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기계
김응교 사실 기계들은 자기 프로그램을 업데이트 할 기계적 고독이 필요하여 자기만의 기계실에서 밤새 작동한다 그를 누구도 볼 수는 없겠지만 껍질이 날아간 뼈다귀 로봇 등 뒤 상자 서너 박스에는 유영을 멈춘 지느러미들 생선집 좌판에 파리 날리는 근간 시집들이 옆으로 누워 있다 그의 얼굴은 점점 기계를 닮아 가고 책 모양 사각형으로 바뀌어 옆으로 누운 가자미, 눈알과 손가락만 남아 상상력이 냉동되면 어떤 창작도 휘발되고 너무 많은 과거의 형태와 언어가 얼어붙어 더 이상 신선한 속살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 기계에게도 컨베이어에 실려 뜨거운 화덕에서 태워질 운명이 다가온다 —《문장 웹진》 2024-05-01 ------------------------ 김응교 / 시인, 문학평론가. 1987년 《분단시대》에 시를 발표, 1990년 《한길문학》 신인상, 1991년 《실천문학》에 평론 발표. 시집 『부러진 나무에 귀를 대면』 『씨앗/통조림』과 평론집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 『나무가 있다-윤동주, 산문의 숲에서』 『서른세 번의 만남-백석과 동주』 『김수영, 시로 쓴 자서전』 『좋은 언어로-신동엽 평전』 『韓國現代詩の魅惑』 등. 1996년부터 도쿄외대, 도쿄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고, 1998년 와세다대학에 객원교수로 임용되어 10년 동안 강의하다가 귀국하여, 현재 숙명여대 교수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