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새끼들이 길 건너는 법 / 김미희

[박봉준]

오리 새끼들이 길 건너는 법


   김미희
 
 
보기만 해도 완성되는 문장이 있다
 
오리 가족이 한길을 건너고 있다
하필이면 러시아워인데
아랑곳없이 줄지어 가고 있다
 
줄 따라 오가던 차들이 일제히 멈추며
같은 문장을 떠올린다
 
내 안에 있는 나보다 먼저 있었던
대를 이어온
보이지 않아서 더욱 질긴 줄
 
엄마는 줄 머리에서
아빠는 줄 끝자락을 지키는 완성된 문장으로
 
가난한 집 사립문에도 높이 금줄[禁繩]로 내걸리고
사람들은 그때부터 마음에 담아온
뒤뚱뒤뚱 헤쳐 나갈 금줄(金-)을 꺼내 새김질한다
 
아, 나의 금줄이 아직 길을 건너고 있구나
애써 참아 온 울음줄도 가슴에 똬리를 친다
 
서로가 줄이고 길이 되는 이 줄을 본다




       —문학매거진《시마 詩魔》 2024년 봄호
-----------------------
김미희 / 2005년 《미주문학》 등단. 시집 『눈물을 수선하다』 『자오선을 지날 때는 몸살을 앓는다』 등. 〈KTN〉신문에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를 연재 중이며, 연극배우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