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익철 · 강태용 옮김 / 가톨릭출판사
1. 작가소개
러시아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순례자
- 옮긴이
최익철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로, 1923년 황해도 안악에서 태어났다.
강태용 신부
한국 러시아 정교회 사제로 1939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났다. 2014년 4월 삼척 용화소재 삼위일체 수도원에서 선종했다.
2. 간추림 또는 내 마음에 다가온 구절및 느낌
제1장: 끊임없는 기도에 대한 열망
제가 지금 가진 것이라고는 어깨에 둘러멘 자루 속에 든 말라빠진 빵 조각들과 《성경》 한 권뿐입니다. 이것이 제가 가진 전 재산입니다. (p17)
그러던 어느 날,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아 어느 성당에 들어가 교우들과 함께 아침 기도에 참여했습니다. 이때 성경을 펴서, 바오로 사도의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을 읽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테살 5,17)라는 구절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인생을 살다 보면 숱한 일로 바쁜데 어떻게 항상 기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p18)
언제, 어디서나, 자나 깨나, 일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이 말씀의 참뜻이 무엇입니까? ‘나는 잠들었지만 내 마음은 깨어 있었지요.’(아가 5,2)라는 성경 구절에도 무척 놀라, 어떻게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는지 꼭 알아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p25)
기도란 우리의 모든 행동과 덕행의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기도에는 무엇보다도 선행이 뒤따라야 합니다. (p27)
☑ 기도로 끝나면 안 된다. 선행이라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를 드리라고 권고합니다.‘(1티모 2,1 참조) 이처럼 바오로 사도는 기도를 첫 자리에 두었습니다. 신자들에게 많은 선행을 요구하셨지만 무엇보다도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일도 잘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p28)
“내심으로 하는 끊임없는 ‘예수 기도’란 예수님이 자신 앞에 계시다고 생각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심지어 잠들었을 때조차, 항상 생각과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끊임없이 줄곧 부르는 기도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렇게 하는 것이지요.”
(p30)
☑ 기도의 시작은 예수님의 현존에 서는 것이다.
"기도하는 법은 이 책을 보면 아실 것입니다. 《자애록》이라는 책이지요. 이 책에는 교부 스물다섯 분이 해설을 붙인 내심의 끊임없는 기도에 관한 완전하고도 상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관상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보배로운 책이며 또 대단히 유익한 책이지요. 심지어 니체포로 복자는 ‘무난하게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는 책’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p30-31)
☑ 18세기 말에 아토스 산의 수도자 마카리오와 니코데모가 출간한 책. 우리나라에서는 《필로칼리아》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그런데 개신교 출판사에서 나와 인용된 성경구절 및 용어들이 가톨릭 신자인 우리에게는 어색하게 다가온다.
“침묵과 고요 속에 앉아 있어라.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아라. 숨을 죽이고 생각으로 네 마음을 들여다보아라. 네 생각을 네 마음의 중심으로 모아라. 그러고는 나직하고 단순한 목소리로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말하라. 잡다한 생각들은 멀리 쫓아 버려라. 인내하고 내 말을 자주 실천하여라.” (p31-32)
아무리 커다란 열성이 있다 해도 그것이 당장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조바심은 버려야 합니다. 당장 이루어진다면, 영적으로 인색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p34)
☑ 우리는 너무 조급하다. 기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저는 또다시 정처 없는 나그네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전처럼 궁색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먼 길을 떠돌아다녀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부르면 마음은 마냥 즐거웠고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친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들 모두가 저를 무척 사랑하는 것 같았습니다. (p41-42)
추위가 심해져도 더 정성 들여 기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따뜻해지곤 했습니다. 심하게 배고플 때도 더 자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 그 배고픔을 감쪽같이 잊을 수가 있었습니다. 몸이 아플 때도 기도만 하면 도무지 아픈 줄을 모르게 되고, 어쩌다가 남에게 모욕을 당할 때에도 이 소중한 ‘예수기도’를 함으로써 그 모욕도 달게 받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드릴 때에는 노여움이나 괴로움이 사라졌기 때문이지요. (p43)
제2장: 순례하며 무르익는 기도
얼마가 지나자, 이 기도가 점점 입에서 마음으로 옮아간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입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또는 자연스러운 심장의 박동에 따라 이 기도를 외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1의 박동에 ‘주’, 제2의 박동에 따라 ‘예수’, 그리고 제3의 박동에서 ‘그리스도님’ 그리고 나머지 구절에서도 심장의 규칙적인 고동과 함께 기도의 문구가 깊이 메아리치기에 이르렀습니다. (p46-47)
“하느님의 벌을 두려워하는 마음 없이는 죄를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그 태도가 완전할 수 없고 또한 아무런 효과도 없습니다. 죄가 되는 생각에서 자신을 지키려면 언제나 자신에 대해 단단히 경계해야 하며, 정결한 마음을 지니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내심의 기도를 통해서만 실천할 수 있습니다. (p77)
우리들은 삯꾼도 노예도 아니며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믿음과 사랑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며, 하느님께 가까이 가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마음과 영혼으로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설령 자기 생활이 아무리 괴롭고 비참하더라도 늘 하느님께 감사하고 예수님께 기도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p77)
이 책의 도움으로 내심 기도를 하고 싶다면 다음의 순서를 지켜야 합니다.
첫째로, 니체포로 복자가 말한 부분을 읽어야 합니다.
둘째로, 시나이의 그레고리오 성인의 짧은 장만 빼놓고 나머지 전부를 읽으십시오.
셋째로, 시메온 성인이 쓴 기도의 세 가지 양식과 신앙론을 읽으십시오.
마지막으로, 갈리스토 성인과 이냐시오 성인의 글을 순서대로 읽어가야 합니다.
위에서 제가 언급한 글에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내심의 기도에 관한 교훈이 풍부하면서도 완전하게 실려 있습니다. 더 이해하기 쉬운 글을 보고 싶다면 마지막 부분에 있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인 갈리스토 성인의 기도를 요약한 본보기를 보십시오.“ (p81)
☑ 이 책을 읽으며 《자애록》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했다.
어떤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불러도 알 수 없는 기쁨이 턱에 와 닿고,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p85)
제가 설령 어떤 일에 얽매어 있더라도, 기도는 제 심장 안에서 스스로 작동했고, 그로 인해 저는 어떤 일이든지 더 능률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남에게 말을 건네거나 마음을 다해서 책을 읽을 때도 저의 기도는 조금도 방해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영혼을 갖고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사람과 같았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찌 주님을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 하느님!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이란 얼마나 신비롭고 위대합니까?” (p87)
"제자란 가끔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하기 마련이니, 이제까지 그대를 영적으로 도와준 사람들을 위해서 그 모든 시련을 참고 견뎌 내라.“ (p109)
우리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에만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분의 교훈을 모든 사람에게 가르치고 그들에게서 내심의 기도에 대한 열성이 우러나도록 이끌어야한다는 것입니다. (p110)
☑ 다른 사람을 예수님으로 이끄는 교사로서의 사명도 중요하다
내심의 기도나 관상적 인식 등 영혼을 높이 들어 올리는 여러 가지 방법을 자신만을 위해서 간직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주위의 모든 사람의 유익과 사랑을 위해서 그런 방법을 그들에게 글이나 말로써 전해 주어야 한다. 이는 하느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p110)
저는 제 힘으로 걸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성당 입구의 층계에 내팽개쳐진 채 이틀 동안을 꼼짝 못하고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제 곁을 지나갔지만, 누구 한 사람 저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는 이가 없었습니다. (p113)
어찌하여 그런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고 왔습니까? 하느님은 불쌍한 이웃을 동정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p124)
☑ 앎과 실천의 괴리는 영원한 나의 숙제이기도 하다
제3장: 새로운 순례의 시작
"내심 기도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군요. 저희 같은 사람은 엄두도 낼 수 없겠는데요. 그런 기도에 이르려면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p163)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숨을 쉬는 것보다 더욱 자주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를 게을리하지 마라. 바오로 사도가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라고 하신 말씀대로 언제 어디서나 항시 주님만을 생각하라. 그대가 뭔가를 만들고 있다면 그대 앞에 있는 것들을 만드신 창조주 하느님을 기억해야 한다. 빛을 보면 그 빛을 주신 빛,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보면 이를 창조하신 분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라. 옷을 입고 있으면 그 옷을 입혀 주신 분을 생각하고, 의식주를 돌보아 주시는 분께 감사하라. 한마디로 그대의 일거수일투족이 바로 주님을 찬양하는 동기가 되게 하라. 기도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영혼은 항상 기쁨에 넘치리라.‘(베드로 다마스체노) (p164-165)
자신의 심장을 꿰뚫어 심장을 보듯이 그 속으로 정신을 온통 집중시켜 보세요. 그렇게 하면 심장이 뛰는 맥박을 정확히 헤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맥박에 따라 기도문을 천천히 외우는 것입니다.
우선 한 번 ‘똑딱’하고 맥박이 뛸 때, 그에 따라 입으로는 ‘주’라고 외칩니다. 두 번째 ‘똑딱’하고 뛰는 순간을 잡아 ‘예수’라고 외칩니다. 세 번째 뛸 때 ‘그리스도님’, 네 번째에는 ‘저에게’, 다섯 번째 뛸 때에 ‘자비를 베푸소서.’ 이런 식으로 심장의 고동에 맞춰 기도문을 외워 나가면 어렵지 않게 심장으로 하는 기도를 바치실 수 있을 것입니다. (p188)
☑ 이 책에서 말하는 내심기도법이다.
제2부
제1장: 다시 시작된 순례
형제님의 목적이 하느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이라면 하느님은 형제님을 맞이하실 것입니다. ‘주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받아 주십시오.’하고 아주 짧은 말 한마디를 진심으로 한다면, 하느님은 형제님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춰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처럼 보잘것없는 이들을 향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지니신 하느님은 우리가 하는 행동이 구원을 향한 것이라면, 아무리 작은 행동일지라도 기뻐하십니다. (p237-238)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헛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물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은 작은 일도 축복하시고, 우리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행하는 모든 일, 심지어 아주 작은 일이라도 굽어보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위해 행한 작은 일들이 영생의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p238)
《자애록》을 보면 요한 카르파티스키 성인은 우리가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며 ‘죄 많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기도를 드리면 하느님은 신비롭게도 ‘아들아, 너의 죄는 용서받았다.’ 하고 응답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드릴 때, 우리는 성인들과 같아진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이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비록 죄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기도는 우리를 즉시 깨끗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p243)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자비를 주시는데, 그에 비해 우리는 너무나 인색한 감사와 기도를 드리지요. 단 한 시간만이라도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수는 없을까요? 기도의 시간을 갖지 않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기도드리기에 너무 바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 시간도 앉아서 기도할 여유가 없는 바쁜 생활은 온갖 잡념과 근심 등을 만들어 우리가 하느님께 향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p243)
☑ 일단 시간을 내어 드리면 되는데, 그것이 안 된다.
"기도하지 않고는 제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캄캄한 밤중에 공포에 떨면서 기도를 했을 때 제 스스로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제 뒤에서 저를 밀어 무릎을 꿇게 하고 기도하게 한 듯합니다. 제 기도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렸는지 아닌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기도를 드릴 때 저의 마음은 행복합니다. 왜 행복해지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행복하고, 마음이 가볍고 고요해집니다. 어떤 때는 마음이 무겁고 처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러한 마음의 변화와는 관계없이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고 계속 기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p251)
사실 이미 용서받은 죄는 되짚어 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용서를 의심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p254)
거룩한 교부들은 우리가 죄를 짓게 된 상황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금하십니다. 그대신 죄 그 자체를 시인하고 고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고백자가 자신이 죄를 짓게 된 상황을 설명하면서 자기를 옹호하려는 유혹을 피하고, 고백을 듣는 사제는 죄 이외의 것을 판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p254)
사실 이미 용서받은 죄는 되짚어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용서를 의심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p254)
대 바실리오 성인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인간의 행동들은, 인간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된다.”라고 말했다. (p258)
나는 성경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내 이웃의 이익을 위해 나의 생활을 미루지 않았으며, 나의 평안과 이익을 희생하지 않았다. 성경 말씀처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다면, 이웃의 불행에 슬퍼하고 이웃의 행복에 기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웃의 불행을 관심있게 듣지만 함께 괴로워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는 이웃의 불행에서 일종의 쾌감 같은 것을 느끼기까지 했다. 내 형제의 결점을 사랑으로 덮어주지 않았고, 심지어 비난할 때도 있었다. 이웃의 안녕과 명예, 행복이 내 일처럼 기쁘지 않았고, 이방인의 일인 듯 나에게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았다. 심한 경우에는 이웃들에 대해 묘한 질투와 경멸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p258-259)
☑ 나도 그랬다.
나는 영생이나 성경에 대한 믿음이 없다. 죽음 저편에 영원한 생명이 있고, 이 세상 삶에 대한 보상이 있음을 의심 없이 믿는다면, 나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영생에 모든 생각의 초점을 맞추며,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항상 본향(本鄕)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이방인의 자세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영생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현세적 삶의 끝을 내 존재의 한계로 여기고 있다. 내가 언젠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p259)
내가 영생을 믿는다면 그것은 내 생각 가운데 일부일 뿐이지 확신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현세적 삶을 만족시키려는 나의 탐욕과 행동, 그리고 끊임없이 근심 걱정들로 폭넓게 입증된다. (P259-260)
☑ 나를 포함한 많은 신자들도 그런 것 같다.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으로써 내 마음에 믿음으로 받아들여졌다면, 나는 성경에 끊임없이 몰두하고 공부하며 그 안에서 평화를 찾아야 했다. (P260)
성경에서 매일매일의 일용할 양식과 영양분을 찾아야 했고, 성경의 가르침을 지키도록 노력했어야 하며, 세상의 그 어떠한 힘이 가해진다고 해도 성경에서 등을 돌리지 말았어야 했다. (P260)
나의 모든 행동이 자만심과 자기애로 가득 차 있음을 안다. 스스로 훌륭하다고 여기는 점을 남에게 드러내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할 때도 있고, 겉으로는 겸손을 보일 때도 있지만, 내적으로는 항상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든 잘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게 여기거나 적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나쁘지는 않다고 여겼다. (p261)
게으름이란 적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알고 싶다면, 형제님이 영혼의 깨달음을 위해 노력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묵상과 영적 상담을 통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현명한 사람들과의 영적인 대화를 통해 적을 이겨 내야 합니다. (p263)
☑ 영성서적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수 기도’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예수 기도’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앞부분의 ‘주 예수 그리스도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삶으로 이끕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경 전체의 요약이기도 합니다.
뒷부분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에서는 죄 가운데에 사는 우리가 영적인 각성을 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이끌어 줍니다. 즉, 우리 삶 전체를 하느님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 내맡기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죄 많고 미천한 영혼의 소망과 청원이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표현보다 더 현명하고 확실하게 표현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그 어떠한 말도 이토록 만족스럽고 완전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p270)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말하는 것은 두려운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 희망을 거는 진정한 인간적 사랑의 외침이 됩니다. 그 외침은 우리가 나약하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이며, 주님께 보호를 청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도를 통해서 유혹에 대항하고 죄로 가득한 우리의 나약함을 극복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p270-271)
저는 《자애록》에서 우리가 평소에 꾸준히 ‘예수 기도’를 하더라도, 특히 성체를 모시기 전에는 반드시 ‘예수 기도’로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기록된 부분을 찾아서 읽어 주었습니다. (p285)
☑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겠다.
우리가 성경에서 기도의 깊은 기도를 알아내고 주의 깊게 오랫동안 묵상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에 숨은 신비한 계시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하느님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급하게 대충 읽어 버린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계시를 무시하는 꼴이 됩니다. (p298)
☑ 묵상의 필요성, 렉시오 디비나를 언젠가는 할 것이다.
제2장: 체험과 은총을 나눈 시간
“성경의 가르침들을 실행할 수 없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인간의 구원을 계획하신 하느님은 인간을 위반자로 만들기 위해 계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고 미덕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신성한 계명들이 꼭 필요합니다.”(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 (p307)
☑ 하느님은 우리가 실행 불가능한 것을 명령하시지는 않는다. 우리가 하지 않을 뿐이다.
구원의 비밀이 있는데, 구원은 인간의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의지하는 데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p308)
영성작가들은, 구원을 향한 가르침은 겸손한 마음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설교합니다. 즉 햇빛이 돋보기를 통해서 한 지점으로 초점이 맞춰졌을 때만 불꽃이 이는 것처럼 선행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p310)
☑ 하느님의 말씀은 실천을 통하여 열매를 맺는 것이다.
성경에도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지 못하면 큰일에도 정성을 다하지 못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심지어 미덕을 실천했을 때 그에 따르는 칭찬과, 미덕을 실천하지 않았을 때 받을 수 있는 비참한 결과에 대해서도 나와 있습니다. (p310)
진정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마음과 정성이 하느님을 끊임없이 기억하는 것이며, 깊이 명상을 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호흡과 심장의 고동에 맞추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p313)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5,5)
(p316)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현존을 끊임없이 의식한다는 것이며, 그로써 예수님의 이름을 쉬지 않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3) (p316)
기도는 모든 좋은 것을 가져오고, 기도 없이는 어떠한 그리스도적 선행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끊임없이 기도하며,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자세가 꼭 필요합니다. (p316-317)
인간은 스스로 믿음을 가질 수도 없고, 기도하지 않고는 선행을 할 수도 없으며, 스스로의 힘으로는 기도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p318)
☑ 기도를 할 수 있는 것도 하느님의 은총이다.
하느님은 인간이 하느님께 의지해야 함을 확실히 인식하고 진정한 겸손을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따라서 오직 ‘끊임없는 기도’만이 인간이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자유이자 능력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언제나, 어디서나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여기에 진정한 기도, 믿음, 계명의 수행, 그리고 구원의 비밀이 있습니다. (p318)
“자주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지만,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의 선물이다.”(마카리오 성인) (p318)
"지속적인 기도는 하나의 습관이 되어 제2의 본성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자주 부르지 않고 마음을 정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이시키 성인) (p318)
갈리스토 성인과 이냐시오 성인은 자주 기도하는 행동은 부주의한 기도를 완전한 것으로 변화시킨다고 하면서 어떤 기도를 올리든지, 또 어떤 선한 행동을 하든지 간에 가능한 한 자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기도하기를 권했습니다. (p319)
"깨끗하지 못한 생각으로 마음이 어두워질 때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극복할 수 있었다.“(요한 클리마크 성인) (p320)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만약 부정한 생각이 마음속에 일어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자주 부르십시오. 그러면 나쁜 생각들이 잠잠해질 것입니다.“(시나이의 그레고리오 성인) (p320)
구원과 영적 완성에 이르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아무런 방해 없이 쉬지 않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p320)
만약 당신이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경배드릴 힘이 없을수록 그리고 내적이고 정신적인 기도의 따뜻함과 기쁨을 마음으로 느끼지 못할수록 당신의 힘과 의지를 다해 기도하십시오. 먼저 당신의 입술이 아무런 방해 없이 기도하며 계속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데 익숙해지도록 하십시오. 이것은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가능한 것입니다. (p320)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양 제물을 바칩시다. 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히브 13,15) 지속적인 기도는 확실히 습관이 되고 제2의 본성이 되어, 언젠가는 정신과 마음을 올바르게 할 것입니다. (p321)
쉬지 않고 부르는 기도가 무의미하고 공허한 말들로 가득하다는 세속적인 사람들의 미숙하고 헛된 말을 귀담아듣지 마십시오. 그들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자주 부르면 거룩한 주님의 이름이 아주 적절할 때에 그 결실을 드러낼 것입니다. (p322)
침묵과 고요함 속에서 기도할 수 없다고 해서 자주 기도하지 않는다면 반성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건강한 사람이든 아픈 사람이든 시간을 할애하여 자주 기도하는 것은 각자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327)
☑ 결국은 나의 의지의 문제다.
"세속적인 걱정들이 너무 많고, 바빠서 성당에 갈 수 없다는 핑계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언제 어디서나 기도를 드릴 수 있고, 기도를 통해 당신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제단을 만들 수 있습니다.“(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 (p328)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기도가 우리의 일을 돕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앞서서 기도를 해야 한다고 확신한다면, 모든 장소에서도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p328)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에게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상대방이 기뻐할 만한 행동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아우구스티노 성인) (p338)
기도는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따라서 구원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p338)
☑ 기도는 사랑의 실천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적을 이겨 내십시오. 마음의 적과 싸우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무기는 없습니다.”(요한 크리마코 성인) (p339)
어떠한 불행이나 어려움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기도는 당신을 보호해 주고, 불행과 어려움을 막아줄 것입니다. (p340)
마르코 성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든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에 달린 것이고, 순수하게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어떤 형태로든지 기도드리면 됩니다. 처음에는 당신의 능력 안에 있는 것을 하느님께 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은 당신의 약함에 힘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메마르고 산만한 기도라도 쉬지 않고 계속하면 하나의 습관이 되며, 제2의 본성이 되어 순수하고 눈부시게 빛나고, 가치 있는 기도로 변화될 것입니다.” (p341)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십시오.“ 이 얼마나 나약함과 욕망의 짐을 지고 신음하는 모든 죄인에게 편안함과 위안을 주는 말씀입니까!
기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방법이며, 우리 영혼을 성장시켜 완성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도구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는 하느님의 명령입니다. … 자주 기도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지만, 정결한 마음, 기도에 대한 열정, 기도의 완성은 하느님 은총의 선물입니다. (p342)
하느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원하시고, 여러분이 어디에서나 기도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확신하십시오. (p343)
☑ 하느님은 나의 기도를 원하고 계신다. 나는 응하고 있는가?
여러분이 기도에 태만하고 부주의한다면, 다른 헌신적인 행동을 한다고 해도 아무런 발전을 할 수 없고, 평화와 구원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p343)
최고의 기도는 자연스러운 기도입니다. 그 자연스러움으로 향하는 것이 기도의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지요. (p348)
시나이의 필로테오 성인의 말씀처럼 명상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종종 자기기만에 빠집니다. 이에 대해 성인은 “많은 수도자들이 악마의 손에서 고통 받으며 자기 마음속의 환상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면 관상기도에 대해 절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외적인 선행’에만 집중하고 ‘내적인 명상’에는 소홀히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p354)
관상 기도 혹은 침묵 기도 중에 모든 종류의 환영과 빛, 성인, 천사, 그리스도의 환시 등을 보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교부들은 이러한 환영이 마음속의 생각을 개인화하기 때문에,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은총으로 보고 자기기만에 빠지게 된다고 강력하게 경고했습니다. 성경에서도 악마가 빛의 천사처럼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p356)
낙담이나 실의는 어떠한 죄보다도 나쁘며, 어둠의 세력이 우리에게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 (p358)
☑ 낙담이나 실의는 악마의 도구다. 그것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스타테투스의 니키타 성인은 “당신이 지독한 악에 빠지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빨리 하느님께 돌아오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이 당신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전보다 더 강하게해 주실 것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강한 태양의 빛으로 세균을 소독하고 냄새를 제거하는 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p358)
실의와 슬픔을 일으키는 우리의 죄스러운 행동들이 하느님의 현존과 내적인 기도에 다가가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되고, 오히려 하느님께 신속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막 걸음마를 배운 아기가 넘어졌다가 일어난다면, 곧바로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를 더욱 세게 안을 것입니다. (p358)
당신의 방에 조용히 앉아 있으십시오. 그러면 침묵이 모든 것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p359)
☑ 이것이 기도의 첫 걸음이다. 일단 하느님 앞에 머물자
침묵의 은수자는 침묵으로 가르침을 주고, 그의 삶 자체가 다른 이들에게 교훈이 되며,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도록 교화시키고 그들의 용기를 복돋아 줍니다. (p361)
기도를 드리면 기도하는 사람의 영혼이 천상의 영혼들과 하나가 됩니다. 즉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p366)
기도는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하느님께 올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위한 기도는, 이웃에 대한 그리스도 정신에 의존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p369)
3. 이 책에 대한 간략한 나의 느낌 또는 소개
“하느님의 아드님,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첫댓글 고맙습니다.^^
늘 읽어보려 노력하는데 잘 안되었습니다.
끝까지 읽어 보면서
두고 두고 새겨보려 합니다.^^
늘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