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
“우리는 언제나 잘 살아봅니까? 언제쯤 가서야 잘 살게 됩니까? “
10년 전만 해도 그렇게 시작이 되었으리라. 만약 총리를 위한 환영 식장이었다면 말이다. 엊그제 뉴스를 보니까 작년 4월 한승수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을 대신하여 Hannover 기계박람회에 참석, Merkel 총리와 트럭을 시범 운전하는 사진이 화면으로 잠깐 보도되었다. 참으로 뿌듯하고 긍지를 갖는 순간이었다.
Hannovermesse (기계박람회)란 유럽에서 개최되는 가장 큰 기계박람회로서 이곳에 초청받는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며, 또한 이 박람회에 Partner Country가 될 경우에는 그 나라의 국가원수가 참석하여, 독일 수상 및 대통령과 우리 식으로 테이프 커팅을 하고 개회사를 하게 된다. 그래서 과거에는 유럽 국가들이 초청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독일에는 이와 같은 박람회라든지 문화행사가 많으나, 우리나라와 같이 작고,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 막 공업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나라가 이와 같은 영광을 안아 본 적은 없었다.
더구나 Hannovermesse에 파트너국가가 된다는 것은 우선 선진화된 공업국가가 아니고서는 가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그런데 금년에 대한민국이 이 Hannovermesse의 Partner Country 가 되었다.
현지 대사를 역임했던 한 사람으로써 가슴 뿌듯한 장면이었다. 정말이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만세를 불러야 할 일이다! 10년 전이라면, 서두에서 이야기한 대로 “우리는 언제나 잘 살아 봅니까? 언제쯤 가서야 잘 살게 됩니까?”...교민회장의 환영사는 아마도 그렇게 시작되었으리라.
64년 박정희 대통령이 뤼브케(Luebke) 대통령의 초청으로 독일을 방문했을 때이다. 낯선 땅 독일, 그것도 가장 힘들었던 3-D 직업인 광부와 간호원으로 송출된 우리 교민들이 고국에서 온 대통령을 환영하는 자리에서였었다.
다음은 64년 12월 10일 오전, 루르 지방의 ‘함보른’ 광산회사 강당에서 열린 환영식장의 스케치다.
환영식장도 호텔이 아니고 한 광산회사의 강당. 집결한 사람들도 물론 전부가 광부와 간호원들이었다. 식순에 따라, 환영사가 끝나고 애국가가 시작되었었다. 우리 국민들에겐 피맺힌 「한」이 있었다. 배고픔을 해결하고자 독일에 광부와 간호원으로 송출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말은 안 했지만, 차관을 갚기 위한 보증수단의 일환으로 와 있었다. 동양적인 사고방식에서 말한다면 말이다.
환영식이 거행되고 있던 그 무렵엔 눈시울이 붉게 되어, 양국 대통령의 앞이라 참고 있던 울음소리가 끝내 터지고 말았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닮~도록…무~궁화 삼~천리…화려…강산” 애국가 소리는 어느새 울음바다로 변해서, 노래인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게 뒤범벅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이든 광부든 간호원이든 누구라고 따질 것 없이 환영식장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흐느끼었다.
그로부터 45년이 지난 2009년 4월, 베를린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이나 마리나 호텔 같은 일류 호텔의 대연회장은 동포 간담회의 리셉션 장이 되었으리라. “굶주림을 움켜쥐고, 조국을 떠나 선진한국의 밑거름이 되고자 했던 저희들은 이제 귀밑머리가 파뿌리가 되었습니다 … 그 사이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적인 위상은 제고되어… 저희들은 독일에서 선진 국민대우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인에 대한 장기비자 발급과정에서 2005년1월1일부터 독일은 법규를 바꿔 한국을 선진 국민으로 대우하기 시작하였다는 자랑으로 재독한인연합회 회장의 환영사는 시작되리라. 그리고 그들은 멀리 한국에서 온 총리를 향해 모든 예우를 다하여 모시었으리라. “정말 조국을 발전시켜주어 고맙다고!”
그렇다. 그렇게 많이 바뀌었다. 64년 당시의 화두는 ‘우리도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경제발전 정책의 전수가 첫째였다. 당시 에르하르트 (Dr. Ludwig Erhart)총리로부터 들은 경제학 강의는 아직도 우리들의 귀에 쟁쟁하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첫째 고속도로 건설, 둘째 제철산업 육성, 셋째 종합 산업인 자동차 산업의 육성이 중요하다는 권고였다.
그런데 이제는 자동차 왕국인 독일의 고속도로에 달리고 있는 우리 자동차 비율이 3%를 넘어선지 오래다. 그리고 자투른(Saturn)이나 메디아 마르크트(Mediamarkt) 같은 대형 전자제품 전문매장에는 시장 점유율이 23%가 넘는 한국산 LCD나 PDP TV가 가득 메우고 있다. 길거리나 전철에서도 낯익은 한국산 휴대폰 벨 소리가 더 이상 새삼스럽지 만은 않다.
금년도 양국 간 교역액수도 현 추세대로라면 7년 전의 세 배가 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 같다. 그리고 이미 독일의 유력 경제주간지 비르샤푸트 보헤(Wirtschafts Woche)는 2005년4월7일자에서 “한국인들이 몰려오고 있다”라는 제하로 한국을 커버스토리로 특집을 싫었다. 벌써 5년 전이다.
이 잡지는 한국의 경제와 기업을 분석하며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 평가하고, 세계 시장을 정복해 나가는 한국기업들을 최고라고 9페이지에 걸쳐 추켜세운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을 소개하기 위하여 독일전역에서 1년간 동시 다발적으로 개최된 당시의 ‘2005년 한국의 해' 행사도 간략히 소개한 바 있었다.
옛날 주독대사관의 내 집무실로 찾아왔던 간호협회 회장단의 한 분이 털어놓던 회고담이 불현듯 생각난다. 40여 년 전, 독일에 송출되어 와서 고국에 있던 가족의 생계를 지원 하였던 장본인이었다.
“이제는 시집간 딸이 잘사는 친정을 처다 보는 마음으로 한국을 처다 보고 흐뭇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 월급을 아껴 동생 학비를 대던 우리들의 모습이 더욱 왜소하고 처량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우리는 정말, 정말로 기분이 좋습니다. 그만큼 대한민국이 커진 겁니다 ... 아~ 대한민국!”
(권영민/현 순천향 대학 초빙교수/전 주 독일 대사, 주 덴마크 대사, 주 노루웨이 대사, 애틀랜타 충영사/저서:자네 촐세했네, "권 대사, 자네 큰 실수 했네"/서울대 문리대 독문과 졸/아산 産)
첫댓글 Hannover-Messe 2009 인가요?
친정이 잘 살고 있음은 좋은 일이지요.
그렇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