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2>를 읽고 있다
헤겔편
포퍼는 헤겔이 플라톤과 현대 전체주의의 사상적 연결고리 역활을 하였다고 한다. 다만 플라톤이 (비록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자신의 관점대로 왜곡하기는 하였지만) 그 자신 역시 뛰어난 철학천재였던 것에 비해 (흥미롭게도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뛰어넘지는 못했고 플라톤 철학을 체계화하는 것에 머물렀다고 한다) 헤겔은 동시대의 뛰어난 철학자였던 쇼펜하우어에게 어용학자라는 조롱을 받을 정도로 학자로서 철학자로서 뛰어나지는 못했다고 한다. 다음은 쇼펜하우가 헤겔을 조롱한 말로서 "정부는 철학을 그들의 정부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학자는 그것을 하나의 장사거리로 삼고있다" 포퍼 역시 헤겔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다.
그렇다면 헤겔은 왜 그토록 근대서구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까?
포퍼에 의하면 바로 헤겔의 철학이 권력자들 입맛에 혹은 필요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그때까지 권위주의적 체제를 유지하던 프러시아는 혹여라도 혁명의 기운이 자신들의 체제마저 무너뜨릴까 바짝 긴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혁명사상을 방어해줄 또다른 사상을 찾고 있었는데 바로 헤겔이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그러니까 헤겔은 프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프랑스 혁명의 불길로부터 자신들의 체제를 지켜준 구원투수같은 존재인 셈이다. 그럼 헤겔은 어떤 사상으로 프러시아를 지켜냈을까?
바로 <종족주의>였다고 한다.
헤겔은 플라톤의 국가주의 사상을 끄집어내어 종족에 기반한 강력한 국가만이 프러시아가 주변 적들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철학적으로 구축하였고 이는 프러시아 지배계층에겐 더할나위없이 매력적인 사상이었다고. 헤겔은 국가는 절대선 (이데아)이고, 그 절대선을 실현하기위한 방법으로 역사는 정반합 삼단계를 거치며 진보해나간다는 이론을 펼쳤다고 (여기서부터 진보개념 처음 등장)
근데 문제는 헤겔의 정반합 변증법이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자기발전적 단계라기보다는 국가의 수준에서 논해지는 이론으로서, 정이란 현재상태의 국가. 반은 현재 국가에 도전하는 적. 합은 적을 물리쳐 한걸음 더 절대선에 다가가는 국가적 실현이라고 한다.
즉 헤겔에 의하면 "국가는 땅 위에 존재하는 신의 관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가를 지상에 나타난 신으로 숭배해야 한다"라고 하며 국가를 정반합에 의해 성장해나가는 하나의 유기체적 존재로 보고 개인의 국가에 귀속된 존재로 여겼다고. 그러므로 하나의 국가를 종족주의에 의해 응집시키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반, 즉 적이 필요하고 그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 합으로 나아가는 진보의 길이기에 국가간의 폭력은 정당화된다는 주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는 패한 국가에 비해 강했을뿐이기에 아무 잘못이 없다고 (헤겔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나라를 빈번히 침략한 중국이나 일본은 아무 잘못이 없고, 역으로 우리가 힘이 약해서 문제였던게 되는거다. 끔찍한 사상이 아닐수없다).
포퍼는 이와같은 헤겔의 종족주의 사상이 파시즘에 가서는 인종주의로, 마르크스로 넘어가서는 계급투쟁으로 이어지는데 문제는 이 두가지 모두 헤겔로부터 <폭력의 정당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권력자들에겐 자신을 추종하는 이들을 집단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응집하기에 이보다 더 매력적인 사상이 없기에 헤겔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꿋꿋이 살아남아서 이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포퍼는 헤겔 사상이 이어지는 진짜 원인은 권력자들도 문제지만 스스로는 독립적 존재로 자기실현을 할 수 없어 민족이나 국가에 소속되어 그 <소속감>만으로 자기존재를 확인받고자 하는 구성원들있기에 전체주의는 늘 인류역사 근처를 떠돌며 언제라도 모습을 드러낼 기회를 찾고있다고 한다.
첫댓글 정치인들을 탓하고 권력자들을 탓하기 이전에 사회와 국가라는 소속감으로 스스로를 선동하고 자기안주를 하게 된 건 아닌지 반성을 하게 된다.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독립적으로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집단화와 그 집단의 추종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될지 적들에 대한 파악을 더 정확히 해야될 것이다.
정반합을 개인이 아닌 국가 수준으로 보았다니 약육강식만이 정의인가 싶다.
반을 이겨낸 합은 폭력에 의한 것이라도 정당하다고 보니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허용되었을 것이다.
내 스스로도 자신의 고착을 이겨내고 합의 상태로 성장하는 과정이 힘들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때가 많고 호가호위의 유혹도 같이 드는 것이 바로 포퍼가 경계하는 바일 것이다. 나 또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