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2>를 읽고 있다
7장. 법률제도와 사회체제
포퍼는 마르크스가 모든 자본가는 악으로 자본가와 노동자는 지배와 피지배자 구조의 사슬로 보았다고 한다. 해서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단합하여 그 사슬을 끊어내고 <계급없는 사회> 즉 공산사회를 지향했다고 한다. 지금 들어보면 마르크스는 어떻게 세상을 이렇게도 단순화해서 보는건지 놀랍기까지 한데 이 역시 그가 살던 시대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21세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마르크스는 살던 시대는 산업혁명이 막 시작된 시대로 그때는 영국같은 경우 아동노동까지도 빈번했던 말 그대로 자본가를 악으로 보거나 볼수밖에 없던 시대였다고 (산업혁명시대 바로 전 단계가 농노시대였으니 대개 사람들은 농노에서 벗어나 노동자가 된 그런 시대였겠다). 문제는 이제는 그와같은 상황에서 훨씬 벗어난 21세기이자 한국 노동상황도 그 레벨을 벗어난지는 이미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우리나라같은 경우 60~70년대 경제발전이 막 시작되었을 때는 오히려 가난에서 벗어나고싶은 열망이 너무 커서 기업가를 악으로 보기보다는 그저 발전에만 몰두했던것같다. 그보다는 어느정도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한 뒤 사회적으로 빈부격차가 벌어지며 기업을 악으로 보는 시선은 시작되거나 심화된 것 같다).
이에대해 포퍼는 경제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
첫째. 개인들은 경제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
둘째. 대신 경제적 약자가 경제적 강자에게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지않기위해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셋째. 국가가 개입할 때, 국가 권력이 비대해지거나 막강해지면 그 자체로 (개인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또다른 위협이 되니, 반드시 민주주의 형식을 띄어야 한다
넷째.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개인들이 권력을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누구를 통치자로 뽑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권력이 절대권력이 되지 않도록 견제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이렇게 설명을 듣고보니 경제적 자본주의가 정치적 민주주의에 의해 어떻게 견제받고 상호보완적으로 발전적인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 간단명료하게 이해된다. 참으로 탁월한 포퍼란 생각이다.
그러므로 포퍼는 플라톤, 헤겔 그리고 마르크스의 문제는:
첫째. 전제 자체가 개인이 아닌 집단이고
둘째. 집단은 절대선 (즉 통제받을 필요가 없다)이고
셋째. 그러므로 통치자를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가 아닌 <누구를 통치자로 세울 것인가>에만 집중하게 된다고 한다 (플라톤은 철인, 헤겔은 민족,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
이와같은 포퍼의 사상을 현재 한국사회에 대입해보면:
첫째.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끝판왕인) 기업가를 적으로 삼고 시작하는 좌파의 생각은 올드하고
둘째.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여전히 집단주의가 강하고
셋째. 정치권의 집단주의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양당에서 묻지마 투표를 하는 강성지지층이란 생각이다
문제는 자본주의의 잘못이 아니다. 그 자본주의를 견제할 성숙한 민주주의를 실행하지 못함이었다.
첫댓글 자본주의의 잘못이 아닌 자본주의를 견제할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와닿으며 그동안의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알아왔던 건 자본주의를 견제하는 것이 아닌 지배계층의 이익이 아닌 것을 견제했다는 생각만 든다. 건강한 자본주의와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한 근본적인 공부와 실질적인 실천과 투표가 더 절실해진다.
경제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포퍼의 통찰이 놀라웠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상호보완해 가면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중에서 개인들이 권력을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에 눈이 갔다. 결국 플라톤에서 이어온 전체주의의 목적은 주장하는 본인이 속한 특정 집단의 절대권력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