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의 미학(5)
차살림은 새로운 시대에 알맞는 예절을 창안하는 원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절이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시대적 삶과 차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혜의 산물이기 때문이지요.
시대마다 정신이 있고 문화가 생겨납니다. 앞 시대와 유사하거나 전혀 다른 정신과 문화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만드는 변화지요. 이때 차의 본질은 항상 그대로이지만 차살림 하는 사람의 존재와 생각은 시대마다 달라지게 마련이지요. 차살림 예절은 불변의 차 정신을 변화하는 흐름으로 새롭게 발견해 내는 지혜입니다.
모든 것은 모든 것과 관계가 있으며 그 관계는 상생(相生)과 평등을 핵심으로 삼습니다. 이때의 관계란 불변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서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같은 변화의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초의스님 차살림과 중국의 차예(茶藝)가 어떤 관계 속에서 설정되었으며 변화해 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중국의 제다법과 초의스님의 제다법을 비교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초의스님이 만든 차는 중국에서 발달해온 녹차, 즉 덖음차의 한 계열이었습니다.
초의스님 차를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그분의 저술인 ‘동다송’에서 화개 칠불암 승려들의 차법과 예절을 말하는 대목입니다. 칠불암 승려들은 ‘잭살’이라고 부르는 발효차 계열의 차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이를 두고 ‘천하의 좋은 차를 속된 솜씨가 버렸다’고 했는데, 이는 초의스님 차가 발효계열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덖음차(녹차) 계열의 차는 중국에서 발달한 것인데, 중국 차법을 받아들인 초의스님은 여기에다 나름의 방법을 더했습니다. 초의차법을 계승한 응송노사의 제다법에 그 흔적이 남아있지요. 뜨거운 가마솥에다 찻잎을 넣은 뒤 그 위에다 물을 뿌려서 수증기가 품은 열기와 가마솥의 열기를 이용하여 만들지요.
열이 가해진 가마솥에다 찻잎을 덖어내는 덖음차의 전형적 기법은 중국에서 생겨났습니다. 여기에다 수증기를 더한 초의스님 제다법은 매우 이채롭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음식 문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불기운을 간접으로 이용하는 조리법은 ‘데치기’와 ‘덖기’가 대표적입니다. 끓는 물에 살짝 삶아내는 데치기와 물을 붓지 않고 익혀내는 덖기지요.
나물 종류는 대개 데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초의스님은 이 데치기를 응용한 것입니다. 그런 다음 차를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따뜻한 온돌방이나 온기가 있는 곳을 이용한 것은 한국의 전통인 ‘담그는’ 문화를 또 응용합니다. 김치 된장 간장 등을 발효시키는 것을 ‘담근다’고 하지요. 이 담그는 과정을 다시 추가함으로써 초의스님의 차법은 중국 차법과 차별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조선시대 혹은 조선사회라는 시간과 장소의 변화에 알맞은 차법을 창안해 낸 것입니다.
이처럼 차살림은 창조적 변화를 근간으로 삼고 있어서 누구의 어떤 전횡이나 독단적 방법을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모든 것과 관계 있듯이 모든 차인의 차법은 독창적이고 개성적이어야 하며, 이 독창과 개성은 곧 모든 독창과 개성으로 관계지어지면서 진화하는 것을 뜻합니다.
다만 차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은 차인의 권능이나 역할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