일러준다.
사람들은 이 지혜자가 이렇게 알려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한 번 해 보고 헛되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가지는 그 자체가 바로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담의 범죄 후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채워야 할 것을 다른 것으로 계속 채우는 존재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인생들은 자신의 허무함을 생명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허무한 것으로 채우려고 평생을 소진한다. 인생 자체가 허무하기에 끊임없이 우상숭배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허무로 가득한 인생이 평생 탐심에 이끌려 살다가 영원한 허무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해 아래 인생인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이 ‘해 아래’ 있기 때문이다.
‘해 아래’는 ‘하늘 아래, 이 땅 위에, 만물 안에, 아담 안에’란 의미이다.
그렇다면 헛되지 않은 것은 ‘만물 위, 하늘 위, 영원’에 속한 것뿐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하신 약속으로 인생들에게 주겠다고 하신 영생이다.
이 생명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게 주신 생명이다.
이 아들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야만 했고, 이미 죄로 물든 타락한 인생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이다.
인생들의 죄를 대속하신 주님의 죽음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아들의 생명,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이제 아들의 생명을 가진 자들은 이 땅의 헛되고 헛된 것들을 붙잡으려 애쓰지 않는다. 그토록 애착하며 가지려 했던 손을 놓고, 십자가로 열어놓으신 하나님 나라로 달려가 아버지 품속에 들어가기만을 원하는 자가 되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삶인 것을 성령께서 알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영생을 가진 자라도 육체의 생명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기에 탐심과 우상숭배의 본성이 있고, 죄의 세력은 이를 너무도 잘 알기에 잠시도 쉬지 않고 그들을 유혹하고 자극한다.
그러나 아들의 생명을 가진 자는 십자가에 연합되어 살기에 이 모든 탐심과 우상숭배의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은 자는 ‘솔로몬이 해 본 모든 것을 다 해보고서야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알겠다’고 하는 어리석은 말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것은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이요,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고, 돼지가 그 더러운 곳에 가서 다시 뒹구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그러나 영생을 누리는 자는 비록 이 땅을 살아가지만 매일 새 삶을 살아간다.
영생은, 해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만물 위 영원에서부터 부어진 은혜이기 때문이다.
(묵상 기도)
주님,
하늘에 속한 자가 이 땅을 살아갈 때
고난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주님의 삶이 그러하였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해 아래 살고 있지만
만물 위, 영원한 것을 누리며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확실한 구별됨이 가슴을 뛰게 합니다.
매일의 말씀을 통하여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보혈을 힘입어 살게 하시고
영생의 은혜를 듬뿍 누리게 하시니
오늘도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새 은혜요,
제가 올려드리는 새 노래입니다.
성령님, 제 남은 삶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