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등과(少年登科)
소년등과(少年登科) 부득호사(不得好死)라는 말이 있다.
소년시절에 과거에 합격하면 좋게 죽지 못한다는 뜻이다.
스무 살이 채 안 된 나이에 출세해 버리면 뒤끝이 별로 좋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옛 사람들은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벼슬을 하거나 재물을 많이 얻거나 성공하는 일을
경계했던 것 같다.
인생사라는 게 전반전이 좋으면 후반전이 좋지 않기 마련이다.
끝까지 계속 좋은 사람은 아주 드물다. 더구나 젊어서 출세하면 십중팔구 거만해진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버릇이 생긴다.
일찍 출세했으니 모두가 부러워했을 것이고 최고의 경지로 높이 받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옛사람들은 인간의 세 가지 불행 중 첫 번째로 소년등과(少年登科)를 꼽았다.
소년등과 일불행(少年登科 一不幸)이라 하여 소년등과하면 불행이 크다거나
소년등과 부득호사(少年登科 不得好死)하 하여 소년등과한 사람이 좋게 죽은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있고, 소년등과 패가망신(少年登科 敗家亡身)이라는 옛말도 있다.
맹자는 진예자 기퇴속(進銳者 其退速) 즉 나아가는 것이 빠른 자는
그 물러남도 빠르다고 빨리감을 경계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속담의 의미도 깊게 다가온다.
이상하지 않은가?
일찍 출세하는 것이 인간의 3대 불행 중 하나라니 말이다.
좋게 죽지 못할 것이라는 단언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왜 그럴까? 왜 일찍 출세하면 불행해지는 것일까?
너무 일찍 출세하면 나태해지고 오만해지기 쉽다.
나태해지면 더 이상 발정이 없고 오만하면 적이 많아진다.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린 나이에 일찍 출세하면 나태해지고 오만해질 수 있다는
말이며 나태해지면 자신의 발전이 더 이상 없어지는 것이고 오만해지면 주위의 질시와
적이 많아져서 자신의 삶이 불행해진다.
특히 경계해야할 일은 너무 어린 성취로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거나 배우기를
게을리 하여 진취와 발전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성공하기 어렵고 종국에는 이른 출세가 불행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선인(先人)들은 수많은 사례를 경험한 끝에 이런 격언을 만들었을 것이다.
소년등과가 나쁘다기보다 너무 이른 성취로 학업을 폐하여 더 이상 진취가 없게 됨을
경계한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크고 작은 굴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생을 마감하면서 내 가장 큰 성취는 이것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
내가 20대 후반에는 남보다 훨씬 잘나갔다고 자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많은 젊은이들이 소년등과를 부러워하고 잠정적인 실패에 좌절하며
잠깐의 뒤처짐에 열등감을 느낀다. 그러지 말라. 그대의 전성기는 아직 멀리 있다.
1790년(정조 14년) 황사영은 17세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는데
이에 정조는 어린 사영을 불러 손을 잡으면서 네 나이 20세가 되거든 짐을 찾아오너라.
짐이 너를 꼭 등용하고 싶다고 하여 황사영의 출세를 임금이 보장하였다 한다.
40대의 정약현은 자신의 딸과 결혼할 어린 사윗감 황사영을 불러서 첫 만남을 가졌는데
사윗감을 본 첫 마디는 소년등고(少年登高)였다.
이 말을 들은 황사영은 어린 나이에 높은 지위에 오르는 일과 재주가 좋아서 문장을
잘 짓는 일이 인간의 큰 불행이라는 소학의 말을 떠 올리면서 겸손함을 배우려고 했다.
역시 조선 초기의 남이 장군도 16세(1457년 세조 3년)에 무과에 급제했고 26세에
반란진압으로 1등 공신에 책봉되었으며 (1467 세조 13년) 이듬해 병조판서가 되었지만
몇 달 뒤 모함에 휘말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멀리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찍 성공하게 되면 자만하게 되고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알기 전에 자만부터 배우게 된다.
그래서 만용을 부리다 실패하게 된다. 인생은 좀 더 멀리 보고 갈 일이다.
진정한 승자는 관 뚜껑을 닫기 직전에 결정된다. 조금 빠르다고 자만하지 말고 조금 늦다고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본인이 생각했던 것 보다 내가 다소 뒤쳐졌더라도 실만하거나 자책하지 말고
중요한 것은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고난과 역경을 딛고 마지막에 자기만의
어떤 꿈을 이룰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둘째는 가문의 도움으로 좋은 벼슬에 오름이다. 애쓰지 않고 남이 못하는 것을
누리다보니 그 위치가 얼마나 귀하고 어려운 자리인지 몰라서 함부로 굴다가 제풀에 무너진다.
셋째는 재주가 높고 문장마저 능한 것이다. 거칠 것이 없고 꿀릴 데가 없다.
실패를 모르고 득의양양하다가 한 순간에 나락에 굴러 떨어진다.
이 세 가지는 누구나 선망하는 것인데 선인들은 오히려 이를 경계했다.
차도 넘치지 않고 높아도 위태롭지 않으려면 자신을 낮추고 숙이는 겸손이 필요하다.
김일손(金馹孫)은 잘나가던 이조좌랑을 사직하고 사가독서(賜暇讀書)를 청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는 옛사람이 경계한 소년등과 일불행이 바로 자신을 두고
한 말이라며 너무 젊은 나에게 요직을 두루 거쳐 큰 은총을 입었으니 이쯤에서
그치고 독서로 자신을 충전하겠다며 사직을 간청했다.
민영환(閔泳煥)이 규장각 대교에 임명되자 역량이 안 되니 취소해 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직임이 화려할수록 졸렬함이 더 드러나고 돌아보심이 두터울수록 송구함만 늘어갑니다.
주제넘게 차지하고서도 당연히 온 것으로 여기고 감시 받드는 것을 본래 있던 것처럼
할 수 없어 진심으로 우러러 성상께 아룁니다.
바라옵건데 굽어 살펴 속히 신에게 제수하신 직책을 거두어 주소서라고 하였다.
가득함을 경계하는 선인들의 마음이 이러했다.
젊은 날의 빠른 성취는 부러워할 일이 못 된다. 살얼음을 밟듯 전전긍긍해야 할 일이다.
한때의 환호가 차디찬 고소로 돌아오는 시간은 뜻밖에 짧다.
돌아보고 낮추고 숙여서 내실을 다져야한다.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둘인 까닭은 듣기를 말하기보다 두 배로 하라는 뜻이다.
< 정민의 세설신어 중에서 >
https://blog.daum.net/hr3841/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