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이 오고
이렇게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새잎 같은
너희들이 있기 때문이지
새싹 같은
너희들이 있기 때문이지
오인태, ‘이렇게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中
새봄에는
눈 속에서, 낙엽 속에서, 미처 떠나지 못한 겨울의 끝자락에서 복수초가 꽃을 피웠다. 햇살이 퍼짐에 따라 조금씩 더 활짝 자신을 열어 보이며 노랗게 빛나는 그 작은 꽃들이 묵주기도를 바치는 순례자들의 마음과 눈길을 붙잡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봄소식을 찾아다니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발길까지 성지로 모으고 있다. 어떻게들 알았는지 벌써 몇 주 전부터 사람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기도 하고 한참씩 들여다보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 가는 것 같다. 처음 묵주기도 길에 복수초를 심을 때만 해도 이런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가난하고 드러나지 않는 삶을 사셨던 성모님이나 묵묵히 주님을 따르다가 이름 없이 순교하신 남양 순교자들의 삶이 들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복수초, 앵초, 깽깽이풀, 매미꽃, 매발톱, 동자꽃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 야생화들을 구해 성지에 심었다. 또 민들레나 제비꽃, 냉이 같은 작은 풀꽃이 나오면 뽑지 않고 그대로 자라게 내버려 두었다.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볼수록 정이 가고 어김이 없는 녀석들이다. 20년 전에 한 번 심어놓았을 뿐인데 때가 되면 알아서 피고 지고 열매를 맺고 잊혀 졌다가 또다시...
복수초가 피었다. 봄이라 하기엔 아직 좀 이르다. 복수초 몇 송이가 피었다고 봄이 오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단숨에 봄빛으로 물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복수초 몇 송이가 피어남으로 해서 성지의 묵주기도 길 한 모퉁이가 밝아졌고, 꽃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가벼워진 발걸음과 두런두런 나누는 즐거운 이야기 소리가 봄 햇살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그런 복수초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올해도 꽃을 심어야겠다고, 새로운 씨앗을 뿌려야겠다고...
새봄에는 아이들의 마음 밭에 어머니를 심어주고 싶습니다.
첫 토요일에 아이들과 함께 성지에 오세요.
아이들을 축복해 주고 갈색 스카풀라를 입혀줍니다.
※ 갈색 스카풀라 :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와 ‘솔기가 없이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 마리아의 아들임을 알아보는 표였고, 구세주 그리스도가 입었던 옷이었음을 알아보는 표였던 것 같이 갈색 스카풀라는 자기 자신이 성모님께 봉헌된 자녀라는 외적인 표시로 받아 입는 옷으로서 이는 우리 주님께서 보여주신 겸손의 표양도 따르게 되는 행위입니다.
- 남양성모성지 월간 소식지 324호 (2018년 4월호)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