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의 미학 (6)
차살림 예절은 자아를 향하여 일컬을 경우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거론되는 경우로 나뉘어집니다. 자아를 향할 때의 주관적이며 심오한 차원은 종교적 성향을 띠기도 하지요.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자애와 검약, 겸손을 중요한 철학으로 삼습니다. 이 세가지 덕목을 실현하는 행위는 사람을 편안하게 배려해주는 것입니다.
배려함은 부귀비천의 차별없이 누구든 한 사람의 온전한 인격을 지닌 인간으로 대우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차를 베푸는 것이지요.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차살림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딱 부러지게 선을 그어서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가르지 않고 모두를 품어 안는 마음을 내는 것이지요. 미운 사람에게도 한잔, 고운 사람에게도 한잔의 차를 똑같이 대접하면서 밉고 고운 분별심을 차속에다 녹여버리는 지극한 수행으로서의 예절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밉다는 마음을 낸 것도 나 자신이고, 곱다는 생각을 한 것도 나 자신일 뿐, 나와 마주 앉은 저쪽 사람은 미움이나 고움 이전에 지극히 평등한 사람임을 깨닫는 것이지요.
밉고 고운 감정은 내 몫입니다. 남에게 나눠주어서도 안되고 나눠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걸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차살림의 자애 정신입니다. 평등심을 내는 근본이지요.
남을 배려하는 두 번째 마음은 사람을 알뜰하게 섬기는 것입니다. 이해관계라는 선입견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세속적 가치관의 핵심처럼 자리잡은 권력과 금력으로 사람을 나누고, 물질적 소유의 외형적 크기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존재할 수 있게된 근본을 아는 것이지요.
땅, 태양, 맑은 공기, 맑은 물이 있어서 내가 살 수 있지요. 그리고 온갖 만물이 있어서 살 수 있고, 일하는 만민이 있기 때문에 내가 살 수 있습니다. 그 만물과 만민의 존재가 이 한몸을 살아가도록 도와주고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깨닫는다면 그때부터 오직 모든 사람과 만물을 알뜰하게 섬겨야 합니다.
차살림 예절은 그것을 지니고 있습니다. 차농사, 찻잎 따기, 차 만들기, 차 달이기에서 찻잎 하나, 물 한방울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입니다. 지극한 정성으로 차를 살피고 알뜰하게 섬기지 않으면 좋은 차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찻잎 하나에도 온 우주 만물의 알뜰한 마음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남을 배려하는 세 번째 마음은 겸손입니다. 세상에서 남보다 앞서려고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차살림에서 남보다 앞서려고 하면 차의 예절은 거추장스런 장애물밖에 안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달인 차는 독입니다.
그런 차를 자주 마시면 정신이 흐려집니다. 그것은 남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겸손은 남보다 앞서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어서 항상 남을 편안하게 해주고, 남을 이익되게 합니다.
편안해지고 만족해진 상대는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내가 모자라는 것을 채워 줍니다. 그때 두 사람 사이에 성립하는 관계가 예절이며, 그 예절은 생명의 교감이며 기쁨입니다. 만물과 만민에게 동시에 기쁨이 됩니다. 차살림에서 주인은 차를 마시지 않고 오직 손님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차를 대접하는 이유가 곧 겸손을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날 차인들로부터 칭송받는 저 유명한 차완들도 주인의 정성이 담긴 차 한잔 대접받은 손님들의 진정한 감사의 마음이 이룩한 겸손의 상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