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내용을 삭제하지 마세요!!
(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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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해두창집요》는 천연두에 관한 고려의학고전입니다.
우리 나라의 이름난 의학자 허준이 1601년(선조 34년)에 상권과 하권 2책으로 편찬하고 1608년에 내의원에서 목판본으로 출판하였습니다.
당시까지 천연두를 전문으로 취급한 책은 1460년에 임원준(1424-1500)이 편찬한 《창진집》과 1518년에 《창진집》을 우리 말로 번역한 《언해창진방》이였는데 임진조국전쟁시기에 다 류실되여 천연두치료에서 참고할만한 책이 없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당시 천연두의 원인을 잘 알지 못한 탓으로 치료에서 미신적행위들이 적지않게 나타나고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봉건정부에서는 천연두에 관한 책을 편찬할데 대한 위임을 허준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허준은 오랜 기간의 치료경험과 천연두치료에서 이룩한 국내외의 자료들을 종합하여 1년사이에 《두창집요》를 편찬하였고 이것을 우리 말로 번역하여 《언해두창집요》를 출판하였습니다.
이 책의 상권에는 천연두의 원인, 예방법, 증상이 서술되였습니다.
증상부문에서는 3일간 열이 나는것, 구슬이 내돋는것, 구슬이 부어오르는것, 고름이 차는것, 고름이 흡수되면서 딱지가 앉는것 등 천연두의 특징적인 증상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목이 쉬는것, 목구멍아픔, 허리아픔, 경련, 게우기, 설사 등 부차적인 증상들을 밝혀주었습니다.
하권에는 천연두때에 흔히 오는 합병증에 대한 치료법과 눈을 보호하는 법, 흠집을 없애는 법 등을 주었습니다. 하권뒤부분에는 부록으로 임신부의 천연두와 반진에 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언해두창집요》는 편찬후에 천연두치료참고서로 널리 리용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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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학자 – 허 준
허준(1546-1615)은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이름난 고려의학자였습니다.
그는 어린시절을 경상남도 산청에서 보냈는데 20대에 당시 명의로 알려진 그곳 류이태에게서 고려의학을 배웠고 1574년(선조 7년)에 의과에 합격하였으며 30살에 내의원의 의관이 되였습니다. 그후 국왕(선조)의 어의로 되여 33년간이나 궁중에서 치료사업을 하였습니다. 그는 많은 의학서적들을 탐독한것으로 하여 박식하였으며 림상경험이 풍부한 명의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조선봉건왕조초시기 의과시험교재로 쓰던 《찬도맥결》을 교정하면서 이 책의 부족점을 검토하고 수정보충하여 1581년에 《찬도방론맥결집성》 1-4권을 편찬출판하였습니다. 1591년에는 여러 지방의 천연두환자치료에 온갖 정열을 쏟아 부어 새로운 처방을 고안하고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였으며 1592년 4월 임진조국전쟁시기 어의로서 국왕 선조를 따라 의주에 갔다가 1593년 11월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전후 전염병과 여러 질병에 대한 치료사업을 벌리는 한편 유의 정작, 태의 양례수, 김응탁, 리명원, 정례남 등과 함께 1596년 내의원에 편집국을 설치하고 《동의보감》편찬사업을 주관하였으며 1597년 왜병의 재침으로 편집국성원들이 흩어져 편찬사업이 중단되였으나 허준만은 중단하지 않았으며 임진조국전쟁후에도 혼자서 계속 추진시켜나갔습니다. 1608년 선조가 사망하자 그의 뛰여난 재능과 명성을 시기질투하던 봉건관료배들의 모해책동에 의하여 이듬해까지 귀양살이를 하였는데 그곳에서도 여전히 《동의보감》편찬사업을 다그쳤습니다. 1610년(광해군 2년) 9월 22일 마침내 편찬을 완성하고 1613년 11월 목판본으로 《동의보감》을 출판하였습니다. 그가 쓴 《동의보감》은 17세기 초까지의 우리 나라 의학발전성과들을 집대성한 고려의학백과전서적인 성격으로 하여 유명한 3대고려의학고전중의 하나로 되였습니다. 그가 남긴 저서들은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오늘도 질병치료사업과 고려의학연구사업에 귀중한 자료로 리용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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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나라 주인이잔아!
@9h9T2zLRF5ySgcX
창조적 성형의술...한국 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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午後8:36 · 2022年5月23日·Twitter for Andro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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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oung
@Astragalus_0
펌)고속도로를 달리는 애국동지 존경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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午後10:35 · 2022年5月23日·Twitter for Andro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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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지고
@ddanziabba
[법무부, 한동훈 직속 '공직자 인사검증' 조직 신설]
↑ 이제 소통령을 넘어 중통령쯤 된건가. 전두환이 별달던 속도만큼이나 빠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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午前10:43 · 2022年5月24日·Twitter Web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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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4808
첫댓글 허준의 동의보감은 인류사적으로 자랑스런
우리의 보물입니다.
그런데 그 천연두 예방법과 치료법이 무엇
인지도 좀 서술해 주실 수 있습니까.
우리 어렸을 때 보았던 그 곰보들은 천연두
때문이었을까요? 요즘같이 외모지상주의
시대에 그 환자가 없어 정말 다행입니다.
낼 회사출근해서 자세히 작성해놓게습니다!( ̄- ̄)ゞ
곰보는 말씀대로 천연두의 흉터입니다.
@김덕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이씨 봉건 조선 왕조」를 「고려」라고 부르는것 같은데 그 리유를 알 수 있을까요 ???
@지구조선우주작전군 북조선은 한방치료를 동의학(東醫學)이라 하여 1953년 휴전 이후부터 정책적으로 적극 장려하였다. 고려의학은 1993년 ‘민족 주체성을 살린다.’는 취지 아래 동의학을 새롭게 고친 이름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고려의학(高麗醫學))]
@김덕신 감사합니다.
위 기사는 우리민족끼리 기사인가요 ???
보통 우리민족끼리 기사라면 글의 가장 끝에 본사기자 누구누구 혹은 주체 몇년 평양 이라는 문구가 보이는데 , 위에 기사에는 그런게 안 보여서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05.25 01:28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05.25 08:59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05.25 09:02
1972년에 내가 맞은 불주사는 천연두 예방주사가 맞습니다.
정책적으로 그 당시 박정희정권은 흔히 말하는 백신을 미국의 배려? 인지 몰라도 알콜 램프를켜놓고 주사바늘을 소독하면서 계속 같은 바늘로 주사를 놓았습니다.
전교생이 맞았지요..
결핵이라...
그당시 결핵예방주사는 꿈도 꾸지 못했지요...
그리고 내가 국민학교 고학력이 되자 불주사는 각 학교마다 주입하는것이 없어 졌습니다.
아마 딱! 3~4년 정도 그당시 국민학교에서 단체로 예방주사를 맞지 않았나 봅니다.
그 당시 불주사는 국민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맞았으니...
그리고 그다음에 국민학교에서 전교생이 맞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
여기서 더 욱긴건 내동생은 나보도 세살이 어립니다.
그런데 내동생은 불주사를 맞지 않았지요...
더 황당한것은 지금도 이나라 적십자사는 <씰>이라는 우표를 팔고 있습니다.
결핵환자들을 돕기 위해...
어이가 없습니다.
이나라에서 나오는 모든 보도는 최소한 90%이상 거짓이라고 보면 정확할겁니다.
...
오즉하면 제가 소설이라고 하면서 글을 쓸까요...
...
@하이고 여기서 우리는 상식적이면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색을 해야합니다.
일제 강점기전에 조선후기에 최소한도 이나라에늘 소가 300만리 이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정기동안 그수가 급격히 줄어 둡니다.
그리고 소가 줄어 든만큼 마마<홍역? 천연두?>도 줄어 들겠지요.
오죽하면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합니까?
소한마리 팔면 자식을 대학에 보낼수 있었으니...
그런데 박정희정권때 즉 1972년도에는 천연두에 대한 기억이 이나라 민중들 뇌리에 너무도 뿌리깊게 남아 있었습니다.
곰보...
팔다 남은 백신을 미국은 어떻게 처분했을까요?
그리고 천연두백신을 어거지로 사고 난 다음
이나라 지도자라고 하는 놈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천연두라...
외신은 대놓고 말합니다.
50대 이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