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컬러스 웝숏의 <케인스 Vs 하이에크>를 읽었다
케인스 대 슘페터 혹은 케인스 대 하이에크는 경제사를 관통하는 두 거대한 흐름인 것 같다
케인스의 핵심 사상은
경기가 불황일 때는 정부가 적극 개입해서 공공사업을 일으켜 실업률을 낮춰서 인위적으로 수요를 창출하여 불황을 탈출하자, 가 요지이다. 그로인해 1930년대 미국의 공황탈출을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이 케인즈 제안을 채택하면서 이후 경제사에서 주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정치인들이 경제인들보다 케인스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에대해 하이에크는
만약 정부가 그런식으로 인위적으로 수요를 창출하면 이는 경기 사이클을 왜곡시켜 반드시 물가상승을 가져오고 자칫 실물경제는 침체되는 상황에서 물가만 상승하는 최악의 상황을 야기시킬 수도 있으니 정부의 개입은 위험하다고 판단한다. 1930년대 이후 미국 자본주의에서 케인즈가 주류였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케인즈의 시대는 저물고 하이에크 시대가 왔다는 평가가 내려졌는데 2008년 다시 미국 월가의 위기로 인해 케인즈가 부활하게 되었다.
이후 미 경제는 하이에크에 그 사상적 뿌리를 두고있는 (통화량과 금리로 정책을 결정하는) 통화주의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우린 다시금 국가가 위기 상황에선 정부는 케인즈식 처방을 할 수 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고, 케인즈식 처방은 반드시 급격한 물가상승을 유발한다는 사실 또한 체험 중이다. 그리하여 하이에크 말처럼 시기의 문제일 뿐 결국 경제는 원래 흐름대로 침체기에 빠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침체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에 대한 답은 하이에크보다 직전 경제 사상가인 슘페터가 오래 전에 답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바로 <창조적 파괴 혹은 혁신>만이 거시경제가 불황에서 빠져나와 다시금 흘러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 슘페터는 말하기를 자본주의가 극대화되면 생산성이 한계에 가까워져서 대량실업이 증가하고, 그로인해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가 정점을 찍을 때 그 사회는 사회주의를 추구하게 된다고. 그리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시금 혁신의 길로 들어서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였는데 참으로 경제사 전체를 관통하는 사상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다.
첫댓글 우리 경제의 침체와 취약함은 코로나로 가려졌고 이제는 규모가 더 커졌을 뿐이다. 고통스럽더라도 창조적 파괴와 혁신이 적용되어야 하는 바 우리 시대, 우리 나라에서 '창조적 파괴와 혁신'의 모습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이전에는 개인의 역량으로 새로운 산업이나 기업은 일으킬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는 창조적인 개인의 아이디어의 파급력은 거대할 것 같다. 시대 흐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창조적인 개인이 되어야 한다.
경제는 시장의 흐름에 맡겨야하고 정부의 개입은 부작용만 야기시킨다는 것을 지난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더 실감하게 됐다. 경제가 침체기가 아닐 때는 정부의 개입이 최소한 불황탈출이 될 수도 있겠으나 코로나가 직격탄이 됐을 뿐 현재의 어려운 경제상황은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다.
중요한 건 모두가 어렵고 모두가 힘들고 그래서 개인이 어떻게 살 것인지에 초점을 다시 맞춰야한다. 최소한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인간만은 되지 않아야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정신을 차리는 게 우선!!!
정부와 개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위기상황에서 국가의 개입은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일시적인 처방일뿐 거대한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창조적 파괴만이 답이라는 것에 공감이 간다.
우리나라가 5년마다 1% 하락의 법칙에서 벗어나기 위해 창조적 인적자본이 필요한 것처럼 개인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진 시대가 된 것 같다.
특히 인공지능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개인의 존재의미가 중요해진 것 같다. 내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차곡차곡 만들어 가는 것이 살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