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중의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을 읽었다
이 책 역시 앞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 대한 비판서. 해서 많은 내용이 겹치기에 지금까지 읽은 책들과 겹치지 않는 내용만 짚어보면 바로 교육, 그 중에서도 대학교 상황이다
저자에 의하면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겪으며 대학교에 어떤 변화가 있었냐하면 바로 상위 10% 학교들과 나머지 학교들과의 격차 문제. 저자는 상위 10% 학교에서나 그럭저럭 배울만한것을 가르키고 있고 나머지 학교들은 점점 하향 평준화를 하는 추세라고 한다. 저출산 고령화가 가져온 또다른 단면일텐데 그 이유는 앞의 책에서 말한 계층에서 계급으로 진화하는 양극화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즉, 일본이나 우리나 예전과 달리 대학을 나온다고 그럭저럭 취직이 되던 시대가 저물었기에 인구는 줄었지만 상위 10% 대학 (= 소수 양질의 일자리 취직한 가능한 대학)은 이전보다 경쟁이 치열하지만, 기타 나머지 대학들은 점차 그 명맥을 잇기도 어려워지는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일자리의 양극화가 불러오는 교육계의 양극화 연쇄반응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여기서 잠시 생각해볼 문제는 대학의 원 목적이 좋은 일자리를 가기 위한 곳이었나? 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 아카데미아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최소 한국사회나 일본은 그러한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학들 역시 본격적인 초고령화 시대가 펼쳐지면 펼쳐질수록 대개 학교들이 버티기 어렵다는 의미일테니 그야말로 대학이란 곳은 어떤 곳인가에 대한 학교 스스로 치열한 자기성찰이 필요할 듯 하다. 그에대한 답을 대학 스스로 제공하지 못하면 일본의 경우를 빌자면 많은 대학들이 서로서로 인수, 합병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이 책의 경우 저자가 오키나와부터 홋카이도까지 전 일본을 다니며 소외받은 이들을 취재하며 거기에 얽힌 정치, 경제 및 사회 전반을 비판하는 저널리즘 형식의 책이다. 지금까지 강상중 교수의 책들과는 다소 다른 현장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 책을 덮으며 든 생각 중 하나는 어찌되었던 저자는 강.상.중 이라는 한국 이름을 쓰는 저자인데 아무리 일본에서 태어난 자이니치라고는 하지만 그 비판의 강도가 전방위적으로 굉장히 세다는 생각이다. 즉, 만약 우리 사회라면 아무리 한국에서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버젓이 일본 이름을 사용하는 학자가 서울대 정교수가 되어 우리 사회를 정치, 역사 경제 그리고 사회를 전방위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전국 유력지들이 동시다발로 칼럼으로 게재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그런 것을 용납할까..? 농담 반, 진담 반 전 세계에서 일본 경제를 무시하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역사 문제를 배재하고는 일본을 바라볼 수 없는 한국인이기에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자기 객관화가 가능할지 되돌아 보았다.
첫댓글 우리나라도 대학이 스스로 미래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그 대안의 하나로 지방국립대학끼리의 통합을 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일부 사립대학들은 국가 지원에 목매달게 되고 그 사업에서 탈락하면 그 휴유증을 감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지방 소도시 소외된 지역일수록 폐교의 길을 밟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는듯하다. 지방 국립대학들의 명성도 옛말이 되어가고 인원충원에 교수들이 나서거나 그마저도 안 되면 학과 통폐합을 하거나 새로운 실용적인 학과를 개설해 일부 교수가 그 영역을 담당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지방의 대학들이 지역 기업종사자들에게 재교육의 터전이 되고 많은 교육을 보내는 기업일수록 혜택을 주는 제도를 도입하여 기업도 항시 학습조직이 되어 경쟁력을 높이고 대학과의 공생을 꾀하는 제도들을 더욱 활성화 할 필요성이 있어보인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살펴볼 때 일본의 상황과 그에 따른 공부가 필요하고 적용되어야 될 것들이 많다는 건 알았는데 대학 또한 그 단면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어서 또한 놀랍다. 특히 우리나라는 사교육을 받고 안 받고에 따른 교육 격차가 실질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대학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양극화가 생기게 되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올해 고3생이 코로나로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수험생이라는 점에 학부모의 고민도 크지만 학교를 자퇴하는 학생들도 늘었다고 한다. 상위 10%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풍문으로 들은 것만 해도 엄청났는데 오히려 아이들 각자에게 맞는 교육이 더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력이 바탕이 되어야 겠지만...
통폐합에서 살아남은 대학들도 살아남을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똑같고 개인도 마찬가지 상황에 놓이는 양극화 시대, 각자도생, 자력갱생이 더욱 중요해졌다.
조직에 기대지 않는 ,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점이 생존의 조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는 자기 객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상대의 건설적인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기 혹은 자기 세력의 생존을 위한 분투만이 계속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 권력을 계속 유지하지 못하거나 중심에서 멀어질 수록 떨어져 나간다. 변화를 스스로 인지하기 보다는 바깥과는 상관없이 이 안에서만 권력이 있으면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갑자기 조선시대 외세의 침입 때 정치권의 대응이 생각나고 붕당정치도 생각나고 그렇다. 대학의 자기성찰이 없다면, 대학을 일자리를 창출하는 과정으로만 여긴다면 반도체 학과에 대한 논란이 있던 것처럼 더욱 기업과 연관된 학과나 정부 사업에만 목을 맬 것 같다. 대학입시를 위해 무한 경쟁을 했던 친구들이 과연 자기와 자기가 만들어갈 길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해 보았을까. 학점보다 현실에 기반한 교육이 필요하지만, 그만틈 인문학에 대한 공부를 통해서 자기를 확인하는단계가 그 어느때보다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