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그리스도인들이 버려야 할 것들, 달리 표현하면 벗어버려야 할 것들과 입어야 할 것들을 살펴보았다. 특히 앞에서 입어야 할 것들에 대한 다섯 가지 가치를 사도가 제시하고 난 후에,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라고 하였다는 점까지 살폈다. 그리고 사도는 이제 15절에서 두 가지를 권면한다. 그 하나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평강”(ἡ εἰρήνη τοῦ Χριστοῦ), 이 평강은 구원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 결과로 따라오는 하나님과의 평화이며(롬 5:1),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영원한 평화이기 때문에(빌 4:7)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안식과 안정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평화를 소유한 자는 곧 하늘의 것을 소유한 자이므로, 분토(糞土)와 같은 땅에 것 때문에 남과 다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평강이며, 또한 샬롬(שָׁלוֹם: shalom)인 것이다.
그런데 사도는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라고 한다. 여기서 “주장한다”(βραβευέτω, brabeuetō)는 말은 본래 경기에서 심판자의 역할을 말할 때 사용되는 것으로, 이는 경기장에서 분쟁이 생기는 경우 요즈음은 비디오판독을 하는 등을 통해 심판위원장이 “터치되었다”, “그렇지 않다”는 최종 결정을 하듯이 그 지휘자의 결정에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그 결정에 따르도록 하는 의미에서 사용된 말이다. 따라서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마음에 원망과 시비가 만약 생기게 된다면 지체하지 말고 바로 그리스도의 평화적인 지휘에 순종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는 경우,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그 이유는 바로 다음에 있다. 즉 사도는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ἑνὶ σώματι, heni sōmati)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분쟁을 조장하는 소위 트러벌 메이커(trouble maker)가 아니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peace maker)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평강을 위하여 한 몸인 교회의 지체로서 부르심(고전 12:12-27)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는 이어 본 절 끝에서는 “또한 감사하는(εὐχάριστοι, eucharistoi) 자가 되라”라고 한다. 왜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할까? 우선은 앞에서 본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게 되면, 당연히 함께 따라오는 것이 바로 감사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짐으로 인한 ‘한 몸’이 된 공동체, 곧 교회를 이루는 지체가 되었으니 그 안에서 평강을 이루는 것도 또한 중요하지만, 그렇게 소속되었다는 점에서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감사는 앞으로 아래 절에서 계속 될 것이지만, 15절에서만 살펴본다면 감사는 평강과 아주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평강은 성도의 감사 생활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영적 평안을 가져오지만, 불평은 내적 분노를 가져오는 것이다.(이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