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은?
향유사건에 대해서 사복음의 기록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며 모순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여러가지의 질문점을 모아 정리하고, 그에 대한 성경적인 연구를 하여보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향유사건은 전혀 모순이 없습니다. 조금씩 서로 다른 관점과 시각을 가진, 서로 다른 기자(記者)의 기록을 모순으로 간주하는 자세는 곧 자신의 신앙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1. 향유를 부은 시기는 언제인가?
마태와 마가는 모두 유월절 이틀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이에 대해서 언급이 없고, 단지 요한복음에는 유월절 엿새전에 베다니에 도착하였다고 되어 있지만, 그것은 향유를 부은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베다니에 도착한 시간이 유월절의 엿새전이라는 것을 말하며, 다른 복음과 틀리지 않습니다.
향유사건 이후에(이튿날)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을 한 것으로 보아, 유월절 이틀전이 정확하다고 보여집니다.
마 26:2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
막 14:1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일 방책을 구하며
요 12: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문2. 향유를 부은 장소는 어디인가?
마태와 마가는 베다니에 사는 문둥이 시몬의 집으로 되어있고, 누가복음에는 바리새인 시몬집, 요한복음은 베다니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아마 문둥이 시몬이 바리새인파였던 것으로 보여지며, 그것은 전혀 모순이 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바리새인 시몬과 마리아, 마르다 자매는 같은 동네에 살며, 어떤 친지니 이웃 혹은 친척같은 관계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것은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요한12:2에 의하면 나사로도 그 집에 와 있었고, 마르다는 접대일을 도우고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집주인 시몬은 그 여인이 죄인의 신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다니란 "고난의 집, 가난한 집"이라는 뜻으로 아마 문둥병, 죄인같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몬은 바리새인이었지만 문둥병이 걸렸기 때문에 베다니라고 하는 소외된 자들의 동네에서 그들과 함께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그가 바리새인이었으며 그 바리새인의 이름이 시몬이었음이 분명히 확인되어진다.(눅7:40)
어떤 학자는 마르다가 여주인격으로 일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마르다가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아내 혹은 딸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인 것은 알 수가 없지만, 서로가 방문이 가능한 것으로 보아 같은 동네에 사는 가까운 친지의 관계인 것으로 보인다.
마 26:6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막 14:3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눅 7: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요 11:1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요 12: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문3. 향유를 부은 여인은 누구인가?
마태와 마가는 그냥 한 여자이라고만 기록되어 있고, 누가는 죄인인 한 여자라고 되어있으며, 요한은 나사로의 누이이며, 마르다의 동생인 마리아로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마리아가 죄인이었는가 인데 그것 역시 상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문맥상으로 보거나, 전승적으로는 마리아가 예전에 창녀가 아니었는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죄인인 한 여자가 부은 향유사건은 다른 복음서의 향유사건과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학자들의 견해도 있지만, 그러한 견해를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마 26: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막 14:3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눅 7:37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요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문4. 향유는 어디에 부었는가?
향유를 부은 위치는 마태와 마가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 기록해 놓고 있는데, 예수님 자신은 몸에 기름을 부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 누가와 요한은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누가와 요한에서는 머리털을 이용하여 향유로 발을 씻은 것으로 되어 있다.
또 마태와 마가에서는 예수님의 장사를 하기 위하여 미리 기름을 부었다는 설명이 있으므로 종합하여보면, 먼저 머리에 붓고나서, 발에 부은 것으로 보이며, 발은 향유와 함께 머리털로 씻은 것입니다. 그러나 몸(헬: 소마, body)에 부었다고 하는 것이 전신(whole body)에 부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머리나 발도 몸, 신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복음의 기자들은 서로 보는 관점과 강조하려고 하는 핵심이 달랐던 것이다.
예를 들자면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강조하였고,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로 강조하는 것과 같다. 누가는 그가 인자라는 사실을 강조하였고 요한은 그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그것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기자의 관점적인 차이가 되어지기 때문이다.
기자가 무엇을 강조하고 부각시키려고 하는 가에 따라 기록상 차이점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즉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머리에도 기름을 부은 사실이 생략되어 있지만 다리에 기름을 부은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었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다리에 기름을 부은 것을 생략하며 머리에 기름을 부은 것을 부각시켰다.
그 이유는 누가와 요한은 기름을 부어 머리털로 발을 씻어주었던 여인의 순종과 헌신의 관점을 강조한 것이며, 마태와 마가는 여인이 예수님의 장례식을 위하여 기름을 부었다는 관점을 강조한 것이다. 메시야(히브리어:마쉬야흐)라는 단어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또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는 것을 강조하였던 것은 다음의 구약 성경구절과 연관이 있다고 보여진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
마 26: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마 26: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막 14:3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막 14:8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눅 7: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눅 7: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요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문5. 여인을 책망한 사람은 누구인가?
마태는 제자들로 기록되어 있고, 마가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누가는 이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으며 단지 예수님이 집주인 시몬에게 설명을 하고 있고, 요한복음은 제자중 하나, 즉 유다가 특정한 언급을 하는 것으로 기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성경에 기록된 구체적인 대화를 유다가 하였다고 기록한 것이고, 마태와 마가에서는 몇 명의 제자들이 여인을 책망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다를 비롯한 몇명의 제자들이 여인을 함께 책망하였고, 특별히 유다가 요한복음 12장 5절에 기록된 구체적인 언급(삼백데나리온)을 하며 여인을 책망하였다고 본다.
참고삼아, 삼백데나리온은 보통 일꾼들의 일년 품삯이라고 한다.
즉 유다는 그 기름의 물질적인 가치만을 계산하였던 것이다.
마 26:8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막 14:4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요 12: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요 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문6. 베다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는 전혀 다른 사람인가?
그러한 전승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인물로 보이며 성경적인 상세한 기록은 없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와 제자들에게 경제적인 뒷받침을 해주던 여인이었고(마27:56. 61) 일곱귀신 들린 여인(눅8:2)으로 본다.
그러나 베다니에 사는 마리아는 마르다의 동생이며 나사로의 누이이다.
문7. 여인을 기념하라고 했는데 기념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 여인의 행한 일을 기념하라고 되어 있으므로, 훗날 복음서를 기록하게 될 기자들에게 성경에 기록하여 놓으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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