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의 미학 (3)
음식과 관련된 변화는 한 민족 전체에 걸쳐 진행되는 경우와 개인의 의지에 의한 그 개인에 국한되는 경우로 나눠집니다.
이같은 음식이 지닌 독을 풀거나 음식으로하여 몸 안에 생긴 병을 치유시키는 약으로 쓰여지게 된 것이 차의 시작이었습니다.
식약동원(食藥同源) 효능을 지닌 식물은 차 뿐만이 아닙니다. 명(明)나라 이시진(李時珍)의 저술인 ‘본초강목(本草綱目)’ 초목편은 식약동원인 풀과 나무가 수백 종류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굳이 본초강목을 펼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많은 풀잎들이 나물로 이용되어 왔는데, 어느 한 종류도 식약동원 효능을 안지닌 것은 없습니다.
수많은 풀잎과 나뭇잎 중에서 차는 인간의 정신생활에 특별한 효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차가 약의 자리에서 종교 수행을 돕는 차원으로 응용되게 된 것입니다.
정신을 맑게 해주고, 기억력을 높여주며 혈액 생성에도 크게 기여함으로써 인체에 기(氣)가 머무르는 축기(畜氣) 상태를 만들어 준다는 우수한 차의 효능들이 참선 수행하는 구도자들로 하여금 즐겨 마시도록 한 것이지요.
동양문명권에서 시작되어 발달해온 차는 오랜 기간 채식 문화의 범주에 포함되어 다른 식물 종류와 함께 식약동원성을 지닌 식물로 있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하늘신(天神)과 땅의 신(地神), 조상신에 대한 제사 의식을 포함한 원시종교와 그 이후의 고등 종교의 발달과 함께 차완의 독자적인 역할을 갖게 되었지요.
이때의 차는 채식 문화의 모든 특성을 그대로 지닌 채 참선 수행자와 소수의 지배자들 문화로 자리 잡았지요.
차나무 잎을 따는 순간부터 찻잎을 가공하여 차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 걸쳐 찻잎과 자연과의 조화 사이에 존재하는 내밀한 생명의 비밀이 온전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지극한 정성이 필요합니다. 지극한 정성이 곧 예절의 근원을 이룹니다.
일단 차가 만들어진 다음에는 채식 문화가 지닌 일반적인 예절, 즉 차를 마시는 과정에서 반드시 따라야 할 예절이 있습니다.
차는 일반 채식 문화와 달리 정신세계와의 관련성으로 하여 그 예절의 엄격성 정도가 좀더 많이 요구됩니다.
이 단계에서 차의 미학 체계가 심오한 경지를 구축하게 됩니다. 차가 지닌 매우 독특한 효능을 전해받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입니다.
은은한 차향 속에서 명상에 잠겨 하늘에 충만한 기운을 보고, 깊은 산 계곡을 흘러내리면서 억겁의 신비를 씻어 꽃과 나무로 몸을 나누는 깨달음을 만나기도 하고, 한잔의 차로 모든 분별에서 벗어나 하나로 돌아가기도 하지요.
한잔의 차로 열린 마음을 가지면 우주를 담아도 여유가 있고, 반대로 굳게 닫아버리면 지구를 흙먼지로 만드는 큰 지진으로도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는 금강반야의 경지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차살림의 예절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위적인 재량이나 지적인 유희로 지어낸 것은 차살림 예절이 될 수 없습니다.
차가 지닌 자연과 인간의 내면 세계를 한몸이 되게 도와주는 지혜여야만 합니다. 그런 예절은 지키고 구속될수록 자유를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