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 광인의 수기 >중 이반 일리치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는 <광인의 수기>를 먼저 읽었다
동서고금 수많은 작가들이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고 통찰하고 그 결과를 작품으로 남겨놓았겠지만 그 중에서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으뜸으로 손꼽힌다.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톨스토이가 참회록을 통해 회심하며 본격적인 사상가의 길로 접어들고 그 참회록과 이반 일리치의 죽음 사이를 연결해주는 작품이 바로 자전적 단편소설인 <광인의 수기>이다.
작품은 남부러울것없는 삶을 이어가던 주인공이 영지를 매입하러 길을 떠나 어느 낯선 여관에 묵으며 갑자기 죽음의 공포를 체험하며 심한 나락으로 떨어져 죽음의 공포와 그로인한 삶의 허무감 사이에서 처절히 내적 투쟁을 벌이는 이야기이다. 그러다 결국 세속의 욕망 혹은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며 죽음으로의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고 있지만, 사실 톨스토이가 그리는 죽음의 깊이는 후속 작품들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이 한편의 작품으로 톨스토이의 삶과 죽음을 이해하긴 어렵지만 그럼에도 내게 강렬히 다가온 부분이 있다면:
첫째. 주인공은 죽음이 두려운지 알았는데 알고보니 <죽어가는 삶>이 두려웠다는 고백
둘째. 정작 주인공이 두려워했던것은 <삶에대한 불확실성>이라는 깨달음
셋째. 죽음의 공포에 처해 신께 기도를 올리지만 정작 자신은 <신이 일러준 것을 하나도 행하지 않고 간구하기만 하였다는 것>을 깨달음 점
넷째. 그리하여 결국 세상의 고통을 없애기로 결심한 순간, 주인공 안의 고통도 그리하여 죽음에대한 공포도 사라졌다 고백하는 점 등이다
결국 문명을 비판하고 자연을 칭송하는 대사상가답게 (신이 일러준 것은 하나도 행하지 않으며 간구하기만 하며) 세상 욕망에 끄달리는 삶은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을 낳고 그로인해 그와같은 불확실성이 바로 죽어감에대한 두려움을 낳아 결국 인간은 죽음 자체를 두려워한다는 이야기가 어렴풋이나마 전해지는 것 같다.
첫댓글 첫째부터 넷째까지의 모든 말들을 되새기게 된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늙고 죽어가는 삶에 대한 두려움은 분명 삶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클 것이다. 그리고 행하지는 않고 간구하고 원하기만 한 삶에 노력과 책임은 있었는지에 대한 반성... 그리고 그 근원에 내 안의 고통에 대한 회피와 삶에 대한 고통을 인정하지 않은 무지에게 비롯됐다는 깨닮음도 리뷰를 통해서 다시 되뇌이게 된다.
찰스 핸디가 첫 책을 쓸때 준비한 책과 논문이 관계가 없었지만 다행히 집필을 하던 농가에 톨스토이 책이 있어 인간의 조직 생활에 대한 책을 쓸수 있었다 한다. 북리뷰 만으로는 이해가 부족하지만 그저 욕망하는 삶보다는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내 삶을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누구도 비켜가지 못한 죽음앞에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결국 죽게됨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나도 나를 둘러싼 관계인들도. 우선 죽음보다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때문에 절대자의 가르침은 이해하면서도 생활에서는 이율배반적인 욕망의 생활을 하면서 신께 갈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해주시옵소서! 믿음과 행함이 동일선상에 있을 때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다하고 "~님"을 부르며 고통스럽지도 후회하지도 않는 죽음을 맞도록 현재의 주어진 시간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