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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44152.html#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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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greennote/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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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과 당대 의사들의 두창 치료 그리고 『언해두창집요』 (총 34페이지중 발췌)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 전기의 세종, 세조, 연산군, 중종 뿐 아니라 후기의 선조, 숙종, 영조의 아들과 딸, 심 지어 숙종 본인과 숙종의 부인 역시도 두창에 걸렸다. 그 중 선조의 삼남 의안 군과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두 딸 그리고 광해군의 아들은 두창에 걸려 사망 했지만, 영창군과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아들 한 명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반면 숙종 이후에는 두창에 걸린 대부분의 왕족들이 살아남았다. 숙종 본인 과 두 번째 중궁, 숙종의 세자, 아들 연잉군과 연령군 뿐 아니라 영조의 세자, 세손, 영조의 딸 화평옹주와 화완옹주 등은 모두 살아남았다.
두창 전문 의서 『언해두창집요』와 종합 의서 『동의보감』 중에 담긴 두창 관련 기록을 토대로 허준의 두창 의학에 드러난 특징을 분석 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허준과 당대 의사들이 수행했던 두창 치료의 실제 기록을 살펴본 뒤 그들의 두창 진료가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 관련 의 서를 토대로 분석했다. 이어 허준의 두창 의학에서 드러나는 주된 특징을 증 상에 대한 변별(辨)과 구분(分) 또는 변증(辨證) 중심으로 살펴보고,7) 그 성과 가 『창진집』과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그리고 후대 의가들에게 어떻게 계승되 어 갔는지 확인했다. 두창의 종식이 선언된 지금, 허준의 두창 의학이 지닌 의 학적 효용성은 거의 없다. 다만 두창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존재를 인식하 고 이를 예방하는 백신이 등장하기 이전, 한반도에서 이뤄졌던 두창에 대한 진단과 치료를 반추해봄으로써 코로나 펜데믹 하에 고군분투하는 현대 의학 의 모습을 되짚어 보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허준의 『언해두창집요』 첫머리는 두창 발생 이유로부터 시작한다.
대상 질 병의 특성을 알아야 치료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지목했던 두창 의 발생 이유는 태독(胎毒)과 운기(運氣)였다. 허준은 명문(命門)에 들어 있 던 태독이, 소음(少陰)과 소양(少陽)이 사천(司天)하여 군화(君火)와 상화(相 火)가 그 해 대부분을 주도하는 바람에, 열독(熱毒)이 유행하는 해를 만나면 두창이 발생했다고 생각했다.15) 소음과 소양의 사천, 군화와 상화의 치성함은 하늘과 땅을 채우고 있는 오운육기(五運六氣) 사이에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편향이었으므로16) 뾰족한 대처 방안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가장 적극적인 대응책은 두창을 일으키는 소인인 태독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쓰디쓴 황련으 로 태아의 입을 씻어내거나 수세미 덩굴 달인 물로 태아를 목욕시키는 것, 태 아에게 탯줄을 태운 재 등을 복용시켰던 것은 모두 태독을 제거하기 위함이었 다. 태독이 제거되면 두창이 발생하지 않거나 발생하더라도 목숨을 위협하는 발진은 희소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17) 두창이 시작되면 발열 초기, 붉은 점이 올라오기 전에 장부 중의 태독(胎 毒)과 외부에서 들어온 사기(邪氣)가 흩어지도록 발한을 시켜야 했다.18) 문제 는 일반적인 감기 뿐 아니라 상한(傷寒), 온역(瘟疫), 두창, 반진의 발열 양상 이 모두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광해군 사례에서도 그랬듯이 가장 먼저 나타 나는 증상은 발열이었다. 열이 올랐다가 식었다가 하는 증상을 두고 단순 감 기로 치부할 것인지, 상한, 두창, 반진 중 어떤 것으로 간주하고 대응할 것인 지를 결정해야 했다.19) 환자가 하품을 하는지, 재채기를 하는지, 귓불이 차가 운지, 눈이 까칠한지, 자다가 갑자기 놀라는지 등 일상의 증상을 면밀히 살펴 보거나, 귀·코·엉덩이·발끝에 붉은 핏줄이 보이는지, 심장과 가슴 사이에 좁 쌀과 같은 작은 점이 돋아났는지 등 신체상의 변화를 파악하거나, 데우지 않 은 맑은 술을 아이 몸에 발라 벼룩에 물린 듯한 자국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 는 것은 모두 두창을 빨리 감별해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20) 두창의 변화는 3일 간격으로 기술됐다. 열이 나는 발열(發熱), 발진이 체 표로 돋아나는 출두(出痘), 발진이 팽창되는 기창(起脹), 고름이 차는 관농(貫膿), 딱지가 잡히는 수엽(收靨)의 순서대로 발진의 변화상은 구분되었으 며, 목소리의 변화와 통증, 허리와 배의 통증, 경련, 구토, 설사 등은 꼼꼼하 게 따져졌다. 발진 이후에도 딱지가 우그러지는 도엽(倒靨), 두창이 검게 변 하며 함몰되는 흑함(黑陷) 등이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고 살펴 졌다.
치료는 시기에 따라 두창 예방, 발진 시기별 대증 치료, 수반 증상 치료, 후 유증 치료로 구분됐다. 주된 치료 원칙으로 첫 번째 발진이 희소하게 올라오 도록 유도할 것, 두 번째 발진이 잘 돋아날 수 있도록 비장 기운을 따뜻하게 유지할 것 등이 제시됐다.21) 발진이 희소하게 올라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6일 이전에 서늘한 성질의 약물을 활용해 열을 내려주고 태독을 몸 바깥으로 몰 아내는 해독의 방법을 취해야 했다.22) 앞서 광해군을 치료했던 의관들이 발병 초반에 삼소음을 적극 투여했던 것 역시 혹시나 모를 두창의 독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23) 발진이 시작된 뒤에는 두창이 충분히 돋아나 부풀어 오르고 고 름이 충분히 채워질 수 있도록 관리되어야 했다. 이를 위해 성질이 따뜻하고 평탄한 약물로 비장, 위장의 기운을 북돋워 줄 것이 요구됐다. 인삼과 황기로 이뤄진 보원탕(保元湯)은 두창의 처음부터 끝까지 활용되어야 할 기초 방제 였다.24) 광해군에게 투여됐던 진미음(陳米飮), 원미진미음(元米陳米飮) 역시 찬물은 절대 먹이지 않으면서 비장과 위장의 기운을 북돋으라는 치료 원칙에 입각해 처방된 치료 약물이었다.25) 허준은 저미고와 용뇌고자를 강조했다. 이 둘은 용뇌와 돼지 심장 또는 꼬 리의 피를 활용해 만든 방제로 모두 두창이 검게 변하며 함몰되는 흑함 증상 에 활용하는 것들이었다. 특히 저미고는 강력한 방향성으로 소통을 시키는 용뇌(龍腦)와 쉬지 않고 움직이는 돼지꼬리의 성질을 취해 두창의 독을 바깥 으로 몰아내고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조성됐다.26) 독열(毒熱)이 한쪽으로 몰 려 위험한 증상이 잇따라 나타나고 의식까지 잃었다는 『언해두창집요』 「발문」 중의 기록과 저미고와 용뇌고자의 효능으로 보아 왕자가 두창이 새까맣게 함 몰되는 흑함의 상황에 내몰렸고 그 때 위의 방제들을 투여해 회복시켰던 것 으로 보인다.
허준과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이수광(李睟光, 1563-1629) 역시 저미고는 두창의 함몰 상황을 치료하는 기사회생 시킬 수 있는 성약으로 허 준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민간에 전래되어 많은 사람들을 살려냈 다는 기록을 남긴 바 있다.27
요컨대 허준과 그 동료들은 반구진(斑丘疹, maculopapular rash)이 발생 하고 유체가 채워진 수포를 생성하는 두창을 체내에 존재하던 태독(胎毒)이 외부에서 들어온 열독에 의해 발작하여 체외로 배출되는 과정이라고 간주했 다. 체표에 드러나는 증상을 근거로 상한, 반진, 두창의 감별을 시도하고, 두 창 증상의 변화를 근거로 발열, 출두, 기창, 관농, 수엽 등의 시기 경과를 구분 했으며, 목소리 변화, 인후통, 두통, 기침, 흑함 등의 수반 증상도 빠뜨리지 않 고 살폈다. 이어 대증 치료(symptomatic treatment) 방식에 입각해 개별 증 상에 대응하는 약물을 투여하며 두창에 대응했다. 일부에서는 병을 일으킨 두창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섣불리 치료하지 말고 달래서 내보내야 한다는 무속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의관들의 두창에 대한 접근은 나 름대로 의학적인 논리를 지니고 있었다.
조선 의관 허준의 두창 의학과 '변증(辨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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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id.chosun.com/site/data/html_dir/2021/12/26/2021122601006.html
선조들이 기록한 역병 이야기
‘어젯밤에 두창을 앓는 아이의 증세가 매우 심해져 가래 끓는 소리가 밖까지 들렸으니 목숨을 구하지 못할까 봐 매우 걱정스럽다.’ 조선 후기 무관(武官) 노상추(1746~1829)는 17세부터 84세로 사망하기까지 줄곧 일기를 썼다. 1778년에는 전염병으로 아이를 잃은 비참함과 슬픔을 일기에 고스란히 남겼다. 두창이 창궐해 여동생의 혼사(婚事)를 연기했다는 기록도 있다.
‘동의보감’은 조선 중기 의관(醫官)인 허준이 1610년에 펴낸 의학 서적이다.
책에는 두창을 예방하는 방법과 치료법 등이 실렸다.
허준은 ‘매화꽃을 먹으면 두창에 걸리지 않는다’며 음력 섣달(한 해의 마지막 달) 매화꽃을 따서 그늘에 말리고 꿀로 반죽해 만든 알약을 특효약으로 소개했다.
[服梅花方]服梅花可免出痘十二月收梅花不拘多少陰乾爲末煉蜜丸如?實大每一丸好酒化下念太乙救苦天尊一百遍妙不可言 <種杏>
▶매화(꽃)을 복용하면 두창이 나오는 것을 면할수있다.
음력 12월에 매화(꽃)을 채취하는데 많고 적음을 구애받지 않고 응달에 말려서 가루를 낸다. 꿀로 감실만한 크기의 환(알약)을 만들어 매번 1환씩 좋은 술로 녹여 먹으면서 ,
'태을구고천존(太乙救苦天尊)을 일백번 외우면 묘하기가 말로 다 할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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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v.daum.net/v/20220525012101150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잘 읽다가 중간에
계단에 서있는 두인간들 사진때문에
눈을 베려버렸습니다.
^^ 장안에 화제의 사진입니다.
저 둘은 머리가 1979년에 멈춰있는가봐염!
음력 12월에 매화(꽃)을 채취하는데 많고 적음을 구애받지 않고 응달에 말려서 가루를 낸다. 꿀로 감실만한 크기의 환(알약)을 만들어 매번 1환씩 좋은 술로 녹여 먹으면서 ,
'태을구고천존(太乙救苦天尊)을 일백번 외우면 묘하기가 말로 다 할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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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는 통할 수 없을 것 같네요.
현대에 천연두 예방접종을 실시하는 유일한 나라가 북조선인데, 다른 나라들은 원숭이두창이든 사람두창이든 어떻게 대비할것인지 궁금합니다.
허준이 한국뿐아니라, 북에서도 고려의학이라는 명칭으로 연구되는 이유는 과학적 이유가 있기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허준 선생이 선도 수행을 했을거라고 예측합니다.
나무아미타불이나 옴마니받메훔이 장관급이라면 태을구고천존은 대통령급입니다.
허준 스스로 저 수행을 해서 경험을 했든, 효과를 받았든 어떤식으로든 입증이 됬기에 동의보감에 기록을 해뒀을거라고 봅니다.
@김덕신 동의보감에
<병마를 퇴치하는 주문>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 들었습니다
분명히 사실적 기록일텐데
<약제 처방>과 함께 라서
<병마퇴치주문>의 효험이라고
말하기엔 좀 비약이 있는 게 아닐까요?
@인향만리
<주문>을 외면서
그 소리가 뇌파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으니...소리音의 영향일지
주문의 <뜻>의 영향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